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 다시 찾아오는 시련의 계절
친노, 다시 찾아오는 시련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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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내란음모 정국, 친노 연대 책임론 솔솔

민주당 강경파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친노세력이 당 안팎의 다양한 정치적 이슈로 인해 또 다시 찬바람을 맞고 있다. 친노세력은 지난 17대 대선과 18대 총선을 거치며 스스로 폐족으로까지 불렀지만, 이듬해인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2010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가까스로 부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친노 좌장격인 문재인 의원이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로 친노는 또 다시 당내에서 급속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사태와 묶으려는 새누리당의 매서운 공격을 받고 있기도 하며, 김한길 지도부는 파격적으로 당 PI를 변경하며 상징적으로 친노와 선긋기에 나서고 있다. 당 안팎에서 여러모로 친노세력을 흔들고 있는 것으로, 친노는 또 다시 시련의 계절을 맞고 있는 모양새다.

▲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내란음모 혐의 파문이 일면서 새누리당에서는 친노에 대한 연대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친노 인사들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입장이지만, 당내에서조차 친노와 거리두기에 나서는 모습들이 보이고 있다.사진/이광철 기자

지난달 28일 새벽, 국정원과 검찰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해 내란음모 혐의로 압수수색을 펼친 이후 정국은 온통 이석기 사태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그런데 불이 난 곳은 통합진보당이었지만, 민주당 또한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석기 등과 함께 내란음모를 해서가 아닌, 진보진영 전체에 대한 정치적 파장을 우려해서였다.

그동안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을 비롯한 전신 세력들과 거대 공룡 여당을 견제하기 위해 각종 선거에서 선거연대를 이뤄왔다. 특히 세력 연합을 넘어 민주당은 정책연합을 펼쳤고, 이로 인해 유권자들은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등을 통칭해 ‘야권’으로 불러왔다. 즉, 이석기 의원 사태가 단순히 통합진보당에만 타격이 아니라 ‘야권’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이석기 의원 사태가 터진 직후 신중한 자세를 취하던 민주당은 시간을 끌지 않고 통합진보당과 선 긋기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와 관련,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2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워크숍에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내란음모 혐의의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해 깜짝 놀랐다”며 “이제까지 알려진 혐의가 사실이라면 용납될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처음 입장을 밝혔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도 국기문란 사건이지만,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 역시 국기문란이라는 단호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은 지난 4일 국회 본회의에서 진행된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에 당론으로 찬성표를 던졌다. 통합진보당은 민주당의 이 같은 당론에 강한 배신감을 표했지만, 민주당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시간을 끌면 이석기 의원에 대해 감싸기 한다는 비판이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 국회 체포동의안이 처리될 때까지 그 짧은 시간 동안 새누리당은 민주당을 향해 공세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특히, 새누리당의 총구는 친노세력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그동안 야권연대를 주도적으로 추진했던 세력이 친노세력이었으며, 야권연대가 없었다면 이석기 의원 등 종북세력이 국회까지 진출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논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민주당으로서는 시간을 끌면 끌수록 이석기 의원에 대해 감싸기 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속전속결 체포동의안 처리 일정에 따라가고 말았다. 친노를 보호하기 위한 명분이 아닌, 야권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이석기와 친노, 관계있나?
이석기 의원 사태를 계기로 한 새누리당의 민주당에 대한 공세는 집요하고 예리했다. 2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도부 중 상당수가 민주당 책임론을 제기했다. 표면적으로 ‘민주당 책임론’이었지만, 사실은 ‘친노 책임론’이나 다름없었다.

이와 관련, 이혜훈 최고위원은 이 자리에서 “민주당은 당시 종북인사가 야권연대에 포함된 것을 몰랐기 때문에 무죄라고 하지만, 백보양보해서 법률적-정치적-도덕적 무죄는 없다”며 “통합진보당의 종북 논란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언론도, 새누리당도 지적했는데 민주당만 몰랐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최고위원은 그러면서 “민주당은 당시 야권연대를 했던 통진당 강령에 들어있었던 국가보안법 폐지와 주한미군 철수 등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며 “민주당의 야권연대 종료선언이 없었다. 관계청산, 국민 앞에 사과, 연대관계 종료 선언이 책임정치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심재철 최고위원도 “민주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야권연대를 통해 친북세력의 국회 진입을 도운 원죄가 있다”며 이 최고위원을 도왔고, 홍문종 사무총장 역시 “이석기 의원을 사면했던 노무현정부와 지난해 총선 때 야권연대를 통해 진보당에 13석이나 안긴 민주당도 역사 앞에 반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우택 최고위원은 “이석기 의원이 지난 2002년 당시 민혁당 사건으로 2년6개월을 선고받았음에도 이듬해 광복절특사로 가석방됐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가석방됐었다는 것이다.

