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임감독은 크게 국내파, 해외파로 의견 나뉘어
한국축구대표팀은 2002 한 · 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뤄낸 거스 히딩크 감독의 뒤를 이어 움베르투 쿠엘류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하지만 쿠엘류 감독은 ‘오만 쇼크’와 ‘몰디브 망신’ 등 극심한 성적부진으로 1년 2개월 만에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그 뒤를 이어 지난해 6월18일 본프레레 감독이 사령탑을 맡았으나 끝내 계약기간(2006년7월)을 채우지 못하고 지휘봉을 반납했다. 그동안 현실과 촉박한 시간 등을 이유로 본프레레 감독의 ‘유임론’도 강했지만 갑작스러운 사임으로 인해 후임 감독 선임 문제가 가장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독일월드컵까지의 남은 기간은 9개월 가량. 하지만 선수들과 함께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시간은 채 2개월이 안 된다. 따라서 최단기간에 감독 영입은 물론 코칭스태프 구축,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후임감독은 크게 국내파, 해외파로 나뉜다.
국내파의 경우 선수 파악과 시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1998프랑스월드컵 대표팀을 맡았던 차범근 수원감독을 비롯해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정해성 부천SK 감독, 조광래 전 FC서울 감독, 김호곤 전 올림픽대표팀감독, 박성화 전 청소년대표팀 감독 등이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일부 감독의 경우 구단과 계약기간이 남아있고 견제와 반목이 심한 축구계 실정과 선진축구 접목이라는 명분에 맞지 않다는 약점이 있다. 특히 기술위원회가 월드컵 6회 연속 진출에도 불구하고 도중에 감독을 교체했으니만큼 세계 정상급의 지도자 등 납득할 만한 후속 인사 선임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명성있는 해외감독 영입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기술위원회 이회택 위원장도 “시간이 없으니만큼 최근 1~2년간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감독을 알아보겠다”며 “감독이 반드시 영어를 해야 한다는 조항도 지금 상황에는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해외파 감독은 본프레레 감독 영입시 후보군에 포함됐던 10인 가운데 홀거 오지크를 제외한 9명이 현재 각국의 국가대표팀이나 클럽팀을 맡고 있다.2002 한·일 월드컵에서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끈 필 스콜라리와 로제르 르메르, 파티흐 테림은 각각 포르투갈과 튀니지, 터키 국가대표팀을 맡고 있는데다 월드컵 본선 진출 가능이 높아 현실적으로 어렵다.
오트마르 히츠펠트 전 바이에른 뮌헨 감독, 전 독일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베르티 포그츠, 루디 펠러 등은 2006년 월드컵 개최지 출신이란 이점 때문에 후보 명단에 오르내리고 있다. 축구종가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을 역임한 보비 롭슨(72)도 유력한 대표팀 감독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한국팀 감독에 관심을 보였던 롭슨은 최고령 감독, 감독의 교과서 등 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1967년 플레잉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롭슨감독은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까지 8년간 잉글랜드대표팀을 이끌었다. 또한 케빈 키건을 비롯해 올림피크 리옹의 프랑스 리그 4연패를 이끌고 명예 퇴진한 폴 르구앙도 차기 대표팀 후보로 손꼽힌다.
네덜란드 클럽 페예노르트의 사령탑에 잠시 올랐던 루드 굴리트와 크로아티아를 1998 프랑스 월드컵 4강에 올려놓았던 블라제비치 감독도 현재 맡은 팀이 없다. 또한 히딩크 감독을 보좌해 한국을 월드컵 4강으로 이끈 핌 베어벡 전대표팀 수석코치도 후보군에 포함돼 있다.
국내 프로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외국인 감독 가운데 이안 포터필드 부산 아이파크 감독은 이미 거절의사를 밝혔고 세르지오 파리아스 포항 스틸러스 감독은 경험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현시점에서 우리의 현실을 냉철하게 짚어야
2002 한 · 일 월드컵에서 전세계 축구인들을 깜짝 놀래키며 이룩한 월드컵 4강 신화는 한두 명이 이뤄낸 결과물이 아니다. 히딩크 감독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를 하나의 구심점으로 모으면서 전력을 극대화했다.
여기에 기술위, 축구협회의 전폭적인 지원이 뒤따랐다. 히딩크 감독의 경우 개인 코디네이터를 비롯해 전술담당 코치, 체력담당 코치, 비디오 분석관 등 무려 10명이 넘는 코칭스태프를 거느리고 있었다. 수석코치 없이 4명의 코치를 보유하고 있던 본프레레 감독과는 차이가 크다.
