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에 밀린 파란 눈 기업들
토종에 밀린 파란 눈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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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장은 전통시장”

한국 시장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이 줄줄이 짐을 싸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산업 전 분야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야후를 비롯한 모토로라, ING, GM, 월마트 등 내로라하는 외국계 기업들이 한국 시장에서 철수를 이미 했거나, 고려중이다. 때문에 산업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 산업의 한축을 담당해왔던 외국계 기업들의 철수는 곧 한국 경제 성장을 둔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한국 시장을 떠나는 글로벌 기업들의 속사정을 들춰봤다.

야후·모토로라·HSBC·월마트 등 외국계 기업 한국시장 철수
한국정서 인식부족 및 자국 산업보호주의에 수익성 악화
“외국기업에 대한 다각적 지원정책 필요” 쓴 소리도 나와

▲ 야후코리아는 지난해 10월 말 국내 서비스를 종료했다. 야후코리아는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시장에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뉴시스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는 외국계 기업들의 현황을 살펴보면 IT·휴대폰 업계와 금융·보험 업계에서 그 현상이 두드러진다.

IT 시장에서는 이미 지난해 말 야후가 철수했으며, 세계 점유율 1위인 구글도 한국 시장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현재 IT 시장은 토종 기업인 NHN(네이버)이 독점하고 있다시피 하다.

휴대폰 시장은 그 정도가 더욱 심각하다. 한국 휴대폰 시장에서 상징성이 큰 모토로라를 비롯해 노키아, HTC, 블랙베리, 소니 등 글로벌 기업들은 줄줄이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거나 사업을 축소하고 있다.

한국 시장, 외국기업의 무덤

지난해 말 한국 IT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한 야후코리아는 앞서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 시장에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야후코리아는 지난해 10월 19일 보도자료에서 “한국에서의 사업이 지난 몇 년간 도전 과제에 직면해 왔다”며 “야후의 비즈니스를 개선하고 장기적 성장과 성공을 위한 더 강력한 글로벌 비즈니스 수립에 자원을 집중하기 위해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올 2월 한국 휴대폰 시장에서 잠정 철수한 모토로라코리아 역시 한국 시장의 영업 방식에 대해 불만을 호소했다. 모토로라는 우리나라에 휴대폰을 최초로 소개한 기업으로서 한국 시장 진출 45년 만에 철수를 한터라 업계의 충격은 컸다.

이처럼 IT·휴대폰 시장에서 외국계 기업들이 잇따라 철수하는 이유에 대해 업계 전문가들은 두 가지 요인을 든다. 첫째, 토종 기업들의 득세. 둘째, 한국 시장의 척박한 환경이다. 특히 휴대폰 시장은 삼성전자를 비롯해 LG전자, 팬택 등 토종 3사가 굳건히 버티고 있다. 여기에 토종 3사간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치열한 보조금 경쟁도 외국 기업들이 설 자리를 잃게 만든 요인으로 지목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휴대폰 시장 환경이 워낙 거칠고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특정제품에 쏠림 현상이 심해 다른 외국계 휴대폰 업체들이 좀처럼 성공하기 힘들다”며 “앞으로도 애플 말고는 버틸 수 있는 곳이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토종기업 텃새에 눌린 글로벌 기업

금융·보험 업계에서도 토종기업에 밀린 글로벌 기업들의 철수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씨티은행을 비롯해 SC은행, HSBC, 골드만삭스자산운용, 에르고, ING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 금융기업들이 한국 시장에서의 사업 부문을 축소하거나, 철수를 고려하고 있다. 특히 보험업계에서는 영국 HSBC그룹과 독일 에르고그룹이 이미 국내 보험시장을 떠났으며, 영국 아비바그룹과 네덜란드 ING그룹은 한국 법인을 매각 진행 중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들 외국계 금융기업들이 한국 시장에서 잇따라 철수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본사의 경영전략 차원도 있겠지만, 실질적 원인은 한국 토종 기업들에 밀려 수익성 악화가 지속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실제 외국계 증권사의 지난해 순이익은 지난 10년간 가장 저조했으며 지난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외국계 생보사의 수입보험료 증가율은 연 평균 0.9%로 국내 생보사(10.9%)보다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계 손보사의 원수보험료 증가율은 7.8%로 국내 손보사(14.8%)의 절반에 불과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보험 산업은 설계사 조직 중심의 Face To Face(대면)채널을 중심으로 성장했다”며 “외국계 보험사는 방카슈랑스 중심의 영업 전략으로 경쟁해왔으나, 대면채널 규모가 작아 국내 대형사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지적은 2년 전 신임 SC은행장으로 취임한 리차드 힐 은행장이 “한국 금융 산업은 여전히 전통산업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유통업계에서는 세계적 유통기업인 월마트와 까르푸가 지난 2006년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이들 역시 신세계와 롯데 등 토종 유통 공룡기업에 밀려 백기를 들고 떠났다. 최근 자동차업계에서는 GM의 한국 시장 철수설이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높은 장벽을 넘지 못해 수익성 악화가 지속된 데 따른 것으로 분석한다.

신토불이, 한국 경제에 마이너스

떠나는 글로벌 기업들은 하나같이 한국 시장의 전통적 풍토에 고개를 절래 거린다. 한국의 신토불이(身土不二) 정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본인의 잘못이 가장 큰 패배 요인이라고 자책을 하면서도, 한국 시장의 신토불이는 오히려 한국 경제 성장의 마이너스로 작용할 수 있다고 쓴 소리를 내뱉는다.

외국계 기업들이 한국 시장에 대해 지적하는 문제점으로는 △한국 정부의 자국 산업보호주의에 입각한 지나친 법·제도적 규제 △토종 기업과 차별적 대우(담합 등에 대한 약한 처벌) △해외 기업들에 대한 배려 부족 등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19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한국은 ‘외국 제품’을 선호했다. 잘 만들기도 했거니와 국내 기업이 만든 제품보다 성능이 뛰어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며 “변화는 1997년 말 IMF(외환위기)를 전후해 바뀌기 시작했다. 부도나는 국내 기업들이 줄을 이었고 정부는 외국 자본 유치에 공을 들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다행히도 토종 기업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배려는 공적 자금 투입과 신토불이 바람으로 이어지면서 서서히 살아났다”며 “반면 한국 시장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들은 찬밥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국은 아직까지 리스크가 큰 신흥투자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한국 기업들이 척박한 국내 시장의 환경 때문에 해외로 너도나도 진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외국 기업들마저 한국 시장을 떠나게 되면 결국 한국 경제 성장은 침체될 수밖에 없다”며 “지금이라도 한국 시장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들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다각적인 지원정책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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