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상사, 몰락의 길 걷나?
종합상사, 몰락의 길 걷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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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재수출에서 탈피…자원개발 집중

우리나라 경제 성장기에 수출역군으로 종횡무진 활약했던 종합상사. 이제 세월이 흘러 더 이상 무역 기능만으로는 제 구실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자원개발 등 전폭적인 체질개선을 통해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몸부림치는 종합상사의 현황을 들여다본다.

국내 4대 종합상사, 올해 2분기 실적저조…대우인터만 웃었다
‘버릴 것은 버리고 간다’ 선택과 집중으로 과거의 영예 찾을까?

▲ 올해 2분기 국내 4대 종합상사가 실적부진을 겪은 가운데 대우인터내셔널은 견조한 실적을 보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대우인터내셔널 본사 전경. ⓒ뉴시스

종합상사제도는 수출 진흥책의 일환으로 마련된 대외무역법시행령에 따라 1975년 도입됐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우리나라에서 종합상사는 이른바 멋지고 폼 나는 회사원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대한민국이 고도성장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바로 수출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요즘처럼 수출이나 무역 채널이 다변화되지 않았다. 제조업은 제품만 생산했고 오로지 종합상사를 통해 해외로 수출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종합상사는 ‘수출역군’의 영예를 독차지하게 됐다. ‘종합상사맨’은 세계를 내 집처럼 누비며 수출을 통한 부국강병의 첨병으로 맹활약했다.

궁지에 몰린 종합상사

그러나 21세기 들어 대한민국 종합상사는 그 빛이 크게 바래졌다. 이는 과거 종합상사가 가졌던 독보적인 특성의 정반대 지점에 있다. 바로 각 제조기업이 무역담당 파트를 따로 마련, 독자적으로 수출할 수 있는 활로가 열리면서 종합상사의 쇠락으로 이어진 것이다.

또한 1990년대 중반 세계화 시류에 발 맞춰 해외여행 자유화가 전격적으로 실시됐다. 누구나 돈과 시간만 있으면 세계를 내 집처럼 왕래하게 되면서 ‘종합상사맨’에게 붙박이처럼 따르던 글로벌한 이미지는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었다.

이에 각 대기업의 간판 계열사로 맹위를 떨치던 종합상사는 이제 무역 일변도의 업종에서 벗어나 다변화를 꾀해야하는 상황에 몰리게 됐다. 종합상사는 개별 제조업체의 수출능력 향상과 더불어 세제 및 금융 등 정부 지원제도의 폐지로 결국 2000년대 들어 입지가 줄어들었다.

결국 종합상사제도는 2009년 공식적으로 폐지됐다. 이후 종합상사들은 새로운 수익사업을 찾기 위해 자원개발에 역점을 두기 시작했다. 기존에 탄탄하게 구축해 놓은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 경쟁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며 나머지 사업을 접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이처럼 환경의 변화와 특혜 폐지로 궁지에 몰린 종합상사가 택한 길은 바로 자원개발이다. 가스나 에너지 등의 자원개발로 방향을 돌린 것이다. 이러한 방향성은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더욱 강화됐다.

주요 종합상사, 2분기 실적저조

올해는 각 종합상사들이 기존 수출실적으로는 더 이상 수익을 거두지 못하고 자원개발 부문에서 일정 성과를 내는 시기로 평가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수출 실적의 저조가 오히려 자원개발의 성과까지 훼손하는 모양새가 펼쳐지고 있다”며 “최근 글로벌 경기가 위축되다 보니 거래자체가 크게 줄어든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해 한 재계 관계자는 “철강·석유·기계 등 종합상사가 취급하고 있는 품목의 수출 증가세는 최근 두드러지게 하락하고 있다”며 “특히 불황 탓에 국제 원자재 가격이 타격을 입었다. 그간 주요 종합상사들은 자원개발을 통해 만만찮은 수익을 올렸지만 최근 국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서 전체 수익까지 하향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업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SK네트웍스·대우인터내셔널·현대종합상사·LG상사 등 국내 4대 종합상사 가운데 대우인터내셔널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의 실적은 부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SK네트웍스의 경우, 매출액은 6조3123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1.7% 감소했고 영업이익도 608억원으로 8.7% 줄었다. 이처럼 실적부진을 겪는 상황에서 SK네트웍스가 유럽시장 진출을 위해 투자에 나섰던 터키 철강가공 센터를 전격 청산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쏠리고 있다.