히딩크 감독의 경우 부임 3개월 만에 코치들의 역할 분담을 끝냈다. 히딩크 감독은 각 코치의 능력에 맞게 업무를 확실하게 정해줬다. 팀에는 악역을 담당하는 코치가 있는가 하면, 자상하고 선수들을 달래주는 코치도 필요하다.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서로 유기적이고 긴밀하게 움직여야 조직의 전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여기에 월드컵 4강 신화 뒤에는 온 국민의 열망과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본프레레 감독의 도중하차를 놓고 외신들은 한국 대표팀 사령탑 자리는 ‘독이 든 성배’라고 비유했다. 다른 나라에서 온 감독이 그 나라의 문화와 특성을 파악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시행착오도 겪게 마련이다. 또한 현시점에서 우리의 현실을 냉철하게 짚어야 한다. 솔직히 한국 축구가 월드컵 4강 신화를 창조했지만 현주소는 세계 수준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수비수 양성 프로그램 하나 없이 수비 불안을 탓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쿠엘류, 본프레레 감독은 성인 대표팀에 올 정도의 선수라면 감독의 전술변화에 빠르게 적응해야 하는데 한국의 경우 감독이 일일이 설명을 해줘야 한다며 한국 축구의 현실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따라서 철저한 검증과 선발 끝에 영입한 감독이라면 시간을 갖고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위원회가 매우 중요하다. 기술위가 모든 책임을 감독에게만 떠넘기는 한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자신들이 뽑은 감독이 물러났는데 기술위의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 2002 한 · 일 월드컵에서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이용수라는 실무형 인사가 기술위를 지휘했기 때문이다.
이 전위원장은 과거의 관리형 인사들과 달리 감독과 자주 만나 기술위의 의견을 가감없이 전했고 행정도 손수 챙겼다. 이에 반해 이회택 현 위원장이 본프레레 감독과 공식적으로 만난 것은 딱 2번이다. 그동안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나이 지긋한 축구계 인사가 맡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이들은 ‘얼굴마담’ 에 머물며 축구협회 수뇌부의 거수기 노릇을 했다. 기술위가 매번 자질시비에 오른 이유다.
■ “저렇게 의욕 없이 뛰려면 대표팀 유니폼을 벗는 게 낫다.”
8월 17일 대표팀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독일월드컵 예선전을 보던 대한축구협회 홍명보 이사가 던진 말이다. 물론 독일월드컵 본선 진출을 결정지은 상태에서 열린 경기였지만 선수들은 집중력을 잃고 잦은 패스 미스를 범했다.
또한 일부 선수는 감독의 지시를 무시하는 듯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었던 황선홍 전남 드래곤즈 코치는 후배 선수들에게 책임감 있는 플레이를 주문하면서 “이번 사태를 감독만 탓할 수는 없다.
선수들도 책임이 있다고 본다”며 “한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로서 책임감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동안 대표팀은 팬들로부터 정신력 부재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정신력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팬들은 피부로 느낄 수 있다.
2002 한 · 일 월드컵 때 태극전사들은 그라운드에서 죽는다는 각오로 뛰었다. 그리고는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뤄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수들에게 동기 부여가 절실하다. 하지만 이 또한 후임감독 몫이다. 히딩크 감독의 경우 과감한 선수기용과 선발로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동기를 부여했다.
김병지, 홍명보, 안정환 등을 대표팀에서 제외시키면서 노장선수들에게는 정신적 긴장감을 심어줬고 이천수, 송종국, 김남일, 박지성, 차두리 등 어린 선수들을 기용해 자신감을 심어줬다. 해외파라고 지난번 경기에서 잘 뛰었다고 무조건 신임하지 않았다.
몸 상태가 좋고 성실한 선수들을 과감하게 기용하면서 경기 당일까지 코칭스태프조차 ‘베스트 11’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긴장감을 불어 넣었다. 이미 대표팀 감독은 공석이 됐다. 남은 기간은 9개월밖에 안 된다.
2002 한 · 일 월드컵과 비교하면 모든 것이 불리하다. 따라서 더이상 시간을 소비할 여유가 없다. 기술위와 축구협회는 하루바삐 적임자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사심을 버리고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힘을 합쳐야 한다. 선수들도 국민들의 희망과 꿈을 잊어서는 안 된다. 팬들은 경기 결과보다는 최선을 다한 태극전사들에게 아낌없는 성원을 보낸다는 것을 명심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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