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축제의 현장으로 GOGO!
대하축제의 현장으로 GOGO!
  • 정흥진
  • 승인 2005.09.1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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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지는 않지만, 그곳에는 소박한 멋이 산재해 있다.
여행도 좋아하고, 맛보는 즐거움도 같이 누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남당항으로 지금 곧 떠날 채비를 갖춰보자. 올 해 9월 10일부터 열리는 제 10회 남당대하축제를 꼭 소개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언젠가 오랜 친구들과 어울려 나들이 삼아 다녀온 서해 여행 중에 멀리멀리 돌아가서 사 온 대하구이의 맛을 잊기 힘든 까닭이었을까. 서해의 지는 저녁노을과 함께 “탁”, “탁” 소리를 내며 단백하게 튀겨진 대하를 맛보고는 그 맛을 잊을 수 없는 기억을 간직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지금부터 대하축제 속으로 같이 떠나 보자. ♠오감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축제 ‘대하축제’로 그림 속의 어촌처럼 조그만 하고 조용하던 남당항은 많은 관광객으로 인하여 번잡한 관광명소가 되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횟집들도 덩달아 많이 생겨나서 항상 싱싱한 회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남당항을 중심으로 80리의 서해안을 따라 펼쳐지는 어장은 그 모습이 소박해서 향토적인 어촌의 전경과 함께 어울려 여행객의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어준다. 계절 따라 형성되는 어장은 봄에는 쭈꾸미, 여름 활어, 가을 대하, 겨울 새조개가 풍부하게 수확된다. 특히, 가을철 남당항에서 잡히는 대하는 매년 9월에서 10월까지 전국적으로 유명한 남당항 ‘대하축제’를 통해 더욱 이름을 높여왔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고단백 스태미너 식품인 대하를 즐길 줄 아는 전국 미식가들이 남당항으로 총 집결한다. ♠‘대하 축제’의 주인공은 ‘대하’ 남당항 대하축제의 처음은 1996년 9월 중순부터 10월에 걸쳐 펼쳐졌는데, 풍어제, 어선퍼레이드, 조개잡이, 대하잡이 체험행사 등의 다양한 축제 행사를 벌여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묶어 놓으며 점점 전국적 행사의 규모로 커왔다. 대하 축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 그대로 대하라 할 수 있겠다. 일명 왕 새우라고도 불리는 이 대하는 보리 새우과의 한 종류이다. 대하가 가장 크게 성장했을 때는 몸길이가 30 ~ 36cm에 달하며 몸빛은 밤빛 또는 자주 빛을 띤 갈색이고, 등쪽은 붉은 흙색, 배쪽은 빛이 엷고 각 마디의 측면에는 담청색의 얼룩얼룩한 무늬가 있다. 이 새우는 흔히 ‘바다의 어른’이라는 특이한 별명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별명의 유래는 할아버지들의 수염이 긴 것처럼 긴 수염(촉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수염은 대하의 몸보다 두 배 정도 길어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본산지는 남미 쪽 대서양이지만 그 크기나 품질 면에 있어서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대하를 따라오지는 못한다고 한다. 대부분 서해 연안에서 잡히는 대하는 이곳 홍성 남당항에서만 전체의 약 80% 정도 되는 양이 모여들고 있어 남당항이야말로 대하의 집산지라 할 수 있겠다. 특히 천수만 일대는 산란철이 되면 산란을 하려는 어류들이 몰려들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이렇게 많은 어종들이 몰려드는 것은 세계에서 몇 안가는 잘 발달된 대륙붕을 가지고 있으며, 어류들이 산란하기 좋은 모래가 그 위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류들의 먹이인 미생물(플랑크톤)이 풍부한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산란을 하기 위해 몰려드는 그 많은 종류의 어류 중에 이 대하도 끼어 있는 것이다. 