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 요구 무작정 들어주고 보니 기존 설계와 겹쳐
새 설계서도 문제점 속출… 재설계 반복 끝에 부실공사
2010년부터 계속된 강남역 상습 침수의 원인이 ‘삼성’에 있다는 민간 전문가들의 관측이 나왔다.
서울환경연합과 시민환경연구소는 지난 5월 15일 강남역 하수관거 현장조사발표 기자회견에서 “강남역 침수는 삼성전자의 편의를 봐주기 위한 서초구의 무리한 변경승인이 원인”이라며 “이는 2012년 감사원의 감사보고서와 지난 4월 서울시 감사결과에서도 지적된 결과”라고 주장했다. 하수관거는 빗물 등 하수가 통과하는 길로, 침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시설인 것인데 잘못된 시공으로 오히려 침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두 단체는 “현장조사 결과 총체적 부실이 확인됐다”며 하수관거에서 발견된 문제점으로 △역경사 △각도 △통사단면축소 등을 꼽았다.
역경사는 물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7m 지점에서 시작됐다. 이 지점에 이르러 관로 바닥 높이가 1.5m나 높아진 것인데, 조사 결과 경사가 20도를 약간 넘기는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직선으로 평탄하게 뻗어 있어야 할 하수관거가 5m 구간에서 두 번에 걸쳐 약 80도 각도로 꺾이는 것도 물의 흐름을 방해하는 원인으로 꼽혔다. 마지막으로 폭 2m에 높이 3m인 하수관거 단면이 높이 1.5m로 절반으로 축소됐다. 물이 흘러나가는 방향으로 단면적이 넓어져야 하는데 외레 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현장을 직접 방문한 박창근 시민환경연구소 소장은 “부실 공사로 인해 물이 흐를 수 있는 총량은 정상일 때에 비해 20~30%에 불과하다”면서 “사실상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 감사 결과 ‘삼성 봐주기’ 맞아
부실 공사의 근본적인 원인은 서초구청이 삼성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생각 없는 행정을 일삼았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사실은 2013년 4월 서울시의 ‘강남역 일대 침수발생 관련 감사 결과보고’를 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서초구청은 2007년 3월 5일에 삼성에서 요청하고 설치 승인된 지하공공보도시설(지하에 설치된 지하보행로와 지하도 상가, 출입시설 등)에 대한 도시관리계획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부적정한 결정과 승인을 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하공공보도시설의 결정과 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제 4조 규정에 도로 등의 지하에 수도공급설비나 하수도 등 도시계획시설의 설치가 계획되어 있거나 설치가 필요한 구간인 경우에는 지표면으로부터 4m 이내의 지하에 지하공공보도시설을 설치하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또 삼성전자에서 요청한 강남역 지하층연결로 구간에 2005년 3월 2일 완료한 ‘강남대로 하수관거 신설공사’ 기본설계에서 하수관거의 설치가 계획되어 있었고, 2006년 12월 29일부터 실시설계 용역을 진행 중에 있었으므로 그 위치에는 지하공공보도시설을 설치할 수 없게 되어 있다.
하지만 업무협의를 하면서 이에 대한 언급 없이 삼성 쪽 이면도로상의 기존 하수관거 안전성에 대해서만 재협의 하도록 2007년 3월 30일 회신함으로써, 삼성전자의 요청대로 도시관리계획의 입안절차가 진행되도록 했다.
이처럼 ‘봐주기’식의 결정을 자행한 결과 설계 중이던 하수관거와 삼성의 지하공공보도시설이 설계 상 겹치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서초구는 지하공공보도시설을 이동시키는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안 2안’과 지하공공보도시설은 그대로 두고 하수관거를 빌딩내 사유지로 이전하는 ‘대안 1’등이 포함된 ‘노선변경 검토서’에서 ‘대안 1’을 채택하여 2008년 2월 실시설계를 완료했다.
실시설계를 바탕으로 공사를 진행하던 중 사유지를 통과하는 하수관거 노선에 기존 지하구조물이 설치되어 있어 더 이상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게 되자, 서초구는 4월 설계사에게 설계변경 검토를 요청했다. 설계사(감리단)이 제시한 3개의 대안 중 ‘하수관거를 차도측의 교통섬으로 이동하고 역경사의 하수관거로 변경’하는 대안을 채택해 2009년 2월 설계변경을 승인했다.
이 과정에서 서초구청은 설계용역사가 수리분석 전문업체에서 실시한 수리계산을 근거로 하수관거 중 3개 구간이 통수 능력이 부적합하다며 보고를 올리자 설계용역사와의 업무협의 과정에서 4개 구간의 실유량 값을 임의로 조정해 통과시키는 일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여러 차례의 수정 끝에 최종적으로 변경된 하수관거는 2009년 12월 준공처리 되었다. 그 후 2010년 9월 21일 강남역 침수를 시작으로 2011년, 2012년까지 연이어 강남역은 침수 사태를 겪게 된다.
이같은 주장에 서초구청 담당자는 “설계는 용역을 줘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무원이 관여할 사항은 아니다”며 비리는 없었다고 답변했고, 삼성전자 측은 “상습침수지역이 집중호우로 인해 침수된 사항을 특정 빌딩 때문이라고 인과관계를 규명하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반론에도 불구하고 하수관거에 구조적 문제가 있는 점, 그리고 그러한 문제가 어떻게, 왜 일어났는지 상세히 보고한 보고서도 존재해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환경연합과 시민환경연구소는 “원인 제공자인 삼성이 나서야 한다”며 삼성전자 사옥의 지하주차장 일부를 홍수 때 저류시설로 활용하자고 제안한 상태다. 문승국 서울시 행정2부시장 도 “삼성이 강남역 상습 침수에 도의적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