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재보궐선거에 대한 여야 정치권의 관심이 급격히 집중되고 있다. 국정감사를 비롯한 여야 정국 정상화 등 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10월 재보선이 미니 총선 규모로 치러지는 탓에 여야 모두 총력 태세를 갖추고 있는 모습이다. 이번 재보선은 당초 정치권의 예상보다 판이 커진 것은 물론, 여야 거물급 인사들까지 자천타천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게다가 이번 재보선은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정치적 시험대로 풀이되기도 하며, 박근혜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여야 모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현재까지의 정국상황을 보면 민주당 등 야권이 이슈를 주도하지 못하고 있고,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등 새누리당에 판세가 유리해 보인다.
이에 더해, 국정원 등 공안당국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을 내란음모 혐의로 수사를 펼치고 있는 것도 야권 전체적으로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야권은 여러모로 불리한 구도 속에서 10월 재보선에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판 커진 재보선, 여야 모두 사활
여야는 모두 이번 10월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하게 될 경우,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새누리당은 되도록 이번 선거가 박근혜정부 중간평가 성격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박 대통령 지지도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며 국정운영에 힘이 실리고 있는 상황인데, 기대에 못 미치는 재보선 결과로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권 일각에서는 박근혜정부 중간평가 성격으로 치러지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박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여론에 힘입어 재보궐선거를 치름으로써, 더 크게 승리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다. 이 때문에 여권에서는 벌써부터 재보선 공천을 두고 치열한 눈치싸움이 벌어지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이번 재보선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정권 출범 초기부터 끊임없이 대여 공세 이슈들을 만들어왔지만, 번번이 소득을 얻지 못한 터라 더욱 그렇다. 만일 민주당이 재보선에서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게 될 경우, 지금까지 공들여온 국정원 개혁 문제부터 모든 정국 이슈들이 물거품 돼버릴 가능성도 크다.
그렇게 되면, 내년 지방선거는 물론이고 차기 대선까지 특별한 이슈가 없는 한 정국 판세를 뒤집기가 쉽지 않아지는 것은 물론이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성적이라도 거둬들여야만 하는 것이 이번 10월 재보궐선거라는 얘기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양당이 아니더라도 이번 재보선이 정치생명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세력은 또 있다. 바로, 무소속 안철수 의원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새정치 세력’이다. 최근, 안 의원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사실상 결별하면서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장집 교수마저 떠나버린 안 의원 곁으로 누가 모여들 수 있겠냐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실시된 일부 여론조사에서 안 의원 지지도가 최 교수와의 결별 이후 4%p 안팎으로 빠졌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정가에서는 안 의원이 인재영입을 위해 진땀을 흘리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안 의원 스스로는 언론을 상대하며 표면적으로 인물이 있으면 후보를 내고 없으면 내지 않는다는 식으로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속내는 다르다는 얘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안 의원은 내년 지방선거를 전후로 신당 창당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 입장에서 인물 기근에 고심 깊은 모습이 노출되면, 신당 창당의 동력이 확 꺾이게 될 우려가 크다. 이 점은 10월 재보선에서 기필코 의미 있는 성적을 거둬야만 하는 당위성과도 맥을 같이 한다. 그런데 이미 안 의원의 불안 심리는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 불안한 모습은 안철수 신당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여야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국민들에게까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한국 정치 역사상 제3인물-제3세력이 바람 이상의 것을 만들어낸 경험이 없듯, 안 의원에게 있어서 10월 재보선은 제3의 인물-세력으로 주목받았던 선배 정치인들의 뒤를 따라가느냐 마느냐의 귀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전망이 밝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현재의 인물 기근이 결국엔 양당 공천에서 밀려난 인사들에 대한 이삭줍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촉박하고, 사람은 없고. 안 의원이 승부수를 던져야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안철수, 야권연대 거부 선언…야권분열 불가피
재보궐선거가 확정된 지역구는 현재까지 경북 포항 남-울릉과 경기 화성갑 두 곳이다. 그러나 인천 서구-강화을, 인천 계양을, 경기 수원을, 경기 평택을, 충남 서산-태안, 전북 전주 완산을, 경북 구미갑 등 7곳도 2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아 10월 재보선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최대 9곳에서 재보선이 치러지게 되는 것이다.
선거가 치러지는 지역 상당수가 수도권에 몰려 있긴 하지만, 대부분 새누리당 강세 지역인 만큼 야권이 승수를 쌓기에 다소 어려움이 있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야권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안철수 의원 측은 이번 재보선에서 야권연대를 이루지 않고 독자적으로 선거를 치르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이와 관련, 안 의원은 지난 26일 <연합뉴스>와 가진 단독인터뷰에서 “유권자들의 선택권을 존중한다는 입장에서 서울 노원 병 선거와 마찬가지로 열심히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노원 병 선거구는 지난 4월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안 의원이 당선된 곳으로, 안 의원은 당시에도 야권연대를 이루지 않았었다. 사실상 야권연대 없이 독자적으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안 의원은 또, 최소 최대 9곳까지 예상되는 재보궐선거구와 관련해 “전 지역은 아니더라도 적합한 분이 있으면 후보를 내고, 장기적으로 내다보고 하려고 한다”며 일부 지역만 후보를 내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러면서 독자세력화에 아직까지 성과가 미흡한데 대해 “계속 열심히 노력 중이고 지금도 진행 중”이라며 “마치 물이 끓을 때보면 어느 순간에 끓지, 그 전엔 온도가 높아도 끓지 않아 차이가 없는 것과 같은 정도로 보면 될 것”이라고 ‘때’를 강조했다.