대하는 6월이 되면 산란을 하기 위하여 이곳으로 몰려들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 한 달 가량 빠른 8월 달부터 잡히기 시작한다. ♠“축제는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런 천연의 어장은 무분별한 간척사업으로 인하여 많이 사라져 갔으며, 인근 해안 대하의 어획량은 많이 줄게 되었다. 이 것이 바로 어민들에게는 생계의 위협으로 다가오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민들은 뭉치기 시작하였고 1991년부터 천연의 어장에서 나는 대하를 이용하여 축제를 준비하게 하였다. 준비를 계획한지로부터 5년 뒤인 1996년에 드디어 어민들의 힘으로 제 1회 남당리 ‘대하축제’를 열게 되었던 것이다. 이 축제는 어민들 스스로가 개최한 만큼 더욱 뜻 깊은 행사였고, 상인들과도 화합이 잘 되어 성공적으로 축제를 끝마칠 수 있었다. 이로써 전국적으로 이 지역의 대하를 알리게 되었으며, 1998년엔 IMF로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잘 이겨내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한 홍성군의 정규 가을 축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축제뿐 아니라, 그 곳에 가면 인근 방조제를 따라 펼쳐지는 철새들의 군무와 해안선을 따라 펼쳐지는 낙조의 전경을 볼 수 있는데, 관광객으로서는 대자연의 위대함을 보고 경탄을 금치 못 할 것이다. 맛과 멋의 어우러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대하’를 어떻게 먹지? 대하는 성격이 매우 급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잡히면 금방 죽어버리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렇기 때문에 마땅한 냉동 시설이 없던 시대에는 내륙 지방에서 대하를 구경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이 시대에는 천일염이 귀하였기 때문에 대하를 찌거나 튀겨서 식용에 이용하였으며, 지금처럼 생으로 이용하거나 소금에 구워 먹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차츰 일본식 문화와 서양의 발달된 기술이 들어오면서 생으로 먹거나 소금구이를 하여 식용에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대하는 이렇듯 예전부터 식용에 이용하던 고단백질 식품이라 할 수 있다. 대하의 요리 방법은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대하의 껍질만 벗겨 초장에 찍어 먹기도 하고, 익힐 경우에는 보통 프라이팬에 굵은 소금으로 얇고 판판하게 깔아 놓은 후 그 위에 올려 구워서 먹기도 한다. 깨끗하기도 하고, 소금간이 적당히 배어들어서 바로 먹기에 아주 좋다. ♠현지의 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대하의 가격은 kg당(약 14마리 가량) 1만 ~ 3만 5천 원 사이로 그 품질과 생산 여부에 따라서 가격에 큰 차이가 난다. 축제가 개최될 때에는 자연산과 양식산 둘의 수요가 비슷하기 때문에 가격 차이가 크게 나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양식 대하보다는 자연산 대하의 공급이 딸리기 때문에 자연산의 가격이 훨씬 비싸진다. 보기에 따라서는 기절해 늘어져 있는 자연산 대하보다는 아직 팔팔해 보이는 양식산 대하가 더 좋아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축제 현장에서만큼은 현장에서 갓 잡아 올린 대하를 맛 볼 수 있다는 기쁨이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지지 않을까싶다. ♠축제의 현장 대하 축제가 개최되면 남당항 일대는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매우 혼잡해진다. 곳곳에서 밀려드는 인파로 이 작은 동네는 발 디딜 틈도 없게 된다. 이렇게 찾아든 관광객들을 위해 바닷가 노변 어느 곳에서든지 대하를 먹을 수 있도록 내어놓고 판매 한다. 식당이나 도로변 평상위에 소금구이를 해 먹을 수 있도록 간이 조리 기구를 내어놓고 손님들을 접대하기도 하는데, 바닷가를 배경으로 앉아서 즐길 수 있는 맛과 어울린 경관 또한 묘미다. 