SK네트웍스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다 보니 사업구조를 효율화하기 위해 일부 비주력 사업에 포함되는 분야를 과감하게 정리했다”며 “여기서 비주력 사업이란 해외에 투자했던 종목 가운데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치는 분야”라고 설명했다.

이달 말 실적을 발표할 예정인 현대종합상사도 영업이익이 크게 감소한 것으로 전망된다. 증권가에서는 현대종합상사의 2분기 추정 영업이익을 전년 동기보다 82.6% 감소한 71억원대로 보고 있다.

LG상사 경우 올 2분기 실적은 매출이 3조1220억원으로 전년보다 4.7% 줄었으며, 영업이익은 75.4% 줄어든 148억원에 그쳤다. 상당한 영업이익 감소폭에 한 증권사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에서 내년 초까지 LG상사의 실적은 다름 아닌 상품가격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중대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점쳤다.

그나마 대우인터내셔널은 올해 2분기 선방한 편으로 평가받는다. 대우인터내셔널이 거둔 매출은 4조317억원으로 1년 전보다 1.0% 줄었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21.6% 증가한 530억원을 기록했다. 다른 종합상사에 비하면 괜찮은 실적이다.

대다수 재계 관계자들은 “올해 하반기에도 대우인터내셔널의 선전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의 트레이드마크 격인 에너지자원 개발의 성과가 하반기에도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비주력 사업은 과감히 정리

최근 수출 실적부진으로 고전하면서 종합상사들은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살릴 것은 살리자’는 선택과 집중을 위한 다이어트에 적극 나섰다.

SK네트웍스는 지난해 중국 산터우의 폴리스티렌 공장인 산터우PS 지분 67%를 현지 회사인 성휘자동차모델에 팔았다. SK네트웍스는 2006년 말 부도위기에 놓였던 산터우PS를 122억원에 인수, 인수금액의 5배가량인 600억여원에 정리하며 커다란 차익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SK네트웍스는 지난해 말 SK그룹의 모태였던 스마트 교복사업을 대리점주 등이 만든 스마트F&D에 매각했다. 2006년 설립한 외국산 주류 수입 판매업체 WS통상을 처분하기도 했다.

SK네트웍스 관계자는 “최근 교복사업이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선정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차원에서 매각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SK네트웍스는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화훼작물 생산·판매업·제과점업 등 15개 사업목적을 정관에서 삭제시켜 보다 효율적인 방향으로 기업을 운영하겠다는 뜻을 확실히 드러냈다.

현대종합상사는 마다가스카르에 투자한 암바토비 니켈광산 프로젝트에서 사실상 철수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종합상사 관계자는 “투자금을 조기에 회수하기 위해 현재 보유중인 암바토비 니켈광산의 지분에 대한 지분매각 청구권을 한국광물자원공사에게 행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종합상사는 지난해 3월 현대아산 지분 2.03%를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유엔아이에 팔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대규모 자원개발에 필요한 투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비주력 사업을 처분할 수밖에 없다”며 “지금으로서는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한 자원개발이 회사에 가장 적절하다”고 털어놓았다.

아울러 LG상사는 주력사업인 자원개발 분야와 산업재 트레이딩 등에 사업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자회사인 한국상용차·픽스딕스·트윈와인 등 수입 유통사업 분야를 과감히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인터내셔널도 시멘트·섬유·유통 등 비주력 자산을 매각하는 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근 대우인터내셔널은 미래전략사업인 자원개발부문과 프로젝트사업 부문에 집중하기 위해 비주력사업 부문 매각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대우인터내셔널 관계자는 “미래 전략사업으로 석유가스 자원개발부문과 플랜트 등의 프로젝트사업 부문을 정했다”며 “과거 대우그룹 시절 주도했던 핵심사업은 대부분 매각해 선택과 집중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나머지 비주력 사업부문인 백화점 등도 추가매각을 검토하고 있다”고 첨언했다.

현재 대우인터내셔널은 부산공장 매각을 진행하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매각주간사인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을 통해 부산공장의 토지·건물 등 사업부문 자산에 대한 사전실사를 끝냈으며 여러 기업에서 인수의향서를 받은 상태다. 부산공장은 자동차 내장재와 섬유·친환경 신소재 등을 생산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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