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16대 대선자금 전모 공개 제안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최근 대선 자금에 관한 사회적 공방을 지켜보면서 안타깝고 착잡한 심경을 금할 수 없습니다. 역대 어느 선거보다 깨끗하게 치러졌다고 자부해 온 지난 대선 과정이 새삼스럽게 국민들로부터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수많은 유권자들의 자발적으로 참여한 국민성금까지 정쟁거리가 되면서 그 의미가 폄하되고 있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분들께 송구하기 그지없습니다.
깨끗한 정치에 써달라며 10년 근속메달을 보내온 부부, 까만 비닐봉투에 꼬깃꼬깃 돈을 모아준 시장 상인들, 생활보호 대상자임에도 불구하고 우편환으로 10만원을 보내주신 강원도의 할머니.
저는 이분들에게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확인하며 눈물과 감동으로 선거를 치렀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우리 정치 발전에 큰 계기가 되고 기여하는 것이라고 자부했습니다.
비단 저뿐만이 아니라 국내외 여론도 한국 정치사에 유례가 없던 일 높이 평가했습니다. 여야 모두 모법적인 선거를 치렀다고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대부분 국민들도 이에 동의하고 계실 것으로 믿습니다.
물론 우리 정치의 해묵은 병폐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 자신, 그동안 법과 제도상의 문제점을 절감해 왓습니다. 불합리하고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바로 잡아야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여러 차례, 정치개혁에 대한 소신과 의지를 밝혀왔습니다.
지난 4월 국회연설에서도 우리의 현실을 국민들에게 솔직히 말씀드리고 제도를 바꿔나가자고 호소했습니다. 또, 이러한 호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에 대비해 깊이 고심하고 준비해왔습니다.
그런 와중에 민주당의 책임 있는 인사가 대선 자금에 대한 한마디 실언을 한 것을 빌미로 정치공세를 펼치고 있습니다. 야당은 지금, 역대 가장 깨끗했던 지난 대선에 엄청난 부정과 사기가 있었던 것처럼 매도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우리 스스로 이룩한 소중한 성과마저 부인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왕 대선 자금 문제는 국민적 의혹으로 제기된 이상 투명하게 밝히고 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길이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여야를 불문하고 아무리 새로운 정치를 외쳐도 그것을 믿어줄 국민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당과 야당 모두, 16대 대선 자금을 있는 그대로 소상히 밝히고 철저하게 검증을 받읍시다. 대선 자금 논란은 정파간 소모적인 정쟁으로 끝낼 일도, 특정 사건의 진상 규명에 그칠 일도 아닙니다. 더 이상 피할 일이 아닙니다. 분명하게 밝히고 넘어갑시다.
대선 자금을 공개하는 데 있어 무엇이 대선 자금이고 어느 시점부터 공개하는 것이 옳은지 논란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선관위에 신고된 법정선거자금만이 아니라 각 당의 대선 후보가 공식 확정된 시점 이후, 사실상 대선에 쓰여진 정치자금과 정당의 활동자금 모두를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야가 함의해서 그 대상을 달리 정할 수도 있겠지만 반드시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대선 자금의 전모를 밝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대선 잔여금이 얼마이며 그것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까지 밝혀져야 합니다.
지출뿐만 아니라 수입금 내역도 공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를 공개했을 때 경제계가 정치자금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우려가 있습니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국제신인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재계가 자발적으로 공개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재계가 앞으로는 정치자금 문제를 법과 원칙대로 하겠다는 결의를 밝히는 기회가 된다면 오히려 기업 신뢰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도 여의치 않을 경우, 수사는 하되 자금을 제공한 기업이나 기업인은 철저히 비공개로 하는 것도 방법일 것입니다.
공개만으로만 그쳐서도 안됩니다.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절차를 통해 철저하게 검증 받아야 합니다. 여야가 합의한다면 특별검사도 좋고 검찰도 좋습니다. 다만 수사권이 있는 기관에서 조사하는 것이 진실 여부를 밝히는 데 효과적일 것입니다.
민주당이 먼저 공개하라는 요구도 있습니다. 공개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대선자금 공개는 여야가 함께 하지 않으면 공개한 쪽만 매도되고 정치개혁에 아무런 실효를 거둘 수 없습니다. 어느 일방의 공개가 다른 일방의 공개로 이어질 만큼 우리 정치권의 신뢰가 높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인정해야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정치개혁은 이제 더 이상 이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입니다.
지금 우리 정치가 일대 혁신을 하지 않으면 선진국으로 도약하고 2만불 시대로 나아가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와 국민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일입니다.
저는 이번 정치자금 논란이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회를 투명한 정치, 깨끗한 정치로 나아가는 전기로 만듭시다. 국민들이 우리 정치에 다시 한번 희망과 기대를 걸 수 있도록 만들어 봅시다.
낡은 정치의 악순환을 끊고 정치개혁의 새로운 전기를 만들고자 하는 저의 충정에 정치권의 용기 있는 결단과 국민 여러분의 협력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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