대하축제를 방문한 사람들은 저렴한 가격에 살아서 펄펄 뛰는 대하를 직접 골라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서 곧바로 대하를 구워먹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 맛에 매료된 사람들의 손에는 대하와 얼음을 넣은 소형 아이스박스를 저마다 한두 개씩 들고 집으로 향하는 모습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주변도 둘러보며 찾아가자. 홍성군청에서 나와 ‘청양’방면 쪽으로 길을 따라 나오다보면 오른쪽으로 경찰청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곳을 지나 계속 나오면 넓은 하천과 함께 사거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 직진하면, 구기자의 고장 ‘청양’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가면 머드 축제와 해수욕장이 유명한 ‘대천’이 나온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유명한 ‘대하축제’가 열리는 바로 남당항이 있는 남당리가 나온다. 남당리에서 왼쪽으로 가면 홍성의 명물인 ‘조양문’도 구경할 수가 있다. 계속해서 홍성읍내를 빠져나와 서산 방면인 29번 국도를 타고 갈산 방면으로 달려보자. 이곳은 4차선으로 확장 포장 되어 있어 맘껏 달리기에 적당한 곳이다. 이렇게 가다 보면 ‘은하’방면으로 갈 수 있는 교차로가 나온다. ‘은하’ 방면으로 접어들어 ‘결성’ 쪽으로 가다보면 한가로운 시골풍경이 펼쳐지는데, 시골 정취에 취해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가는 것도 여행의 매력 중 하나다. 다시 이곳에서 40번 지방도로를 타고 남당리 쪽으로 달리다가 622번 지방도로를 타면 ‘대하축제’가 열리는 남당항에 도착할 수 있다. 여기에 도착할 때면 멀리서부터 바다 내음이 물씬 풍기며 관광객들을 맞이하여 줄 것이다. <그 외의 주변 관광지> ♠용봉산자연휴양림 남당항의 축제 이외에도 충남 홍성에는 가 볼만 한 곳, 또 넉넉한 여유가 느껴지는 관광지들이 많이 있다. 그 중, ‘용봉산자연휴양림’은 홍성의 명산 용봉산 동쪽 기슭에 자리한 자연휴양림이다. 휴양림이라고는 하지만, 이렇다할만한 편의 시설이 갖추어지지는 않았다. 숲속의 집이나, 휴양관 등의 숙박시설이 없어 이곳에서는 야영을 해야 하는 불편함은 있다. 그래서 그런지, 청소년 등 단체의 수련을 위한 장소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다른 어떤 시설도 없이 어린이 놀이터와 정자 그리고 산책로정도만 있을 뿐인 용봉산자연휴양림은 자연에 거의 손을 대지 않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휴양림인 셈이다. 이렇듯 인위적으로 꾸민 맛은 없지만, 그래도 이 용봉산은 볼거리가 아주 많은 산이어서 편의 시설을 갖추지 않은 것이 단점이 아니라,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용봉사’라는 고찰의 마애석불과 거대한 미륵불 등이 산재해 있으며, 산도 아주 당당한 바위산이어서 경치 또한 매우 좋다. 산 이름에서부터 그 위용이 느껴지지 않는가. ‘용봉산’이란 이름은 산의 형태가 용의 몸에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이에 더해서 이 지역에는 용봉산의 정기를 이어받고 주변 10km내외에 최영장군, 성삼문 선생, 한용운 선사, 김좌진 장군, 윤봉길 의사 등 수 많은 충신열사들이 탄생하시었다고 한다. 용봉산 정상 부근에는 최영 장군의 활터 및 돌로 쌓은 성터 등도 있어 살아 있는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근래에는 이곳이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고 한다.. ▶교통 용봉산자연휴양림으로 가려면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려 홍성 나들목을 빠져나가면 바로 29번 국도를 만나는 교차로가 나온다. 이 교차로에서 우측으로 빠져 홍성 방향으로 29번 국도를 타고 달려 홍주교차로까지 간다. 홍주교차로에서 좌회전하여 용봉, 예산 방향으로 달리다가 609번 지방도로를 만나면 삼거리에서 덕산 방향으로 좌회전해서 609번 지방도로를 탄다. 이 길을 타고 달리다보면 용봉산자연휴양림 이정표가 나온다. 