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에서 전설 속 선묘의 애틋한 사랑을 느껴보자
살아서 못 만난다면 죽어서 따라가죠
걸어서 못 간다니 구름타고 날아가죠
몸으로 못 안긴다길래 물이 되어서 마시옵소서
한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법도 싶은 노산 이은상 선생이 선묘정을 노래한 시조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인 무량수전으로 유명한 부석사는 경북 영풍군 부석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의상조사가 창건한 것으로 그 문화적 가치가 사적으로서의 중요성 뿐 아니라 많은 시인과 소설가들에 의해서도 재탄생되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민족에게 있어서 사찰은 단지 종교적인 의미만을 지니고 있는 곳은 아니기에 문화적 역사적 여행지로 삼아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어 소개해 보려한다.
♥부석사 창건 배경
신라 문무왕 16년 의상은 20세가 되어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등주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당나라 군장의 딸인 선묘라는 아가씨가 있었는데, 선묘는 의상에게 몹시 연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불도에 심취해 있던 의상은 선묘의 마음을 받아줄 수가 없었다. 남녀로서의 관계가 진전될 수 없음을 알게 된 선묘는 의상을 항상 곁에 모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처님의 불제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의상이 유학을 마치고 배를 타고 신라로 떠나자 선묘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바다에 몸을 던져 큰 용이 되었다. 용이 된 선묘는 의상이 탄 배를 보호하여 무사히 본국에 도착할 수 있게 도왔다. 본국에 도착한 의상이 봉황산에 사찰을 지을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 곳에는 도적들의 무리가 많이 있어서 의상의 사찰 창건에 많은 걸림돌이 되었다. 이를 본 선묘는 조화를 부려 큰 돌을 세 번이나 공중에 뜨게 하여 도적들의 무리가 겁을 먹고 도망치게 하였다.
그리고 선묘는 석룡이 되어 절터에 눕고 그 위에 절을 짓도록 하였다. 의상은 선묘가 변한 큰 바위 위에 절을 창건하였고, 세 번이나 돌을 공중에 뜨게 했던 자리에 절을 지었다 하여 부석사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경내에 있는 아미타불 바로 밑 부분이 바로 석룡의 머리 부분이며, 석등 아래쪽이 석룡의 꼬리 부분이라고 전해진다.
또한 이곳에는 선묘의 공덕을 기리는 선묘각과 선묘정이라는 우물이 남아 있으며, 의상조사가 처마 안에 지팡이를 심고서 "내가 떠난 후 이 지팡이에서 가지와 잎이 반드시 돋아날 것이다. 이 나무가 발라 죽지 않으면 내가 죽지 않은 줄 알라."고 말한 비선화나무가 있다.
비선화나무는 의상이 떠난 후 정말 가지와 잎이 돋아나더니 비와 이슬을 맞지 않고도 천년이 넘게 변함없이 살아 있다고 한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조선 광해군 때는 경상감사가 신선이 짚던 지팡이를 탐내 자신도 그 나무로 지팡이를 만들겠다며 톱으로 나무를 잘라갔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얼마 안가 역적의 죄를 쓰고 죽었다고 한다. 경상감사가 죽고 난 후에 나무에서는 다시 가지가 돋아 푸르게 자라났다고 한다.
♥부석사에 오르며
처음 부석사에 오르려면 앞이 막막할 정도로 많은 계단을 접하게 된다. 오르고 올라도 끝이 없을 것만 같이 이어진 계단을 다 오르고 나면 아마도 오르면서 힘들었던 것은 모두 잊게 될 것이다. 무량수전 앞에 서서 바라다 본 전경은 장애 되는 것 하나 없이 탁 트여 있어 웅장한 건물들과 함께 이 곳이 부처님이 계신 극락세계가 아닐까 하는 마음의 위안을 안겨준다. 옛 선조들은 이 아름다움을 미리 알고 이다지도 높은 곳까지 돌과 나무들을 옮겨 절을 지었던 것 같다. 부석사의 모습은 후대에 지어진 다른 절들에 비해 매우 절제된 느낌을 준다. 엄숙하기도 하고 단정하기도 한 건물의 아름다움은 화려함과 여러 가지 장식물로 꾸밈을 하지 않았어도 우리나라 전통 건축물의 백미로 꼽히고 있다.
