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점 티 없는 하얀 가슴으로 다가온 백자
한점 티 없는 하얀 가슴으로 다가온 백자
  • 민경범
  • 승인 2005.10.10 1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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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적인 볼륨의 형태와 강한 선이 특징
흙과 불과 혼의 만남으로 백자 완성 기운생동한 작품으로 승화시킨 벽전 너는 누구냐 ? 흙이옵니다. 네 몸을 태워라. 그 아픔은 어찌 하오리까? 아픔 마져 남기지 말고 태워라. 너는 뭐냐 ? 아직도 흙이더냐. 아니옵니다. 이젠 아무리 태워도 타지 않는 물건이옵니다. 어둑한 가마 속에서 새벽의 정적을 깨며 한점 더러움 없는 하얀 가슴으로 다가온 백자와 도예인과의 소리없는 묵언수행이다. ‘동양화와 도자기는 어떻게 보면 별개분야 같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도자기를 하면서 매일 그림을 그리고 있고 또 그 그림을 도자기에 응용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기 때문에 언제나 내 곁에 함께 있다’고 생각한다.’ 일상적인 평범한 삶 속에서의 경험과 가시적인 대상세계를 작가의 내재적 감성과 묵시적 영감으로 재창조 해내는 작업 방법을 추구하며 작품에 있어서 기운생동한 생명력을 흙 속에서 찾아 도자기와 함께 장인정신을 이어가는 벽전 손원모씨 벽전은 옹기와 도자기로 조부와 부친에 이어 3대째 집안 대대로 흙을 사랑하고 흙을 통해 선조들의 숨결과 맥이 살아 숨쉬는 도예인의 가정에서 5형제 중 세째로 태어났다. 유년시절을 흙과 함께 자란 벽전은 도예인으로서의 특별한 교육과정이 없이도 도자기와의 인연은 깊은 듯하다. 그것은 가업 탓이기도 하지만 아마도 전생에서부터 이어진 예견된 만남이듯 싶다. 주간에는 도자기, 야간에는 그림공부 현재 5형제 중 형과 동생과 함께 도예인으로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벽전은 평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부친과 함께 온 가족이 도예업을 할 때는 도자기의 제작과정 중 형과 동생은 물래성형을 허고 자신은 언제나 그림을 맡았다고 한다. 그래서 학창시절에 미술부 활동과 함께 졸업 후에는 도예단지에서 작가들이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고 동양화의 고전미에 매력을 느껴 낮에는 도자기를, 야간에는 한양대학교 특별과정 동양화 강좌에서 묵농 허석순 교수에게 동양화를 사사받고 내공에 정진, 타고난 실력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도예인은 이미 정해진 삶이었다. 벽전에게도 한때는 도예와 화가로서의 갈림길에서 갈등도 있었다. 그러나 벽전은 흙을 선택했다. 선조들이 땀 흘려 일궈 놓은 도예인으로의 삶을 저버릴 수 없었고 이미 자신도 모르는 사이 도예인의 기질이 가슴속 깊은 곳에 뜨거운 정열로 살아 숨쉬고 있었던 것이다. 도자기의 제작과정이 지금은 많이 자동화 되어 간편하지만 예전에 부친과 함께 할 때만 해도 생토와 수비 그리고 매질, 밑뭉치, 태림질 등 10여 가지 이상 모든 과정이 손과 발로 이루어져 우직스러울 정도로 흙을 사랑하는 장인정신이 없으면 못하는 일이라고 벽전은 말한다. 도예는 자기와의 싸움이다 ‘도예는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흙과 함께 하나의 작품을 이루겠다는 인내와 도전정신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흙과 불 그리고 작가의 혼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한다’며 벽전은 도예인으로의 삶은 세상을 바로 보는 청량한 마음가짐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벽전은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추구하기 위해 부친 곁을 떠나 흙과 불과의 싸움을 견뎌오고 있다. 실험 가마에 1백여점씩 넣고 완성된 작품을 기다릴 때면 설레임과 새로움으로 꿈속에서도 작품 생각에 잠을 설칠 때도 많았다고 벽전은 말한다. 도자기는 같은 조건과 온도에서도 각기 다른 작품이 나오듯 그 중에서 세 점만 나와도 성공이라며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이루어진 불의 마술은 상상을 초월한 빛과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바로 도자기라고 벽전은 강조한다. 전통자기에서 생활자기로의 여행 벽전은 강화도에 마련된 가마터 벽전도예(T.011-218-1656)에서 청자보다 백자를 고집하며 순수하면서도 고상하고 서민적이며 평화스럽기까지 한 전통자기와 함께 조상들의 멋과 풍요로움을 현대인들이 느낄 수 있도록 생활자기로 자기문화 창달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벽전은 부인 김경숙씨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자신에 이어 4대째 가업을 이어가도록 하겠다며 가마를 학생들의 체험장으로 활용하면서 도예인으로서 섬세함 속에 다이나믹한 볼륨의 형태와 화가로서 강한 선의 터치가 어울어져 빛어낸 작품을 이루기 위해 중단없는 도자기와의 수행을 정진하겠다고 벽전은 강조한다. 한편 벽전에게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 경기도 광주에서 공수한 소지로 도자기를 굽고 있지만 떡판, 테이블, 식탁, 응접세트 등 대형작품을 만들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25년째 도예인으로 살아온 벽전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창의적이며 도전적인 가치관으로 새로운 도자기 문화를 이뤄가고 있는 벽전의 삶에 장인정신만으로 뭉쳐진 도예인으로의 삶이 희망의 빛으로 승화되길 기대해 본다. 민경범기자 spaper@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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