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 문건을 공개하면서 국정원 저격수로 떠오른 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국정원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국정원 여직원에 대해 진 의원은 한 오피스텔에서 수개월간 정치개입과 관련한 댓글을 달아왔다고 ‘국가정보원의 대선·정치개입 사건’을 폭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국정원 측은 허위사실 유포라며 진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이를 두고 ‘음모설’이 제기되고 있다.

국정조사 무력화 위해 새누리당과 국정원 야합?
국정원, 진선미 의원 고소…제척사유 만든 셈
“고소고발은 야당 쪽 의원을 축출하기 위한 것”
진선미 “국정원 정치개입 밝히고 책임자 가려야”
국정원은 정치적으로는 중립을 지켜야 하는 기관이다. 국정원법에 따르면 국가를 지키기 위해 방첩과 테러, 내란과 외환의 위험을 감지하는 정보를 담당한다. 그런데 지난해 대통령 선거 직전에 국정원 직원이 정부에 비판적인 의견을 비판하고 정부 정책을 옹호하는 인터넷 댓글을 달아온 것이 드러난 데 이어 최근에는 이것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시에 따라 조직적으로 정치에 개입한 사실이 확인돼 원 전 국정원장이 불구속 기소됐다
원 전 국정원장은 2009년 2월 부임한 이래 한 달에 한 번 꼴로 부서장 회의를 가지면서 젊은 층의 여론을 바꾸기 위한 작업과 ‘종북좌파’단체와 정치인에 대한 대응, 정부의 국정운영을 홍보하는 일을 지시했다는 문건이 나왔다.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초선인 진선미(45)의원이 지난 3월 18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 문건을 공개했다. 그러자 ‘국가정보원의 대선·정치개입 사건’에 연루된 국정원 직원 김모(29)씨는 지난 5일 라디오 방송에서 자신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민주당 진선미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김씨는 또 진 의원을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진 의원은 지난 1일 SBS 라디오 ‘서두원의 시사초점’에 출연해 “국정원 여직원은 한낱 가녀린 여직원이 아니라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수 년 동안 전문적으로 조직적인 교육을 받은 전문정예요원이었다”며 “당시 여직원이 오빠라는 사람을 불렀는데 알고 보니 국정원 직원이었고 그 두 사람이 그 안에서 국정원 지시를 받아가며 철저하게 모든 증거들을 인멸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당시 여직원이 불러 오피스텔에 찾아간 사람은 친오빠가 맞고 그는 민주당 관계자들의 제지로 오피스텔 내부로 들어가지도 못했다”며 “음식물을 전해주려던 여직원 부모조차 출입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또 국정원은 ‘좌익효수’ ID를 사용한 국정원 직원이 특정지역이나 여성을 비하하는 게시물을 인터넷에 올렸다는 주장과 관련 “ID 사용자는 국정원 직원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며 “좌익효수ID 사용자는 국정원 직원이라는 거짓 내용을 유포한 사람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은 “앞으로도 무책임한 거짓 주장과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강력하게 법적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진 의원은 지난 2일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 세상 오늘 서종빈입니다’에 출연해 “당시로 돌아가 보면 국정원 직원은 요원이었다. 오피스텔에서 수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댓글을 달아왔다”며 “당시 현장을 지키지 않으면 오늘 이렇게 수많은 국정원의 정치개입 사실이 다 비밀로 묻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정원 직원은 그 안에서 스스로 경찰의 협조 요구를 무시하고 문을 열지 않은 상태로 모든 자료들을 다 삭제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저는 그 당일날 현장의 갑작스러운 속보로 놀라서 잠깐 현장에 5분가량 머물렀다 온 것이 전부”라며 “그런 저한테 험악한 혐의를 씌웠다. 이해관계인이라고 하면 양 당사자를 말하는 것으로 피고발인과 고발인이다. 그런데 고발인이 새누리당”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정원 국정조사에 포함된 국정원 전 직원의 매관매직 사건에 대해선 “협조할 수 있지만 새누리당이 각오해야 한다”며 “논란이 된 초기에 일부 기사에서 검찰 조사에서 확인된 것처럼 묘사가 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일단 당사자는 혐의 자체를 전면 부인했다”며 “변호인 입회 하에 진술이 이뤄졌는데 변호인을 통해 확인한 결과 한 번도 그런 이야기가 나온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국정원 저격수 진선미 의원
사건은 지난 3월 1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주통합당 진선미 의원이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이 직원들에게 직접 국내정치 개입을 지시한 의혹이 있다며 관련 내용을 담고 있는 문건을 공개하면서부터다.
