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인선과 관련하여 잡음이 이어지고 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발탁과 관련해 박근혜 정부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 지목받고 있는 ‘7인회’가 재조명되고 있다. 최근 인선과 관련된 정계 반응과 7인회의 실체를 짚어봤다.
유신헌법 만든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발탁
與 “안정·경험 중시한 인사” vs 野 “끔찍한 인선”
박대통령을 움직이는 살아있는 권력…‘7인회’ 주목
이번에도 ‘박근혜 스타일’로 인선이 이뤄졌다. 박 대통령은 여름휴가를 마치고 국정업무에 복귀하자마자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수석비서관 4명을 전격 교체하는 ‘깜짝인사’를 단행했다. 박 대통령은 5일 허태열 대통령 비서실장을 경질하고 공백 상태이던 정무수석을 포함한 민정·미래전략·고용복지 등 수석비서관 4명을 교체했다.

이번 청와대 참모진에 대한 전격적인 인사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잡음이 이어지고 있다. 새누리당은 안정과 경험을 중시한 인선이라며 긍적적인 평가를 하고 있으나 당내 일각에서는 우려와 비난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인선을 둘러싸고 불거졌던 당청 소통 문제 또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은 “당·청 간 원만한 협의를 통한 인사였는지 알 수 없다”며 “인사평을 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인선을 두고 당청 소통 부재가 다시금 불거지는 가운데 여야 공히 집중적인 비난을 받고 있는 인물은 ‘김기춘 청와대비서실장’이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누구?
민주당은 이날 논평을 통해 김기춘 신임 비서실장 인선을 집중 성토했다. 민주당은 김 비서실장을 두고 “검사시절 1972년 유신헌법 초안하신 분”이라며 “1992년 14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당시 법무부장관의 신분으로 주요 영남 기관장들을 모아놓고 ‘우리가 남이가?’하는 발언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했던 초원복집 사건을 주도했던 인물”이라고 혹평했다.
김 비서실장에 대한 비판은 새누리당에서도 이어졌다.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인선 방향성을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어서 어떤 의미였는지, 하여튼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유신검사이자 초원복집 파문 주역인 김기춘 비서실장 발탁과 관련해서도 “야당이 펄펄 뛰는 심정이 이해가 간다”며 날을 세웠다.
김 비서실장은 대표적인 핵심 친박인물로 분류되며 1992년 ‘초원복집 사건’의 주역으로 알려져 있다.
초원복집 사건은 제14대 대통령선거를 일주일 앞둔 1992년 12월11일, 부산 초원복집 식당에 모여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 김영환 당시 부산시장, 정경식 당시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박일용 당시 부산지방경찰청장, 이규삼 당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부산지부장, 김대균 부산기무부대장, 우명수 당시 부산직할시 교육감, 박남수 당시 부산상공회의소장 등이 당시 김영삼 민자당 대선 후보의 승리를 위해 불법선거운동을 모의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선거승리를 위해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조장하고 공무원을 동원하여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는 점에서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에 비견된다.
김 비서실장은 박 대통령을 돕는 원로그룹인 ‘7인회’ 멤버로 알려져 있다. 김 비서실장의 인선으로 7인회가 다시금 재조명받고 있다.
재조명 받는 ‘7인회’
‘7인회’는 박 대통령의 비선 참모조직으로 ‘박 대통령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 통한다.
7인회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건 지난해 5월이다. 당시 김용환 새누리당 상임고문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7인회라고 부르는데 가끔 만나서 식사하고 환담을 한다”며 “총선이 끝난 뒤에도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한 번 모였다”라고 말해 7인회의 존재가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이에 당시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7인회라는 말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박 대통령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올 초 인수위원회 인선과 박근혜 정부 초대 내각 구성 과정에서 7인회 멤버들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고 흘러 나왔다.
7인회 구성원은 김 비서실장을 비롯해 강창희 국회의장,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김용환 새누리당 상임고문,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안병훈 기파랑 대표, 김용갑 전 의원이다.
이들은 공통점은 박 전 대통령 시절부터 군, 행정부, 정치권, 언론계의 요직에서 일했던 경력을 갖고 있다. 이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계기로 박 대통령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시절부터 이후 인연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한 1997년부터 정치적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박 대통령이 빠른 속도로 정치적 입지를 확보할 수 있었던 데는 이들의 공이 크다는 평가다.
박 대통령이 이명박 후보와의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뒤에는 사실상 참모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7인회는 지난해 대선 과정을 비롯하여 전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제 권력으로 도마에 오르내렸다.
7인회 전면부상
7인회 구성원의 면면을 살펴보면 김용환 상임고문은 7인회 좌장으로 유신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과 재무부 장관을 지낸 박 전 대통령의 ‘경제참모’ 출신이다.
최병렬 전 대표는 유신 시절 조선일보 정치부장, 편집국장을 거쳐 5공 출범 직후 민정당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투신했다. 최 대표는 2004년 한나라당 대표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해 ‘탄핵 5적’으로 불린다.
안병훈 기파랑 대표는 유신시절 조선일보 청와대 출입기자로 활동하며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강창희 국회의장은 80년대 신군부의 막내 격으로 육사 25기 하나회 출신 5공화국 인사다.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민주정의당 창당에 참여해 1983년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현경대 수석부의장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정수장학회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적극적으로 박 대통령을 방어하는 역할을 도맡았다.
신임 김 비서실장은 박 대통령은 물론 박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누구보다 깊다. 그는 정수 장학회의 전신인 5·16장학회가 주는 장학금을 받아 학업을 마쳤으며 정수장학회 장학생 출신들의 모임인 상청회 회장을 맡은 바 있다. 1972년 당시 법무부 검사 시절에는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 참여했고 박정희 정권 말기에는 청와대 비서관을 역임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김 비서실장은 선대위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며 박근혜 후보를 적극적으로 도우며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했다. 김용환 고문과 강창희 의장도 당시 박근혜 경선캠프의 고문을 맡았으며 나머지 구성원들도 두드러진 활동을 보였다.
7인회는 새정부 초기 인선과정에서 정홍원 국무총리와 남재준 국정원장 인선에 강력한 영향을 발휘했다고 알려졌다.
더구나 7인회 멤버중 강창희 의장은 지난해 4.11 총선에서 당선돼 8년 만에 국회로 돌아와 국회 의장직에 올랐다. 현경대 민주평통수석부의장은 지난 5월 임명됐다. 민주평통은 대통령 자문 헌법기관으로 대통령이 의장이고 부의장은 대통령이 지명한다. 여기에 5일 김 비서실장이 임명되면서 7인회 멤버들이 박근혜 정부 전면에 재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고 있다.
박 대통령이 원로들에게 국정에 관한 조언을 받는 것은 당연할 수 있지만 국정 전면에서 정권을 움직이는 실세로 이목을 집중시킬 경우 우려가 확산될 수 있다.
이러한 시각을 반영한 듯 정치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7인회를 이명박 전 대통령의 6인회와 비교한다. 이 전 대통령의 6인회는 박희태 전 국회의장, 이상득 전 의원, 이재오 의원,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김덕룡 전 의원으로 이명박 정권의 개국공신들이다.
이명박의 6인회는 권력형 비리로 박 전 의장, 이 전 의원, 최 전 위원장 등이 감옥에 가는 수모를 겪었다. 정치관계자는 7인회가 조언과 자문의 그림자 역할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7인회가 박근혜 대통령을 돕는 원로 그룹으로 남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