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경기도지사, 낮은 자세로 뛰는 ‘현장 행정’
김문수 경기도지사, 낮은 자세로 뛰는 ‘현장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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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을 위한 찾아가는 현장 행정지사로 유명한 민선 5기 김문수 경기도지사. 그는 몸으로 직접 뛰는 열정을 보여 주며 ‘소방도지사’, ‘택시도지사’ 등 다양한 별명을 갖게 됐다. 한때 대선주자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그가 임기 1년을 앞두고 다시금 그의 특유의 현장 행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소방도지사?택시도지사 등 다양한 별명
‘언제나 민원실’ 등 도민 밀착 행정 정착
도민 직접 찾아가 현장 행정서비스 실시


재선에 성공한 김 지사의 특유의 현장 행정은 취임식 대신 의정부 가능역에서 무료급식을 실시하면서 시작했다.

찾아가는 현장행정으로 도민 챙겨

김 지사는 재선 취임식을 도청 소재지인 수원이 아닌, 제2청이 있는 의정부 가능역 교각 아래서 가졌으며, 취임식 후엔 ‘119한솥밥’ 무료급식센터에서 노인 등을 상대로 무료급식 자원봉사활동을 했다. 당시 취임식장에는 단상만이 있었고 취임식은 화려한 화환이나 장식도 없이 말 그대로 ‘검소하게’ 치러졌다.

그는 “겸허한 마음과 자세로 도민을 섬기겠다”고 강조하며 “도민 최우선 자세로 야당과도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겸허’, ‘섬김’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그가 자주 사용하는 이러한 단어들은 사실상 그의 도정 운영 키워드로 볼 수 있는데, 이는 그의 행보에서도 여실히 나타난다.

김 지사는 24일간 승합차를 타고 현장을 누비고, 개인택시 체험을 통해 서민들의 고충을 최대한 가까이서 듣고 이해하려 노력해왔다. 이처럼 현장 행정을 펼치며 몸으로 일해 온 김 지사의 ‘도민을 위하고 더욱 낮은 자세로 일하겠다’는 다짐은 그저 말뿐이 아니었다.

그래서 찾아가는 행정. 현장 행정을 실시하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도민 밀착 행정서비스 4종 세트’라 불리는 ‘365·24 언제나 민원실’ ‘찾아가는 도민안방’ ‘민원전철365’ ‘찾아가는 일자리 버스’ 등이다.

언제나 민원실은 이름 그대로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24시간 도민들의 민원을 해결해 주는 행정서비스를 말한다. 2010년 3월 문을 연 뒤 여권발급, 생활민원현장처리, 무료 법률상담 등 다양한 민원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또 언제든지 전화 한 통이면 민원상담을 받을 수 있는 ‘120 경기도콜센터’와 수원역과 의정부역에 설치된 민원센터 역시 쉬지 않고 도민들의 애환을 해결해주고 있다. 2010년부터 현재까지 언제나 민원실은 총 468만4943건의 민원상담을 실시했으며, 이 중 절반에 가까운 204만9492건을 야간에 처리했다.

찾아가는 도민안방은 공공기관 방문이 어려운 도민을 위해 공무원들이 직접 찾아가 애로사항을 해결해주는 서비스다. 찾아가는 도민안방이라는 이름으로 3팀이, 북부청사에는 2팀이 매일 도내 곳곳을 찾아가고 있다. 2010년 출범 이후 현재까지 총 51만5000건의 민원상담을 처리했다. 

찾아가는 일자리버스는 도민안방의 기능을 일자리 분야에서 특화한 것으로 2012년 출범해 현재까지 모두 280회에 걸쳐 운행됐다. 그동안 1만4320명을 상담해 1143명을 취업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민원전철365는 2010년 11월 출범. 도민들의 교통수단인 전철을 이용해 민원서비스를 실시하는 대표적인 창조 행정 사례로 꼽힌다. 민원전철365는 현재 서동탄과 성북을 하루 4회 왕복 운행해 총 8만1136건을 상담했다.

