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 위반’ 36년만에 무죄 판결
‘긴급조치 위반’ 36년만에 무죄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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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과 문익환 목사 등
▲ 지난 달 15일 오후 전남 목포시 삼학도 김대중노벨평화상 기념관 앞에서 개관식이 열리고 있는 가운데 이희호 여사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흉상을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옥살이를 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故) 문익환 목사 등에게 36년만에 무죄가 선고됐다.

3일 서울고법 형사8부(부장판사 이규진)는 김 전 대통령과 문 목사 등 15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 선고 대상에는 고 윤보선 전 대통령과 고 정일형 전 의원, 고 함석헌 선생, 이해동 목사, 함세웅·문정현 신부, 이태영 변호사 등도 포함됐다.

이날 재판부는 “긴급조치 9호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성이 확인됐다”며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문제가 많은 조치였다”고 운을 뗐다.

이어 “위헌 무효인 긴급조치로 처벌한 것은 시대적 이데올로기와 상황을 떠나 정당성을 부여할 수 없다”며 “피고인들과 가족들의 절망과 아픔에 대한 위로와 사죄로서 재판부가 뒤늦게나마 판결을 바로잡는다”고 피력했다.

또한 “무죄를 선고하는 것이 충분한 위로가 될 수는 없겠지만 피고인들의 헌신이 민주주의의 기틀이 됐다고 기억될 것”이라며 “판결에 진실되게 담겨있는 뜻을 알아주길 바란다. 존경을 표한다”며 거듭 사죄의 뜻을 밝혔다.

긴급조치 9호는 1975년 서울농대생 김상진이 유신체제와 긴급조치에 항거해 할복자살한 사건을 계기로 정권퇴진을 강하게 요구하는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이를 탄압하기 위해 선포한 조치이다.

그 내용에는 △유언비어의 날조·유포 및 사실의 왜곡·전파행위 금지 △집회·시위 또는 신문·방송 기타 통신에 의해 헌법을 부정하거나 폐지를 청원·선포하는 행위 금지 △수업·연구 또는 사전에 허가받은 것을 제외한 일체의 집회·시위·정치 관여행위 금지 등이 있다.

또한 △이 조치에 대한 비방행위 금지 △금지 위반내용을 방송·보도·기타의 방법으로 전파하거나 그 내용의 표현물을 제작·소지하는 행위 금지 △주무장관에게 이 조치의 위반 당사자와 소속 학교·단체·사업체 등에 대해 제적·해임·휴교·폐간·면허취소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 부여 △이런 명령이나 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위반자는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는 것 등도 담겨 있다.

다음 해 김 전 대통령 등은 3.1절을 맞아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700여명의 신자 등을 앞에 두고 ‘우리나라는 1인 독재로 자유 민주주의와 삼권 분립제도가 말살됐다’는 내용의 민주구국선언문을 낭독고, 이러한 이유로 재판에 회부됐다.

1977년 대법원은 문 목사와 김 전 대통령, 윤 전 대통령, 함 선생 등을 징역 5년과 자격정지 5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하고, 함 신부와 문 신부 등은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한편, 이날 재판에는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 문 목사의 아들인 문성근 전 민주당 고문 등이 참석해 무죄가 선고되는 순간을 지켜봤다.

이 여사는 “무죄를 판결받은 것이 말할 수 없이 기쁘고 감개무량하다”며 “언제든지 재판부가 바르게 판단해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죄없이 수감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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