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록 실종, 정치권 후폭풍 강타
대통령 기록관에 보관돼 있어야 할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의 행방이 오리무중이다. 여야 모두 ‘사초 실종’을 국기문란 사건으로 규정하고 공방이 뜨겁다. 대화록 실종의 책임소재 규명에 따라 여야는 물러설 수 없는 책임공방을 본격화 할 전망이다. 여권은 참여정부를 의심하며 검찰 수사를 의뢰할 방침이며 야권은 이명박 정권을 정조준하며 특별검사제 도입으로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는 방침이다. 정치권에 확산되고 있는 ‘대화록 실종사건’의 공방을 담았다.

‘대화록 실종’…참여정부 vs MB정부’ 책임 공방
與 “사초 실종된 국기문란…檢 수사로 진실규명”
野 ‘기록관 게이트’…MB정권 겨냥, “특검 요구”
여 ‘녹음파일 공개’ vs 야 ‘보안기록 공개’ 압박
서해북방한계선 포기 논란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촉발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열람 파문이 이른바 ‘사초게이트’로 확산됐다. 여야는 22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원본 존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최종 검색에 나섰으나 ‘대화록 실종’이라는 잠정결론을 내놓았다.
일각에서는 참여정부의 청와대 업무관리시스템인 이지원(e-知園)과 국가기록원의 문서 시스템이 서로 달라 기록물 검색이 어려운 것 아니냐는 시스템 문제 주장도 일부 제기되고 있지만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새누리당은 노무현 정부에서 처음부터 대화록을 국가기록원에 이관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는 반면 민주당은 대통령기록물이 이관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일축하며 이명박 정권을 정조준했다.
이제 논란은 ‘대화록 파기’로 옮겨 붙은 양상이다. 만약 대화록이 유실되거나 파기됐다면 누가, 무슨 목적으로 남북정상대화록을 파기했는지에 대한 책임공방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與 ‘참여정부’ 책임론
野 ‘이명박 정부’ 겨냥
새누리당은 참여정부가 대화록을 이관하지 않은 쪽에 무게를 두고, 검찰 수사를 통해 사실을 파혜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사초가 없어진 중대한 사태이기 때문에 검찰 수사를 통해서 없어진 사초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압박했다.
심재철 최고위원 역시 “정치 논쟁으로 풀어낼 사안이 아니라 검찰 수사로 밝혀내야 한다”며 “특검은 검찰 수사가 미진하면 그 때 검토해도 된다”고 선을 그었다.
대화록이 처음부터 기록원으로 넘어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새누리당의 주장과 달리 민주당은 국가기록원의 불법폐기·훼손 의혹을 제기했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국가기록원 5년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의심스럽다”며 “남재준 국정원장 등 실세들은 (대화록이)국가기록원에 없을 것이라 흘려왔다. 불법폐기·훼손하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말”이라며 이명박 정부를 겨냥했다.
민주당 서영교 민주당 원내부대변인은 새누리당의 참여정부 의심과 관련해서 억측이며 적반하장이라고 일축했다. 그 근거로 노무현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기록은 실제로 국정원에도 한 부 보관했기 때문에 기록물을 남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
서 의원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법적으로 보장된 대통령 기록물 관리관을 이명박 측근으로 채운 점을 거론하며 이명박 정부의 파기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현행 대통령기록물 관리법은 직전 대통령의 추천으로 임명하는 대통령 기록관장의 5년 임기를 보장하게 되어 있다. 전임 대통령의 기록을 안정적으로 정리 보존한다는 목적에서다.
하지만 임 관장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 7월 ‘대통령 기록물 사본을 무단으로 유출했다’는 이유로 대기발령을 받았고 2009년 11월 면직됐다. 임 관장과 함께 참여정부 청와대 기록관리비서실 출신의 지정기록물 담당 과장도 물러났다.
이명박 정부는 이들이 빠진 자리에 청와대 행정관을 임명했다. 당시 야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이 전 대통령의 측근이 관장을 맡으면서 전임 대통령의 기록을 열람,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임 전 관장은 당시 기록물을 유출한 적이 없다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올해 1월 대법원은 정부의 면직처분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남발된 수많은 고소‧고발 사건처럼 이 역시 무혐의로 결론났다.