이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해 들어가면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홍성까지 간 후, 홍성에서 덕산행 버스를 타고 용봉산자연휴양림 입구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야 한다. ♠갈산옹기 3대에 걸쳐 이어 내려오는 홍성의 갈산옹기는 옹기만을 전문 제작하고 있는 옹기집이다. 옹기는 자기와는 달리 투박해 보이지만, 실생활에 있어서 그 실용성은 그 어떤 용기보다 유용성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옹기만이 가지는 ‘숨을 쉬는 용기’라는 특성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부터 생활 속에서는 큰 장독에서부터 작은 단지에 이르기까지 많이 사용되고 있다. 갈산옹기는 이런 옹기를 직접 생산하는 생산 업체이자, 동시에 일반인들이 직접 옹기를 만들어 볼 수 있도록 하여 체험장의 역할도 충실히 하고 있다. 옹기공장 옆으로 작은 옹기 체험장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옹기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고 또 직접 옹기를 하나씩 만들어 볼 수도 있게 하였다. 서울이나 대도시 근교에도 도자기 체험장은 많이 있지만 이런 옹기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곳은 드물다. 체험장에서 직접 고령토를 만져가며 또 물레를 돌려가며 하나씩 옹기를 만들어 볼 수 있고, 또 공장에 들어가 옹기가 생산되는 과정을 직접 볼 수도 있는 곳이 바로 이 갈산옹기이다. ▶교통안내 갈산옹기가 있는 홍성으로 가기 위해서는 역시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려 서산, 해미를 지나면 홍성나들목이 나온다. 이 홍성나들목을 나가면 29번 국도를 만나는데 좌회전(톨게이트를 나가면 지하차도 밑을 자나자마자 좌회전)하여 29번 국도로 올라간다. 이 길을 달리면 안면도 이정표가 있는 상촌 교차로가 나온다. 여기서도 직진하여 해미 방향으로 가면 동성리 이정표가 나온다. 이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하여 들어간 뒤 마을길이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다시 좌회전하여 끝까지 가면 갈산옹기가 있다. ♠김좌진 장군 생가 적막한 달밤 칼머리에 바람은 찬데 칼끝의 찬서리는 고국 생각 돋는구나 참천리 금수강산에 왜 놈이 웬일인고 더러운 세상 한 칼로 쓸어 버릴길 없다. 백야 김좌진 장군의 <단장지통>이란 시의 한 수이다. 홍성의 김좌진 장군 생가는 청산리 전투의 영웅인 백야 김좌진 장군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시를 읊으며 만나게 되는 김좌진 장군은 홍성에 학교를 설립하고 청년학우회 활동을 하며 또 한성일보 이사까지 하였다. 그러던 중 김좌진 장군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3.1운동 때 만주로 건너가 북로군정서를 조직하였고 그 곳의 총사령관을 지내셨다. 1920년 유명한 청산리전투에서 일본군을 무찌르고 그 후에도 독립운동에 힘을 쏟다가 암살되셨다. 김좌진 장군은 역사 교과서 뿐 아니라, 그의 아들 ‘장군의 아들’이라 불리는 김두한 씨에 의해서도 우리에게 익숙한 위인이다. 현재 생가지에는 김좌진 장군의 생가를 복원해 놓았고, 김좌진 장군 기념관이 설립되어 있다. 기념관에는 김좌진 장군의 생애에 대한 기록과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어 위인의 숭고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어 홍성에 왔다면 한번쯤 가 볼만한 곳이라 하겠다. ▶교통안내 김좌진 장군의 생가 역시 홍성에 있기 때문에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려 서산, 해미를 지나면 홍성나들목이 나오는데, 이 홍성나들목을 나가면 29번 국도를 만나게 된다. 이 곳에서 좌회전(톨게이트를 나가면 지하차도 밑을 지나자마자 좌회전)하여 29번 국도로 올라간다. 이 길을 달리면 안면도 이정표가 있는 상촌 교차로가 나온다. 여기서 우회전하여 조금만 가면 작은 마을의 사거리가 나온다. 이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하여 조금 가다가 다시 우회전하면 김좌진 장군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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