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산업개발은 지난 2011년 7월 정보기술(IT)회사 아이시어스를 설립했다. 건설 관련업이 주력업종인 현대산업개발그룹의 15번째 계열사이자 첫 IT계열사였다.회사설립 이후 석 달만에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을 포함한 가족이 출자를 단행, 주요주주로 올라섰다. 재계 일각에서는 수많은 대기업 오너일가가 IT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부를 축적하는 것과 유사한 흐름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아이시어스는 설립 2년이 되도록 매출을 올리지 못하며 모회사의 자금지원으로 근근이 유지하는 신세다. 취업 못한(매출 못 올리는) 학생이 부모(모회사)로부터 용돈(자금차입)을 받아 연명하는 셈이다. 정몽규 회장의 첫 IT회사에 대한 애정은 언제쯤 결실을 볼까.
2011년 회사설립 직후 정몽규회장 일가 출자해 지분 20% 확보
독자생존 포부 불구 2년째 매출 0원…모회사 지원으로 연명신세
정몽규 회장 자녀들의 첫 출자
2011년 7월 현대산업개발은 그룹 내 첫 IT계열사 아이시어스 설립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유통·물류 분야 중견중소기업(SMB)를 타깃으로 클라우드컴퓨팅 서비스 ‘클라우드이너스’ 로드맵을 공개하고 본격적인 시장진입을 선언했다. 기존 IT서비스기업과는 다른 방식으로 성장을 도모하고, 특히 그룹 내 지원이 아닌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스스로 성장을 꾀할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그리고 3개월 뒤인 2011년 10월. 이 신생회사는 설립 3개월 만에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흥미로운 것은 증자가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정 회장의 부인, 자녀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점이다.
아이시어스는 정 회장 일가를 대상으로 총 5만주를 발행하는 제3자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주당 발행가는 5000원으로 총액은 2억5000만원이었다. 개인별로는 정 회장이 2만주(1억원)를 출자했고, 정 회장의 부인 김 줄리앤(한국명 김나영), 차남 정원선(17), 삼남 정운선(13) 등도 각각 1만주(5000만원)씩 출자했다.
유상증자 당시 정원선(19)군과 정운선(15)군이 미성년자라는 점이 주목을 받았다. 현대산업개발은 정몽규 회장(51)의 나이가 다른 대기업 오너에 비해 적은 탓에 2세 승계가 논의되기는 이른 시점이었다. 따라서 주요 대기업 가운데 오너 자녀들의 계열사 출자가 전혀 없었던 곳 중 하나였다.
10대 자녀들의 첫 출자대상이 그동안 재계에서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부(富)의 승계 수단으로 이용된 단골업종이라는 점도 관심을 모았다. 이 같은 출자로 아이시어스의 지분구도는 아이서비스(80%→53.3%)와 고봉군 대표이사(20%→13.3%)의 지분율이 낮아지고, 정몽규 회장(13.3%)과 김 줄리엔(6.3%)·정원선(6.7%)·정운선(6.7%)군이 새로운 주주로 합류하게 됐다.
아이시어스는 같은 해 곧바로 유상증자(9만주, 4억5000만원 규모)를 추가 단행했다. 주주배정으로 이뤄진 증자에 정몽규 회장 일가는 또 한 번 참여, 1억5000만원을 출자했다.
그룹 지원 없이는 못살아
오너일가의 애정이 담긴 두 번의 증자에도 불구, 그룹 내 지원이 아닌 시장의 경쟁을 통해 성장하겠다는 아이시어스의 설립 포부는 무색해졌다. 설립 후 2년간 줄곧 그룹 내 자금지원을 받는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아이시어스는 지난해 5월 2억원을 필두로 7월, 9월 11일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9억원을 최대주주 아이서비스로부터 차입했다.
올 들어서도 이 같은 ‘손 벌리기’는 멈추지 않고 있다. 올해는 2월에 1회, 4월에 2회, 5월에 1회 그리고 지난달 14일까지 총 5차례에 걸쳐 8억여원을 역시 아이서비스로부터 빌렸다. 자금차입 목적은 모두 운영자금이었다. 회사규모가 크지 않은 탓에 차입금액 자체는 많지 않지만, 그만큼 소액의 자금도 스스로 확보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실제 아이시어스는 스스로 매출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설립 첫해인 2011년에는 매출 ‘0원’에 영업손실만 4억6000만원이 발생, 적자였다. 이 때문에 부분자본잠식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상황이 더 악화됐다. 지난해에는 매출이 ‘0원’이고, 차입금에 대한 이자비용 등 영업외비용만 불어나면서 14억44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회사가 돈을 단 1원도 벌지 못하고 쓰기만 하는 상황이 지속됐다. 급기야 아이시어스는 오너일가들이 출자한 자본금도 모두 까먹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자본금 15억원에 자본총계는 마이너스(-)3억5800만원으로 완전 자본잠식상태에 빠져든 것이다. 사실상 회사의 존립이 기로에 놓여있다는 얘기다.
이런 와중에 아이서비스의 경영진이 전격 교체됐다. 설립당시부터 관여했던 고봉군 대표이사 대신 박재우 상무를 대표이사로 승진시킨 것이다. 동시에 계열사 아이컨트롤스의 류주현 상무, 아이시어스의 모회사격인 아이서비스의 현계흥 사장이 사내이사진으로 새롭게 포진했다. 이는 설립 2년이 넘도록 부진한 실적에 대한 책임소지를 묻고, 회생을 모색하기 위한 성격으로 해석되고 있다.
경영진 교체까지 단행한 아이시어스가 설립당시 호언장담처럼 ‘독자생존’에 성공할 지, 아니면 계속해서 계열사 자금지원이라는 ‘호흡기’에 의존해 연명해나갈 지 주목된다. 그 이유는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의 자녀들이 아직 다른 대기업처럼 본격적인 지분승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지분승계의 ‘주춧돌’격인 아이시어스의 성공과 실패는 향후 현대산업개발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는 ‘가늠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