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다. 이명박 정부 5년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정치 검찰의 오명을 받았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지난 4월, 역사속에서 사라졌으나 검찰개혁의 과제는 남아있다. ‘이명박 정부 5년 검찰 보고서’는 이를 증명했다. 검찰이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벗고 ‘국민의 검찰’로 거듭날 수 있는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수사권·기소권·형집행권 등 권한 독점
검찰 독점 기소권·수사권, 분산·견제해야
검찰개혁 관련 법안, 6월 국회서도 난항
대한민국 검찰은 수사권, 기소권, 형집행권 등 중요한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 검찰은 범죄가 발생했을 때 증거를 수집하고 범인을 확보하기 위한 수사권, 범죄 혐의에 대해 처벌해 달라고 재판을 청구하는 기소권이 있다. 또 범죄자를 수사하며 재판에 넘길 때까지 전권을 행사하기도 한다. 여기에 기소권을 가질 수 있는 기소독점주의, 내사 단계의 사건을 자체적으로 종결시킬 수 있는 내사종결권까지 전무후무한 권력의 핵심이다.
권한의 오남용은 곧 무리한 수사와 기소 혹은 봐주기 수사 등으로 이야기 된다. MBC PD수첩 제작진 기소, 정연주 전 KBS 사장의 배임 사건, 미네르바 박대성씨 사건 등은 법원에서 모두 무죄가 확정됐다. 대표적인 봐주기 수사로는 관련자 전원을 불기소 처분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의혹 수사와 청와대 핵심까지 밝혀내지 못한 채 종결한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 등이 항간에서 거론된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검찰이 가진 권한을 다른 기관으로 분산하고 외부 기관에서 견제하지 않는다면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검찰 조직이 스스로 더 이상의 자정능력을 상실했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신뢰를 잃은 것을 간접적으로 내비친다.
이와 함께 독점하고 있는 기소권과 수사권을 분산하고 견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경찰에 수사권을 일임하고 검찰은 기소권만 가지게 되는 검·경 수사권 조정, 검찰이 가진 기소권한을 국민이 일정 부분 맡아 결정하는 기소배심제와 함께 경찰이 직접 영장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의 논란이 이 같은 기류와 함께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정부 5년 검찰 보고서’ 발표
검찰권 오·남용 사례, 윤리실태 담아
‘MB 검찰’ 5년 동안 대구경북-고려대 인맥이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16일 ‘이명박 정부 5년 검찰 보고서: 국민의 검찰로 거듭나야 할 정치검찰’의 발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참여연대는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매년 검찰의 권한 오남용 행태를 기록한 연차보고서를 발표했고, 350쪽에 이르는 보고서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부터 ‘그랜저 검사’ ‘벤츠 여검사’ 금품 수사 사건에 이르기까지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검찰 수사 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74개 사건과 법무·검찰 분야의 주요 일지와 행적들이 빠짐없이 기록됐다.
특히 참여연대는 인사권을 이용한 이명박 정부의 검찰 장악 실태를 보여주려고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 검찰·법무부 지휘라인의 관계, 검찰·법무부 20개 핵심 직책을 맡은 이들과 집권세력의 지연과 학연 관계를 조사해 서술했다.
조사 결과 이명박 정부 민정수석비서관 4명 중 3명은 검찰 고위직 출신으로 같은 시기 재임한 검찰총장들보다 사법연수원 기수 선배였고 나머지 1명도 검사장 출신이면서 같은 시기 검찰총장 동기로 나타났다.
또 ‘MB 인맥’인 대구경북 출신과 고려대 출신 검사들이 매 인사때마다 20개 핵심 직책의 절반인 평균 9.4개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같은 지역과 학교 출신이 평균 5개의 직책을 맡았던 것과 대비된다.
