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원, NLL 왜곡 등 대선 개입 의혹
NLL 대화록 불법입수 與野 공방 가열
“NLL 포기 논란, 여권이 짠 시나리오”
북 조평통, 박대통령 직접 언급하기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의 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로 야야의 대치는 살얼음판을 넘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벼랑 끝의 혼미상태로 전락하고 말았다.
당초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6월 국회를 통해 경제민주화와 진주의료원 국정조사 등을 놓고 치열한 공방이 예상됐으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려는 검찰에 황교안 법무장관이 재검토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안갯속 서막을 알리기 시작했다.
결국 원 전 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불구속 기소되자 민주당은 국정원 국정조사에 총력을 경주했고, 반면 새누리당은 민주당이 전·현직 국정원 직원을 매수한 의혹과 국정원 여직원을 불법 미행·감금한 혐의에 대한 수사가 완료돼야 국정조사를 실시할 수 있다고 맞서나갔다.
하지만 이 같은 모양새는 지난 6월20일 국정원이 보관 중인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발췌본을 새누리당 단독으로 열람하면서 파란을 예고했다. 새누리당이 노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매개로 대야 공세를 펼쳤고, 민주당은 회의록 공개의 위법성을 제기하며 공방을 이어갔다.
그러나 전문과 발췌본 사이에 일부 차이가 드러나며 정국은 극도로 혼미해졌고, 대선 당시 새누리당 선대위 종합상황실장이던 권영세 주중대사가 “집권하면 NLL대화록을 까겠다”고 한 발언이 담긴 녹취록을 민주당이 폭로하며, 또다시 전면전 양상을 띠게 됐다. 여기에 대선 총괄본부장을 맡았던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은 당 회의 석상에서 정상회담 회의록을 대선 전에 입수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에 불을 더욱 지폈다.
여, 대화록 입수 부인, 음모론 제기
야, 박대통령 사과 요구 등 총공세
새누리당이 지난해 대통령 선거일 이전에 대화록을 입수하고 이를 선거에 이용하려 했다는 논란과 관련, 여야 모두 진위 공방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대화록 사전 입수설을 적극 부인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NLL(북방한계선) 포기 발언을 덮으려는 민주당의 무책임한 폭로라고 밝히고 있고, 반면 민주당은 대화록 입수 과정의 위법성 및 새누리당과 국정원의 관계를 제기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상임위간사단·정조위원장단 회의에서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NLL 포기 발언 논란은 국정원과 새누리당이 짠 시나리오라고 주장하며 정치쟁점화하더니 이제는 한 술 더 떠 관련 음성파일 100여개를 확보하고 ‘그 뒤에 누가 있다’고 음모론을 키우고 있다”며 지적했다. 최 원내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NLL 발언에는 국기를 흔들고 국민의 자존심을 망가뜨린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며 “엄연한 팩트가 있는데도 폭로·홍보전으로 본질을 흐리는 것은 국민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일호 대변인도 한 인터뷰에서 “대선 전에 대화록을 입수했다면 선거 상황이 급했는데 공개를 했겠지, 가지고서도 공개하지 않았겠느냐”면서 “민주당의 ‘카더라’식 주장에 일일이 대꾸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반면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고위정책회의에서 대화록 사전 입수설에 연루됐다고 주장하는 권영세 주중대사와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을 거명하며 대화록 입수 경위를 밝힐 것을 촉구했다. 전 원내대표는 “대화록 공개를 둘러싼 공작적 행태에 대해 분노를 억누를 수 없다”며 “끝까지 대화록 불법 공개의 책임을 묻겠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국정원과 새누리당의 공모행각이 양파껍질처럼 벗겨지고 있다”라며 “민주당은 국민과 천인공노할 범죄커넥션의 배후와 몸통을 밝히겠다”고 덧붙였다.