진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 전 원장이 취임한 2009년 2월부터 올해 1월 28일까지 국정원 인트라넷에 게시된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 제목의 자료 문건을 입수해 공개했다.
진 의원은 “원 전 원장은 여론 조작을 시도하고, 종북 좌파에 대한 대응과 공작, 이명박 정권의 전위부대로서 4대강 등 각종 국정현안을 실질적으로 지시한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진 의원은 “국정원 직원 김 모 씨가 소속된 심리전단의 활동 강화와 종교단체의 정부비판 활동을 견제해야 한다는 지시사항도 포함됐다”고 밝히면서 파문은 일파만파로 퍼졌다.
또 진 의원은 “국정원 문건을 통해 이같은 내용이 드러난 만큼 3월 17일 합의된 국정원 댓글사건 국정조사에서 국정원의 정치개입 배경과 맥락을 총체적으로 밝히고 책임자를 가려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국정원측은 보도자료를 내고 진 의원이 원세훈 국정원장이 국내정치에 불법 개입하려 했다고 주장한데 대해, 정당한 지시와 활동을 왜곡했다며 깊은 유감을 나타냈다.
국정원은 “원 전 원장은 정치중립과 본연의 업무 수행을 강조해 왔다”며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는 전 직원들에게 정치 중립을 지키고 문제발생시 상급자 연대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고 반박했다.

국정조사 무력화 음모?
그렇다면 국정원이 왜 이제와 진선미 의원을 고소했을까? 지난 2일 정보원의 대선개입 논란과 관련,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이에 대한 국정조사를 실시키로 했지만, 국정조사 특위(국조특위)는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새누리당이 진선미 의원의 자격을 문제 삼고 나오면서다. 진 의원은 국정원 여직원 오피스텔 사건 관련 피의자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지난 2일 국정원 국조특위는 사실상 파행으로 마무리됐다. 이와 관련 민주당이 “그렇게 따지면 고발자인 새누리당 전체도 특위에서 빠져야 한다”고 맞불을 놨다. 결국 이날 특위는 여당 의원들의 집단 이탈로 파행을 맞다가 간신히 여야 간사를 선임하고 국정조사 계획서를 채택했다.
그런데 문제는 국정원도 이 순간에 끼어들은 것이다. 국정원은 지난 4일 진선미 의원을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 진선미 의원이 지난 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정원 여직원 오피스텔 사건 당시 오피스텔로 찾아온 사람이 해당 여직원의 오빠가 아닌 국정원 직원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국정원은 이것이 허위사실이라는 것이다.
우연치고는 너무나 절묘한 타이밍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새누리당이 진선미·김현 의원의 제척을 주장했고 이에 민주당이 ‘그 논리대로라면 고발자인 새누리당도 빠져야 한다’고 반박하자 국정원이 직접 진 의원을 고소해 또 다른 제척사유를 만들어놓은 셈이기 때문이다.
국정조사를 사실상 무력화시키기 위한 새누리당과 국정원의 ‘연계설’이 제기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특히 국정원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국정원 여직원 오빠와 관련된 의혹은 지난 대선과정에서 불거진 바 있다. 그런데 정작 국정조사가 시작될 때에야 진 의원을 고소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신경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국정원이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것, 고소가 이렇게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며 “새누리당은 무고를 피하려 당 이름으로 민주당 의원을 고발해놓고, 국조에서 제척사유를 들고 있는데 이게 바로 국정원의 논리로 새누리당이 얘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새누리당이 고소고발로 얽힌 당사자들은 국조위원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 이 사건을 오랫동안 조사해온 야당 쪽 의원들을 축출하기 위한 것”이라며 “가장 강력한 저격수를 제거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반면 신율 명지대 교수는 “관련자가 국조 위원으로 포함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며 “고소고발이 됐든 안됐든의 문제가 아니라 (국정원 여직원 오피스텔)현장에 있었다면 당사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