이어, ‘독자세력화의 최종 목표가 정당이냐’는 질문에 “그쪽 방향으로 지향점을 가지고 노력하고 있다”며 신당 창당의 의지를 드러냈다. 신당 창당의 시점에 대해선 “사람이 제일 중요하고 적절한 정도의 사람이 모이면 저도 거기에 한 사람으로 참여해서 결정하게 될 것”이라며 “지방선거에는 어떤 형태가 되든 그 상황에 맞게 적극 대응한다는 것은 불면”이라고 말했다.
안 의원 측근인 경희대 김민전 교수도 27일 MBC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는 그야말로 선택지가 다양화됐다”며 “그동안 두 개의 선택지 가운데 마지못해 어느 쪽을 찍을까 고민하는 경우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또 하나의 새로운 선택지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야권이 무조건 발을 묶어 지금 당장 한 석을 얻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며 “오히려 야권이 서로 경쟁을 통해 누가 더 건강한 야권으로 자리 잡고 그것이 결국 정권교체로 이어질 수 있겠는가. 오히려 이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어, 안철수 세력에게 이번 10월 재보선이 갖는 의미와 관련해 “이번 선거를 통해 다음 선거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지켜볼 수 있는 중요한 선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 의원 측도 이번 재보선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대목이다.
◆판세 불리 野, 히든카드 없나?
안철수 의원 측이 이처럼 독자 출마 입장을 밝힌 가운데, 취임 6개월이 막 지난 박근혜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는 60~70%대를 넘나들고 있다. 10월 재보궐선거까지 야권에 특별히 유리한 이슈가 터져주지 않는 한 민주당도 안철수 의원도 모두 깨질 수밖에 없는 구도인 셈이다. 게다가, 지난 28일 국정원과 검찰 등 공안당국은 이석기 의원을 비롯한 통합진보당 일부 당직자들에 대한 압수수색과 체포영장을 발부하는 사건이 터졌다.
이석기 의원 등이 비밀 결사체를 조직해 북한의 남한 침투를 도우려 했다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측은 ‘유신 부활’, ‘공안 탄압’이라며 맹렬히 반발했지만, 국정원 등은 이미 이들에 대해 내란음모죄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내막이 모두 드러나야 봐야 객관적 사실을 파악할 수 있겠지만, 현재로써는 진보세력이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들에 대한 수사 여파가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세력 전체에까지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은 이들과 적당한 선을 그었지만, 국민적 시선은 여전히 같은 ‘야권’ 또는 ‘진보세력’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통합진보당이 그동안 장외에서만큼은 국정원 개혁에 대해 선도적 위치에 있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는 나아가 국민들에게 ‘국정원 개혁 장외투쟁세력=종북세력’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줌으로써, 함께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는 민주당에게도 염려스러운 상황이 될 수 있다. 즉, 이번 재보궐선거 판은 ‘박근혜 지지율 고공행진’, ‘야권 분열’, ‘종북척결’ 등의 키워드가 힘을 발휘하며 새누리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민주당 등 야권으로서는 이를 뒤엎을 만한 핵 이슈를 던져야만 하는 상황인 셈이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여권에서는 굵직한 인사들이 출마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청원, 임태희, 안상수(전 인천시장) 등 헤비급 선수들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이들에게 이번 재보선은 개인적인 명예회복과 향후 정치 행보를 위한 확실한 도약대로 풀이되고 있다.
그런 반면, 민주당에서는 별다른 카드를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민주당 주변에서는 당을 위해 손학규 상임고문이나 정동영 상임고문 등이 나서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이들은 모두 손 사례를 치고 있다. 당초, 수원 출마가 예상됐던 손학규 상임고문은 불출마의 뜻을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손 고문의 핵심 측근은 “손 고문은 10월 재보선에 나가지 않겠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수원 출마를 준비 중인 이기우 전 의원에게도 열심히 준비하라는 뜻을 전달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선 27일에도 손 고문 측근인 민주당 양승조 의원은 PBC라디오 인터뷰에서 손 고문 출마 가능성과 관련해 “저는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 판단한다”며 일축한 바 있다. 손 고문의 재보선 출마는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손 고문과 함께 전주 완산 출마설이 제기되고 있는 정동영 고문 역시 출마에 부정적이다. 정 고문은 앞서, 이달 초 한 라디오방송과 인터뷰에서 재보선 출마 여부에 대해 “그럴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며 명확히 선을 그었던 바 있다.
결국 이번 10월 재보선은 여권의 중량급 선수들과 안철수 의원 측의 신진세력, 그리고 굵직한 선수가 빠진 민주당 간의 사활을 건 전쟁으로 치러지게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