대우구명 로비인가? 도피 자금인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재미교포 사업가 조풍언씨가 김우중 전 대우 회장으로부터 100억원대의 로비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이는 대우가 워크아웃에 들어가 해체과정에 있던 1999년 10월, 김 회장이 구명로비 차원에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전달해 달라며 조씨에게 거액을 건넸다는 것.
그러나 이 돈의 행방에 대해 도피 전 마지막 로비자금설 및 ‘배달사고’ 가능성, 김 전 회장의 도피자금설, 사용하지 않은 비자금의 흔적이라는 설 등 예측이 분분하다.
검찰은 로비자금 사용 가능성을 집중 수사 중이지만 뚜렷한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이 자금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조모(70) 씨가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데다 구여권 인사들이 로비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어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검찰은 1996년 6월 김 전 회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 측근으로 알려진 재미교포 사업가 조풍언씨가 대표이사로 있던 회사에 전달한 400억원의 출처가 BFC라고 판단, 김 전 회장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죄를 적용할 방침이다.
◆대우 부도 직전 400억원 횡령 의혹
검찰은 25일 “김씨의 지시로 BFC가 99년 6월 조씨가 대표로 있던 홍콩 소재 KMC와 미국 LA 소재 라베스라는 회사에 각각 2,430만 달러와 2,000만 달러를 송금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검찰은 김씨를 횡령 혐의로 추가기소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김씨가 출국 직전 100억원 이상을 조씨에게 건네며 로비를 펼쳤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진위를 확인중에 있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는 이에 대해 ‘조씨로부터 빌린 돈을 갚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김씨가 채무변제의 근거를 내놓지 못하면 BFC자금을 횡령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해 김 전회장의 횡령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이 돈의 흐름은 지난 2001년 11월 예금보험공사가 대우사태 조사 결과를 발표할 당시에도 드러난 바 있다. 당시 예보는 “김씨가 BFC의 자금 중 281억원을 KMC에 전달, 대우정보통신 주식 258만주(71.59%)를 위장매입했으며 이중 95만주를 처분, 291억원을 홍콩에 반출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따라서 조풍언씨가 대표로 있는 KMC와 라베스사를 통해 반출된 총 400억원대의 돈은 조씨에게 흘러간 셈이다.
이후 대우 부실채권을 인수한 자산관리공사는 예보 조사를 바탕으로 2002년 9월 KMC가 매입한 대우정보통신 주식 중 남은 주식을 반환하라는 소송과 함께 이것이 힘들면 조씨가 김씨로부터 받은 돈을 반환해야 한다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 김우중, 100억원대 대우구명로비
동아일보는 25일 ‘김우중씨 99년 해외도피 직전 구명로비 시도’ 기사를 통해 전직 대우그룹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김 전 회장이 1999년 10월 김 대통령의 측근인 조씨를 통해 김 대통령에게 대우그룹 구명 로비를 시도했고, 김 전 회장이 로비 명목으로 조 씨에게 건넨 돈은 100억원이 훨씬 넘는다”고 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김 전회장은 조씨에게 로비를 부탁한 뒤 1999년 10월20일 중국 옌타이 대우자동차 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조씨를 만났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이 자리에서 김 전 회장은 조씨로부터 “대우그룹 구명이 어려울 것 같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곧바로 이튿날 해외로 출국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씨가 실제로 김 전 대통령을 만나 로비를 했는지, 아니면 조씨가 로비를 시도하지 않고 중간에서 로비자금을 가로챘는지에 대해서는 김 전 회장도 모른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고 동아일보는 보도했다.
전직 대우그룹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 흥망과 관련된 모든 진실을 국민에게 밝힌다는 차원에서 이 내용도 공개하기로 결심했다”며 “이르면 25일 검찰에서 상세하고 정확한 로비 시도 및 출국 경위, 로비 금액 등을 진술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조씨, DJ정권의 실세?
이와 관련해 김대중 전 대통령 측은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일축했지만 조 씨와 김 전 대통령, 김 전 회장 3명의 관계를 집어볼때 ‘구명로비’ 의혹의 유추가 가능하다.
조 씨를 중심으로 김 전 대통령, 김 전 회장의 인연은 남달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언론에 따르면 조 씨는 김 전 대통령과 같은 전남 목포 출신으로,경기고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호텔업과 한국과의 무기거래를 중개하면서 재산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 씨는 DJ 정권 당시 숨은 실세로 통했다. 따라서 김 전 대통령과 김 전 회장을 연결하는 창구였을 것이란 얘기다.
더욱 무성한 의혹 속에서도 조 씨가 검찰 수사대상이 된 적은 없었다. 검찰 관계자는 “조 씨가 미국 시민권자여서 수사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대우그룹의 해외금융계좌인 BFC에도 김 전 회장과 조 씨의 돈이 함께 관리된 정황이 있다”고 말했다.
조 씨는 김 전 회장과는 고교 동문(김 전 회장의 2년 후배)이란 점이 인연이 돼 대우가 경영난에 빠진 뒤 대우계열사 매각 작업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나라당이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김 전 회장의 부인 정희자씨 소유의 경기 포천시 아도니스 골프장 헐값 매수설을 주장하면서 매수자로 거론한 인물도 조 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두 사람 간의 은밀한 거금 거래를 두고 김 전 회장과 해외사업가인 조씨를 자신의 ‘재산 관리인’으로 이용했다는 설이 많았다. 조씨가 9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산 자택을 매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DJ 정권의 보이지 않는 핵심’이라는 추측도 나돌았다.
한편 이 자금이 김 전 회장이 5년8개월간 해외에 체류하는 동안 도피자금으로 쓰였을 것이라는 추론도 비교적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99년 9~10월엔 이미 대우그룹을 정리하는 쪽으로 정부정책의 가닥이 잡힌 상황이었기 때문에 로비의 필요성이 현저히 떨어진 시점이고, 로비의 경우 송금 흔적이 나타나는 BFC 자금보다는 국내 비자금을 주로 쓴다는 점은 로비가 아닌 다른 쪽에 이 돈을 썼을 것이라는 추정의 근거가 되고 있다.
또 해외 도피에는 국내자금이 아닌 BFC 자금을 쓰는 게 수월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해외도피자금 사용설`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김씨가 1999년 10월 대우그룹 구명운동 차원에서 100억원 이상의 자금을 김 전 대통령 측근인 조씨에게 건넸다는 의혹과 관련,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중인 김씨를 조사했다. 검찰은 오는 30일이나 31일쯤 김씨에 대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수사를 사실상 마무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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