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산업은행, ‘길 잃은 미아’ 신세?
KDB산업은행, ‘길 잃은 미아’ 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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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 철회·조직개편 등 첩첩이 쌓인 사안

KDB산업은행의 위상이 애매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를 마친 후 강만수 전 회장이 물러남에 따라 민영화를 중심으로 그동안 추진되던 사안이 전격 철회됐다. 또한 정책금융공사와의 합병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도 불거지고 있어 향후 산업은행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홍기택 회장, 민영화 철회 등 ‘강만수 지우기’ 행보
정책금융과 통합시 산업銀 재무건전성 악영향 전망
STX그룹 부실여파, 올해 적자규모 수천억원대 관측
대우증권·생명보험 매각할까?…새로운 문제로 부상

▲ 7월 24일 서울 여의도 렉싱턴 호텔에서 홍기택 KDB산업은행 회장의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뉴시스

KDB산업은행을 대표로 하는 KDB산은금융지주는 지금 갈팡질팡 혼돈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KDB산업은행이 미로를 헤매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당수 금융계 인사들은 “근본적으로 홍기택 산은금융회장 겸 산업은행장이 선임되면서부터 ‘고강도 개혁’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강만수 전 회장 흔적을 없애라’

홍 회장은 전임 강만수 전 회장이 추진해왔던 사안들을 거의 갈아치우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민영화 추진 철회다. 사실 민영화는 강 전 회장이 취임하자마자 사활을 걸고 드라이브를 걸었던 사안이었다.

이명박 정부 초대 기획재정부장관이었던 강 전 회장은 KDB산은금융그룹으로 자리를 옮기며 민영화 초석을 까는데 온 역량을 모았다. 하지만 “강 회장이 정도 이상으로 ‘오버’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흘러나왔다.

“MB의 전폭적인 후광을 등에 업고 ‘메가뱅크’라는 당위성이 불분명한 목표를 향해 무제한으로 달려나간다”는 것이 금융계 전반의 중평이었다. “IMF 직전이나 금융위기 때 보여줬던 ‘불도저 기질’이 역시 발휘됐다”는 비판도 심심치 않게 들렸다.

홍 회장은 이러한 강 전 회장의 야심에 급브레이크를 걸었다. 강 전 회장이 임기 중 힘을 실어 추진했던 사안 대부분을 ‘전면 백지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홍 회장의 ‘강만수 흔적 지우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무엇보다 강 전 회장이 심혈을 기울였던 소매금융을 전격적으로 축소했다. 지난 6월 24일 홍 회장은 취임 3개월 만에 다이렉트뱅킹 등 개인금융 업무 확대를 위해 조직 규모를 늘렸던 소매금융그룹을 개인금융 부문으로 격하시켰다.

아울러 홍 회장은 KDB산업은행 지점수도 더 이상 늘리지 않기로 했다. 앞서 강 회장 재직 시절 산업은행은 올해 말까지 지점을 130개로 확장할 계획을 세웠지만, 홍 회장이 취임한 후 오히려 100개로 줄이기로 결정했다.

상황이 이렇게 과거와 정반대로 진행되어 가는 데에는 “소매금융을 강화해 보아도 KDB산업은행의 기존 위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홍 회장의 판단이 주요하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 컨설팅을 의뢰한 결과,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뱅킹이 대중화돼 지점 확대에 대한 장점이 극히 미미하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강 전 회장 시절 추진된 정책은 요즘 시대상황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암시로 해석될 수 있다.

▲ 4월 4일 서울 여의도 KDB산업은행에서 강만수 KDB금융그룹 회장이 이임식을 마치고 직원들과 악수를 나누는 모습. ⓒ뉴시스

조직개편은 곧 실적악화?

대신 홍 회장 체제의 KDB산업은행은 정책금융업무 기능 강화에 최우선적인 역점을 두고 있다. 우선 사모펀드본부 내 사모펀드2부을 신설했다. 정책성 사모펀드 업무를 강화하려는 목적에서다.

