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룡호(號) 농협금융지주가 출범했다. “농협중앙회장의 권한이 막강하다. 농협금융 회장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폭로한 신동규 전 회장 덕(?)에 농협금융 신임회장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농협중앙회와 맞수를 놓을 이가 누구일 지에 대해서였다. 그런 가운데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이 친정체제를 강화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힘을 움켜쥐려는 이와 나누려는 이의 대결이 예고되면서 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임종룡 “중앙회 존중, 금융지주 자율경영 보장”
중앙회 인사 후 “중앙회가 힘 나눌까?” 시각도
임종룡 회장의 농협금융지주가 지난 11일 닻을 올렸다. 임 회장은 이날 취임식을 갖고 “금융지주 체제를 안정화시키는데 힘쓰겠다. 중요한 의사결정은 대주주인 중앙회와 긴밀한 협의를 통해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겠다”면서도 “부당한 외부 경영간섭은 단호히 대처해 자율경영을 보장하고 상호 조율하는 역할을 해나겠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부당한 외부간섭 No!”
취임식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농협금융은 중앙회가 지분 100%를 소유한 지배구조인 만큼 대주주의 권한과 역할은 충분히 존중돼야 할 것”이라며 “이런 원칙 하에서 어떻게 지혜롭게 소통하고 협의해 중요한 의사결정을 이뤄나갈지가 앞으로 새롭게 정착시켜야 할 농협금융의 문화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임 회장의 이 같은 발언은 농협중앙회와 우호적인 입장은 유지하되 농협금융의 자율경영은 확보하겠다는 취지로 읽혔다. 신동규 전 농협금융 회장의 폭로로 농협중앙회와 농협금융의 관계에 이목이 집중된 상황을 고려한 발언이라는 풀이다.
앞서 신 전 회장은 사의를 표하며 “농협금융회장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경영전략·인사·예산 등 모든 부문에서 농협중앙회와 충돌을 겪었다”, “농협중앙회장의 권한이 막강했다” 등 발언을 쏟아냈다. 농협금융 경영전반에 대한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의 입김이 상당했다는 것을 시사하는 말이었다.
농협의 지배구조가 빚은 결과였다. 농협은 1중앙회 2지주회사 체제로 농협중앙회가 금융지주(은행·보험·증권 등)와 경제지주(농산물) 위 군림하는 구조다. 신 전 회장은 “농협 지배구조가 해결되지 않으면 제갈공명이 와도 성공하지 못한다”며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대주주의 경영관여를 금지하는 금융지주회사법과 자회사·손자회사를 지도·감독할 수 있게 한 농협법의 충돌이 해결돼야 한다는 소리다. 전문가들도 “법 개정이 없다면 차기회장에 누가 오든지 똑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이와 관련, “통념과 관행에 맞게 중앙회가 농협금융을 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법 개정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법 개정보다는 농협중앙회의 자발적인 역할축소를 요구하는 취지의 말이었다.
자율경영 보장될까
금융권 안팎에서도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의 자율경영을 자발적으로 보장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농협중앙회와 농협금융의 반목이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농협중앙회가 단행한 최근 인사를 보면 이는 실현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앞서 농협중앙회는 신 전 회장이 사의표명을 하고 며칠 뒤 고위층 임원 4명도 사퇴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농협중앙회는 “농협 쇄신과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해 용퇴했다”는 입장이었다. “최 회장 체제에 대한 집단반발이 표출된 것 아니냐”, “최 회장이 관여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하게 나돌았다.

이러한 관심 속에 농협중앙회 새 경영진은 지난 5일 확정됐다. 농협금융 회장이 내정되고, 확정되기 전이었다. 김태영 전 농협중앙회 신용부문 대표가 전무로, 이상욱 농협중앙회 홍보담당 상무가 농업경제 대표로, 김정식 교육지원 상무가 상호금융 대표로, 김사학 NH농협은행 부행장이 조합감사위원장으로 각각 선임됐다.
하지만 이번 인사를 두고 “최 회장의 친정체제 강화”라는 달갑잖은 시선이 쏟아지는 상태다. 4명 중 3명이 최 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탓이다. 김태영 전무는 작년 3월 농협금융 출범 전까지 신용부문 대표를 맡았고, 김정식 대표는 조합감사위원회 사무처장으로 근무하며 최 회장과 손발을 맞췄다. 김사학 조합감사위원장은 최 회장의 비서실장 출신이다.
농협금융에 새 수장이 오기 전 단행된 인사가 ‘친정체제 강화’라는 의구심까지 받자 업계의 우려는 커지는 모양새다. “최 회장이 인사를 통해 힘을 강화하려는 듯한 상황에서 과연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에 자율경영을 자발적으로 보장해주겠느냐”는 것이다. 이로 인해 최 회장과 임 회장의 힘겨루기는 계속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여기에 최 회장의 최근 발언은 농협중앙회의 자발적 권한축소에 대한 기대를 더욱 감소시켰다. 지난 10일 대의원 대회에서 최 회장은 “카드 부사장! 일반카드하고 경쟁을 하도록 만들어주고, 사용 많은 걸 늘려 놓으면 수수료가 사실 좀 줄어도 사용이 늘면 좀 보충할 수 있는 것 아니야”라고 말해 질타를 받았다. 반말을 섞어가며 손자회사 경영에 개입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임종룡 회장이 이끄는 농협금융이 출범한 지 일주일이 안 됐다. “농협중앙회와 지혜롭게 소통하고 협의하겠다”는 처음의 의지처럼, 임기 2년간 임 회장의 그림이 순탄하게 그려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