이밖에 이명박 정부 검찰의 윤리의식 수준을 보여주려고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또는 후보자들의 불법, 탈법 행위와 이명박 정부 기간 비위 행위로 징계 받은 검사들 내역도 담았으며,지난 5년 검찰·법무부의 중간 간부급 이상의 보직 이동 현황도 나타냈다.
보고서의 제3부에서는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검찰이 수사한 사건들 중에서 수사 과정 또는 결과에서 문제점을 보여주었던 사건 등 74개 주요 사건의 개요와 수사 경과, 담당 검사와 지휘라인, 처리 결과, 재판 결과 등을 정리했다. 74개의 사건들은 △집권 세력/여권 관련 수사, △정권 비판/야권 관련 수사, △기업 범죄 및 기타 부패 관련 수사, △공안 관련 수사, △법조 비리 관련 수사, △기타 수사로 분류했다. 제4부에서는 이명박 정부 5년 동안의 법무·검찰 분야의 주요 일지와 행적을 기록했으며, 제5부에서 지난 4차례의 연차보고서에 담았던 검찰 평가문을 담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새로운 정권은 정치가 검찰권을 악용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임기 내내 검찰은 국민의 검찰이 아닌 ‘MB검찰’로서 집권 세력의 통치 도구로 악용되었으며, 정부에 비판적인 세력에 대해서는 무리한 수사와 기소권을 남발했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는 보고서에 실린 종합평가문을 통해 “참여정부에서 정치권력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확보한 검찰은 이명박 정부 들어 정치수단으로 활용하려는 통치술로 검찰 권력이 극대화되는 전성기를 맞았지만, 그 권력이 법과 정의의 한계치를 넘어섬으로써 검찰의 위상과 권력이 정권의 명운과 함께하는 공멸의 위기를 맞게 된다.”라고 평가했다.
또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국민적 염원으로 박근혜 대통령도 검찰 개혁안을 제시했지만, 청와대 민정수석을 검찰 출신으로 임명해 검찰 권력을 곁에 두었다며,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은 검찰 스스로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대통령과 정치권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꼬집었다. 하태훈 교수는 “검찰개혁을 위한 최우선 과제는 무엇보다도 상하관계의 위계질서를 완화시켜 검찰 내부의 민주화를 이루어내는 것과 인사제도의 개선에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개혁법, 6월 국회 처리 불투명
民主,상설특검, 특별감찰관제 도입
검찰개혁 관련 법안 처리가 6월 임시국회에서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는 검찰개혁 관련 논의 주체를 놓고 여전히 이견을 해소하지 못하는 등 올 상반기까지 마무리 짓기로 여야가 합의한 법안이 처리될 지는 안갯속이다.
논의 주체와 관련해 새누리당은 사개특위, 민주당은 법사위를 각각 고집하면서 논의에 진전이 없는 상태이다. 지난 4월 사개특위 출범 전부터 논란이 됐던 특위 활동범위에 대해 여야가 두 달째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채, 현재까지 사개특위 회의는 공청회 2번을 포함해 총 4차례에 머물렀다.
이에 앞서 지난 11일 오후 국회에서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위원장 새누리당 유기준 의원) 주최로 검찰개혁 방안의 일환인 ‘상설특별검사 및 특별감찰관 제도 도입 방안’에 대한 공청회가 진행됐다. 공청회에는 황도수 건국대 교수와 김희균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 박근용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김선수 변호사, 서영제 리인터내셔널법률사무소 변호사가 진술인으로 참석해 상설특검과 특별감찰관제 도입에 대한 견해를 밝힌 뒤 사개특위 위원들과 질의응답을 주고받았다.
새누리당은 6월 국회 우선 처리 법안 111건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검찰개혁법을 배제시켰다. 민주당은 임시국회 목표 과제 중 하나로 ‘검찰개혁과 사법정의 실현’을 선정했고, 상설특검, 특별감찰관제 도입을 45개 중점처리 법안으로 했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임시국회는 경제민주화, 갑을 관련법 등 쟁점이 많아 검찰개혁법 처리는 당분간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