기업개선지원부도 신설했다. 부실징후 가능성이 농후한 기업에 예방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함으로써 정상적인 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도에서다. 이와 함께 KDB산업은행은 정책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투자금융부를 벤처금융부라는 명칭으로 바꾸고, 기술금융부의 기능도 확대 개편해 나가기로 했다.

상당수 금융권 관계자들은 KDB산업은행의 개편에 대해 “MB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기조 방향성에 대한 차이를 극명하게 비교해 볼 수 있는 예”라고 입을 모은다. 두 정부의 스타일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한 금융계 관계자는 “MB-강만수 시절 KDB산업은행의 민영화·메가뱅크 추진은 당시 ‘이익이 될 만한 것은 뭐든 진행한다’는 그 시대 통치 철학이 강하게 반영된 것이었다”며 “하지만 이번에는 박근혜 정부의 주된 분위기인 ‘무리하지 않고 안정감 있게 국정을 운영한다’는 방침이 고스란히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KDB산업은행이 추구하는 기조가 불과 몇 달 사이에 급격하게 바뀌다보니 현재 KDB산업은행은 ‘붕 뜬’ 상태로 비춰지고 있다. 이른바 ‘정체성’을 두고 KDB산업은행 안팎으로 혼란이 야기되는 것이다.

특히 민영화 철폐 방침으로 인한 후유증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안이 바로 KDB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의 통합 추진이다. 원래 정책금융공사는 민영화를 전제로 분리됐지만 현재는 이들 두 기관을 다시 합치는 방안이 유력시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KDB산업은행의 규모는 커지지만 자산관리공사와 공적자금관리위원회 같은 성격이 엇비슷한 다른 기관과 기능이 중복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향후 중요한 관건이 될 전망이다. 또 부채문제도 만만치 않게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KDB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가 통합되면 덩치는 커지지만 자본규모는 사실상 현재 수준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현재 정책금융공사가 90.3%의 지분을 갖고 있어 산은금융에 대한 주식이 사라지고 자본금 변동 없이 부채만 커지게 되기 때문이다. “통합을 하게 되면 KDB산업은행의 재정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금융계에서는 KDB산업은행이 정책금융공사와 통합하면 정책금융공사가 보유한 무수익 자산까지 가져와야 하기 때문에 해마다 5000~6000억원 가량의 순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숨어있는 뇌관’ 대우증권·생명보험

하지만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의 통합 이슈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제대로 기능하는 정책금융기관을 설립하면 불필요한 곳에 쓰이는 돈을 꼭 필요한 곳에 분산시켜 산업 발전에 더욱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긍정적 견해에도 “통합에 따른 손실발생의 문제는 결코 가볍게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KDB산업은행은 이미 STX그룹 부실의 여파로 적자규모가 수천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KDB산업은행은 올 2/4분기에 무려 2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KDB산업은행의 정체성 혼란 문제와 더불어 홍 회장의 고민이 더욱 깊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홍 회장이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과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면 과제로 떠오른 정책금융공사 통합 문제 외 STX그룹 문제도 적극적으로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할 부분이다. “무엇보다 민영화 추진 방침 철회에 따른 후유증을 의욕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견해도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KDB대우증권과 KDB생명보험 문제도 향후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금융계 일각에서는 KDB산업은행이 정책금융공사와 다시 합치는 대신 KDB대우증권·KDB생명보험 등 산업은행 내 투자 관련 조직과 비은행 자회사를 매각하는 방안이 거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이러한 방침이 직접적으로 현실화되면 해당 기업에 소속된 직원들의 반발이 조직적으로 확산, 금융계 전반으로 여파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금융계 전반에서는 “얼마 전 KB국민금융지주 회장 취임 문제를 둘러싼 노사 간 갈등이 간신히 해결됐는데, KDB대우증권·KDB생명보험 문제가 올 하반기 부각되면 새로운 문제의 씨앗으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고 입을 모은다.

한 금융계 관계자는 “여러 당면 과제와 사안으로 인해 2013년 하반기부터 2014년 초까지는 홍 회장의 리더십과 전문성이 여러모로 시험대에 오르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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