김한길 대표도 의원총회에서 “박정희 시대의 중정정치가 부활하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새누리당이 지난 대선에서 탈법적 정치공작에 나선 것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적 공방 상당기간 이어질 듯
비밀등급 변경…등급 낮춰도 불법
국가정보원이 보관해온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은 공개됐지만 상당 기간 법정 공방은 불가피해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새누리당은 회의록이 공공기록물이라며 공개의 적법성을 밝히고 있고, 반면 민주당은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명백한 위법 행위라고 반발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비밀을 유지할 수 없을 경우와 국정원장 요청이 있을 경우 기밀 등급을 변경, 파기할 수 있도록 한 보안업무규정 13조2항에 따른 적법한 절차를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유일호 대변인은 “국정원 보관용은 대통령기록물의 법적 지위를 갖지 않기 때문에 비밀 해제를 할 수 있었던 법적 근거가 된다”며 “일단 공공기록물로 분류가 되면 해제 권한이 국정원장에게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시각은 정반대에 있다. 국정원이 2급 기밀이었던 회의록 전문을 일반기록물로 재분류한 것은 새누리당 정보위원에 대한 면죄부 부여를 위한 꼼수라는 것이다. 열람과 공개가 가능한 상태로 회의록 자료를 만들어 새누리당 정보위원들의 혐의를 희석화시켰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새누리당 정보위원 5명과 남재준 국정원장 등을 검찰에 고발한 데 이어 추가적인 법률 대응도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범계 의원은 “설사 비밀등급을 낮춰 보안을 해제해도 공개할 수 없는데 공개한 것은 불법으로, 1차 열람의 불법을 합법화하기 위한 행정행위는 행정법상 무효”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법적인 검토는 국정원이 공개한 회의록 전문을 어떤 기록물로 봐야 하느냐에 따라 그 여부가 가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각각 “국정원이 자체 생산한 문서로 공공기록물이 맞다”, “배석한 청와대 비서관이 녹음한 것을 국정원이 요청해 만든 자료로 대통령기록물이 맞다”며 상반된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결국 대통령기록물로 간주되면 국정원의 회의록 공개는 위법이 되고, 이를 언론에 공개한 여당 의원도 불법인 것이다. 반면 공공기록물일 경우 회의록 전문은 보안업무규정을 적용받게 되고, 국정원장 판단에 따라 재분류도 가능해 적법하다는 것이다.
북, “최고존엄 우롱, NLL은 유령선”반발
2005년 박대통령 평양방문 언급해 눈길
북한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록 공개 사흘만에 ‘최고 존엄(김정일)에 대한 우롱’, ‘대화상대방에 대한 엄중한 도발’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북방한계선(NLL)도 ‘유령선(線)’이라고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한중 정상회담이 28일 열리는 점을 감안해서인지 남북간 대화를 중단하겠다는 강력한 표현은 나오지 않았다.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긴급성명 형식을 통해 “수뇌상봉담화록(정상회담록)은 어느 나라에서나 최대의 극비로 되어있으며 남조선에서도 대통령기록물로 엄격히 비밀에 붙여져 왔다”면서 “괴뢰보수패당이 우리의 승인도 받지 않고 일방적으로 수뇌상봉담화록을 공개한 것은 우리의 최고존엄에 대한 우롱이고 대화상대방에 대한 엄중한 도발이다”라고 말했다.
또 북방한계선과 관련, 그것을 그어놓은 미국조차도 불법무법성을 인정한 유령선이며, 지난 10.4선언이 성실히 이행됐더라면 오늘날 아무 문제로도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번에 공개된 담화록을 통해 괴뢰보수패당이 걸고들던 문제들이 사실과 맞지 않는 억지주장에 불과하다는 것이 여지없이 드러났다”고 비난했다.
이와 함께 “국가정보원 대선개입사건이 터지면서 현 정권의 존립기반이 밑뿌리채 흔들리게 되자 그것을 눌러버리기 위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내용을 다시금 문제시하던 끝에 수뇌상봉담화록을 전격 공개해버리는 추태를 부렸다”며 “지금 남조선에서 야당을 비롯한 각계층과 언론들은 사상초유의 국기문란, 쿠데타, 내란, 초법적 행위 등으로 강력히 성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종북을 내들고 문제시하려 든다면 역대 괴뢰당국자치고 지금까지 평양을 방문하였던 그 누구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위협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2005년 평양 방문을 포괄해 남한 내 인사의 발언을 문제시할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덧붙여, ‘담화록까지 서슴없이 당리당략의 정치적 제물로 삼는데 신뢰를 논할 체면이 있는가’ 등의 비교적 완만한 표현을 사용해 북한 핵문제로 불거진 중국과의 분위기를 감안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