민주당은 참여정부 청와대 업무관리시스템 ‘이지원(e-知園)’ 사본의 무단 봉인해제 및 불법접속 논란 의혹을 부각하며 이명박 정부에서 대화록이 훼손 파기됐을 가능성에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신경민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봉인된 봉하(마을)의 ‘이지원’ 기록에 로그인이 나타났고, 팜스(PAMS·대통령기록관 시스템)에는 삭제기능은 가능하지만 수정기능은 불가능하다는 소중한 결론도 받았다”며 “”어떤 사람이 무슨 내용을 몇 시간 동안 찾아봤는지 모든 활동 내역이 담긴 로그 액티비티 자료를 내고 있지 않아 의혹이 증폭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지난 20일 국가기록원 측에 최근 5년간 국정원 등 외부 기관이 국가기록원에 대해 보안감사를 실시한 내역, 로그·열람 기록, 출입 기록 및 외부 파견기관 공무원 근무일지, CCTV 기록 등을 요구했다. 민주당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국가기록원장에 대한 고소‧고발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정치권은 대화록 실종과 관련하여 ‘대화록 실종 책임’과 ‘수사방식’을 둘러싼 대립으로 격화될 전망이다.

與 ‘육성녹음 파일’ 공개
野 ‘녹음 파일 마사지설’
대화록 실종에 따라 NLL발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서 국가정보원이 보관 중인 2007년 남북정상회담 ‘육성녹음 파일’ 공개를 둘러싼 논의도 확산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논란을 종식하기 위해 육성녹음 파일을 공개해야 한다며 공세를 펴고 있다.
새누리당 유기준 최고위원은 2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제는 보충적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볼 때가 왔다”며 “음원 파일이나 다른 곳에 보관되어 있는 대화록을 본다면 어떤 내용의 말이 그 당시에 발언되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육성녹음 파일의 공개를 주장했다.
민주당은 부정적인 입장이다. 육성녹음 파일 공개는 회의록 전문 공개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만약 북한 최고지도자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육성이 그대로 공개된다면 남북 관계에도 악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다. 또한 민주당은 국정원이 보관 중인 녹음 파일이 수정 또는 편집됐을 가능성도 의심하고 있다.
박지원 의원은 지난 방송 인터뷰에서 “벌써 국정원 음성 파일을 공개하자고 서상기 국회 정보위원장이 들고 나왔는데 일부에서 알려진 바에 의하면 청와대에 보관하고 있는 녹음 파일을 벌써 마사지(가공)를 했다는 얘기도 있다”고 주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육성 파일을 보관 하고 있는 국정원은 “정해진 바가 없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정원이 정치권의 확정적인 요구가 없는 상황에서 육성녹음 파일을 공개할 경우 국내 정치 개입 의혹을 야기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관측된다.
심지어 국정원은 “우리는 입이 없다”는 말까지 했다. 더구나 국정원이 ‘정치권 요구’를 전제로 육성 파일 공개 의사를 밝혔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정정 보도를 요청하는 등 강력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육성녹음 파일 공개를 합의할 경우 국정원도 어쩔 수 없이 공개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새누리당은 국정원에 육성 파일 공개를 요구한다는 방침이 우세해 보인다. 회의록 공개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하지 않았다는 여론이 절반을 넘자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23일 국회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본이 국가기록원에 없다고 최종 결론을 내린 것과 관련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며 언급을 자제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회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할 것이 없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청와대의 이 같은 태도는 대화록 실종 사태가 국회 논의 과정에서 검찰 수사 등을 통한 진실 규명 쪽으로 흘러가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수사 불가피
향후 수사가 확실시 되는 상황에서 검찰이 수사결과에 따라 정치권에 입힐 파장은 클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이 파기됐다면 관계자들은 법적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현행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대통령이나 대통령 보좌기관·자문기관·경호업무를 수행하는 기관 등이 대통령의 직무수행과 관련해 생산, 접수해 보유한 기록물을 임기 종료 전까지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하도록 했다.
대통령기록물은 15년에서 최장 30년의 보호기간이 설정되고, 보호기간 내 열람을 위해서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의결이나 법원이 발부한 영장 등이 있어야 한다.
보존기간이 지난 대통령기록물을 폐기할 때도 전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는 등 절차가 까다롭다. 따라서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과 녹음 파일은 당연히 대통령기록관에 존재해야 한다. 그렇다면 대통령 기록물을 무단으로 파기거나 훼손했을 경우 어떤 법적 책임을 지게 될까?
현행법에 의하면 대통령 기록물을 무단으로 파기하거나 국외로 반출했을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대통령기록물을 은닉, 유출하거나 손상시켜도 7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의도치 않고 과실로 대통령기록물을 손상한다고 해도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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