그동안 김 지사가 실시해 온 찾아가는 현장행정에 대한 대외적 평가도 화려하다. 언제나 민원실은 민원행정개선우수 등 3년 동안 6개의 상을 받으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찾는 대표적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특히 찾아가는 도민안방과 민원전철 역시 2011년 행정안전부가 주는 제8회 대한민국 지방자치경영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청렴시책 펼친 결과, 3위 쾌거

경기도는 국민권익위원회 청렴도 평가에서 2010년 6위, 2011년 1위, 2012년 3위라는 쾌거를 이뤘다.
‘청렴영생 부패즉사’ 정신으로 부정부패 몰아내 경기도청 공무원 1인당 주민 수는 1272명으로 전국 1위다. 과중한 업무에 각종 개발사업도 많아 공무원의 청렴 문제는 늘 경기도의 고민거리 가운데 하나였다.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실시한 전국 16개 시·도 청렴도 평가에서 경기도가 10위를 하자 김 지사는 ‘청렴영생(淸廉永生) 부패즉사(腐敗卽死)’를 외치며 고강도 청렴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고위직 청렴도 평가, 청렴 해피콜, 청렴성 자가진단, 행동강령 평가, 청렴정책보고회 개최 등 다양한 청렴시책을 펼친 결과 경기도는 국민권익위 청렴도 평가에서 2010년 6위, 2011년 1위, 2012년 3위라는 쾌거를 이뤘다. 3년 연속 청렴도 우수 이상의 성적을 받아낸 것. 또 올해 초 경기도는 도가 추진 중인 부서 간 청렴경쟁시스템을 국민권익위에 우수시책으로 제출, 전국 최초로 청렴선도 클럽(CC Club)에 선정돼 전국 지자체 및 공직 유관단체의 청렴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재선 성공한 첫 경기도지사

김 지사는 1951년 8월 27일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경북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0년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이때부터 그는 민주화 운동에 투신, 고난의 길을 걷는다. 서울대 경영학과 재학 시절인 1971년 10월 부정부패척결 전국학생 시위와 관련해 제적된다.

이후 고향에서 4H운동과 야학 등 농민운동을 하다 복학했으나, 1974년 4월에 민청학련 사건으로 또다시 제적되면서 그는 무려 25년만인 1994년 8월에야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서울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재단보조공으로 일했다. 이어 1976년 6월 전국금속노조 한일 도루코 노조위원장을 지내며 노동운동계에서 이름을 날렸다.

1980년에는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돼 심한 고문을 당했고, 1985년에는 전태일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맡았다. 그 과정에서 두 차례에 걸쳐 2년 6개월간 수감되기도 했다.
김 지사가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은 1990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 민중당 전국구 후보로 출마하면서부터다. 이재오·김용태 의원 등도 이때 맺은 인연이 지금까지 계속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1996년 새누리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대표위원 특별보좌역을 맡으면서 보수 정치권으로 ‘전향’, 현실정치에 뛰어든다.
1996년 총선 때 호남 출신 유권자가 우세한 부천 소사에 출마해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꺾고 15대 국회에 진출했다.

이후 경기 부천 소사에서 내리 3선을 했으며, 2004년 17대 총선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으며 당내 입지를 강화하는 등 당내 대표적 개혁인사로 꼽혔다.

2006년 경기지사에 당선됐으며, 2007, 2009 한국 매니페스토 실천본부 민선4기 광역자치단체 공약 이행도 평가 1위, 2007, 2009년 포브스 경영품질대상 공공 혁신부문, 리더십 부문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이후 2010년 통합진보당 유시민 공동대표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하면서 재선에 성공한 첫 경기도지사로 기록됐다.

김 지사는 살아 온 이력에서 드러나 듯 서민적 이미지가 최대 강점이다. 지사로서 보여준 추진력과 풍부한 행정 경험도 다른 후보와 차별되는 부분이다.
반면 중앙정치 무대에서 멀어진 탓에 전국적인 인지도가 낮고 대중성도 부족한 편이다. 재선에 성공한 뒤 여권 내 잠재적 대선주자로 거론돼 왔으나, 대선후보 지지율은 1%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4·11총선에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차명진·임해규 전 의원 등 이른바 ‘김문수계’가 대거 낙선해 당내 기반이 약해졌다는 점도 그를 고민하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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