♥중요 문화제
우리나라의 대표적 화엄종 수사찰인 부석사에는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들이 전하고 있어 부석사의 유구한 역사를 증명해 준다. 현존하는 유물을 시대별로 살펴보면 신라시대의 것으로는 절 입구에 세워진 당간지주, 무량수전 동쪽의 석탑을 비롯한 3층석탑 3기, 석등 2기, 그리고 자인당에 봉안된 3구의 석불좌상이 있으며 고려시대의 유물로는 무량수전의 주존으로 봉안된 소조 여래좌상, 조사당에 그렸던 벽화 6점, 원융국사비, 그리고 화엄경 목판 등을 들 수 있다. 조선시대의 유물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현재 괘불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승당지로 추정되는 곳에는 큰 석조와 맷돌이 남아있어 부석사의 사격을 전하고 있다. 또한 경내에는 괘불대, 석등의 화사석, 불상, 광배편, 배례석, 장대석 등 석물의 부재들이 산재해 있다. 원래는 이보다 훨씬 많은 수의 우수한 미술품들이 있었겠지만 경내에 현존하는 유물들은 화엄종의 수사찰인 부석사의 지위와 유구한 역사에 비해 그다지 많은 수는 아니다. 더구나 이들 가운데 석불상들과 3층석탑 등은 부석사의 유물이 아니고 다른 절터에서 옮겨온 것이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주심포계 건물로 손꼽히는 무량수전과 여기에 봉안된 소조 불좌상, 현존 최고의 사찰 벽화인 조사당 벽화, 당간지주와 석등, 고려각판 등의 유물들은 모두 당대를 대표할 만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 1916년 무량수전의 해체 수리 때 대들보에서 금동 약사불입상을 비롯한 20여 구의 유물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들 가운데 13구의 불상들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부석사 자료>
▲무량수전
극락정토의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는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 건물이다. 아미타여래는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지녔으므로 ‘무량수불’로도 불리는데, ‘무량수’라는 말은 불교의 아미타불과 그 국토의 백성들의 수명이 한량이 없는 일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무량수전은 신라 문무왕 때 짓고 고려 현종 때 고쳐 지었으나, 공민왕 7년(1358)에 불에 타 버렸다. 지금의 무량수전 건물은 고려 우왕 2년(1376)에 다시 짓고 광해군 때 새로 단청한 것으로, 1916년에 해체 수리 공사를 한 것이다.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꾸며져 있으며,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한 구조를 간결한 형태로 기둥 위에만 짜올린 주심포 양식이다. 특히 주심포 양식의 기본 수법을 가장 잘 남기고 있는 대표적인 전통 건축양식으로 평가 받고 있으며, 건물 안에는 다른 불전과는 달리 불전의 옆면에 불상을 모시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조사당 벽화
이 벽화는 부석사를 창건하고 우리나라에서 화엄종을 처음 시작한 의상대사를 모시고 있는 부석사조사당(국보 제19호) 안쪽 벽면에 사천왕과 제석천, 범천을 6폭으로 나누어 그린 그림이다. 보존을 위해 현재는 벽면 전체를 그대로 떼어 유리 상자에 담아 무량수전에 보관하고 있다. 벽화는 흙벽 위에 녹색으로 바탕을 칠하고 붉은색과 백색, 금색 등으로 채색하였으며, 각각의 크기는 길이 205㎝, 폭 75㎝ 가량이다. 양쪽의 두 보살은 풍만하고 우아한 귀부인의 모습이며, 가운데 사천왕은 악귀를 밟고 서서 무섭게 노려보는 건장한 모습이다. 훼손된 부분이 많고 후대에 덧칠하여 원래의 모습이 많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율동감 넘치는 유려한 선에서 고려시대 불화의 품격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건물에서 발견된 기록에 의하면 조사당을 세운 연대가 고려 우왕 3년(1377)임을 알 수 있다. 그에 근거하여 벽화를 그린 연대도 같은 시기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회화사적으로도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석사의 아름다움에 대해
얼마전 모 방송 프로에서 소개되었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서서’라는 책에 보면 이런 글귀가 나온다.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사람도 인기척도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루,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도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기둥의 높이와 굵기, 사뿐히 고개를 든 지붕 추녀의 곡선과 그 기둥이 주는 조화, 간결하면서도 역학적이며 기능에 충실한 주심포의 아름다움, 이것은 꼭 갖출 것만을 갖춘 필요 미이며, 문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도 비례의 상쾌함이 이를 데가 없다.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싶어진다.” 이는 부석사와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이 어느 정도인지 척도를 재는 기준이 되어줄만하다고 할 수 있겠다.
♥찾아가는 방법
경부(중부)고속도로→신갈(호법)IC→영동고속도로→남원주JC→중앙고속도로→풍기IC
이 곳부터는 부석사 도로 안내판이 잘 정비되어 있기 때문에 큰 불편 없이 부석사를 찾아 갈 수 있을 것이다.
풍기에서 부석사까지 소요시간 : 약 30분 정도
부산이나 광주, 마산 등에서 가는 방법은 대구까지 간 후 서대구IC 또는 북대구IC에서부터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풍기IC까지 가면 된다. 이 때부터는 931번 지방도를 타고 부석사까지 가면 되겠다.
가장 쉽고 가까운 길을 찾는다면 대전→옥천→관기→상주→문경→예천→영주를 거쳐 가는 방법이 있다. 약 3시간 정도 걸리며, 영주도착 후 부석사까지는 도로 안내판이 친절히 안내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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