정 최고위원은 그러면서 “2005년에는 반성문 한 장 없이 특별 복권됐다”며 “모두 노무현정부 때 이뤄진 것으로 매우 이례적이다”고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민주당의 야권연대 문제 이전에 노무현 정부에서부터 친노세력이 이석기 의원 등 이적 세력과 모종의 커넥션을 가지고 있었을 수 있다는 의혹을 던진 것이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과 여권에서는 이석기 의원이 사면-복권 됐던 2002년과 2005년 당시 법무부장관이 각각 강금실, 천정배 전 장관이었으며, 청와대 민정수석이 문재인 의원이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모두 친노 핵심 인사들이었다는 점에서 이들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회 법사위 소속 새누리당 간사인 권성동 의원은 3일, “법무부 지침은 통상 형기의 80%정도를 복역해야 가석방 요건에 해당한다”며 “하지만 이 의원은 2년6개월의 80%면 2년을 살아야 하는데 1년3개월밖에 안 돼서 가석방됐다”고 꼬집었다. 이에, 권 의원은 “당시 민정수석이 문재인 의원이었는데, 문 의원은 왜 이석기 의원을 특별 가석방시켰는지 명확하게 밝힐 의무가 있다”고 해명을 촉구했다.

새누리당은 시간이 가면서 더욱 강력하게 친노 책임론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친노 책임론’을 시사하는 정도였다면, 3일 쏟아진 발언들은 강도가 달랐다. 특히, 문재인 의원은 직접적으로 표적이 되기도 했다.

새누리당은 문재인 의원이 2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정기국회 회기결정 안건에 ‘기권’한 것을 두고, 사실상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처리에 반대한 것이라며 맹비난을 쏟아냈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 황영철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문 의원은 회의에 오랫동안 앉아 있으면서 무엇을 표결하는지, 왜 표결에 찬반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 없이 앉아 있었다는 것”이라며 “그렇다면 문 의원은 초선의원보다 못하다”고 쏘아붙였다.

그러면서 “적어도 대통령을 꿈꾼 사람이라면 국회가 어떤 절차에 의해 이뤄지는지, 무엇을 논의하는지를 누구보다 관심 있게 지켜보고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며 “기권표를 행사하는 것은 당연히 이석기 체포동의안에 대한 본인의 심중이 표결에 나타났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난했다.

홍지만 원내대변인도 “민주당이 종북좌파 통진당 이석기 의원의 탄생에 숙주 역할을 했다”며 “한때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 파괴까지 외치면서 선거를 치렀던 사람을 특사로 풀어주고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준 사람이 바로 문재인 의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문 의원은 여기에 더해 (회기결정 표결에) 기권했다. 문 의원은 즉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라”며 “문 의원은 어떻게 얼굴을 들고 국민 앞에 나설 수 있느냐”고 비난을 퍼부었다.

▲ 민주당이 60년 역사상 처음으로 당의 상징색깔을 파란색으로 교체했다. 정치권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상징색이었던 노란색을 버렸다는 이유에서 사실상 친노와 차별화 선언을 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

◆민주당의 ‘친노’ 거리두기
흥미로운 점은 새누리당의 이 같은 민주당 책임론 공세가 사실 민주당 내부에서 먼저 논리 제공 됐다는 것이다. 민주당 내 반노세력들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친노세력과 확실한 거리두기에 나서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당내 비주류 중진인 김영환 의원은 새누리당의 공세가 시작되기에 앞선 1일 보도자료를 내고 “이제 국민들은 민주당의 연대와 통합의 파트너였던 통합진보당의 민낯을 봤다. 이들에게 통합을 구걸하고 연대에 목숨 걸던 우리의 얼굴이 화끈거린다”면서 “그들과 당을 합치고 공동정권을 하자고 주장한 자들이 누구였냐”고 사실상 당내 친노세력을 겨냥했다.

김 의원은 이어, “나는 (통합진보당의) 선거부정이 있을 때 ‘통합진보당은 정권 교체의 밥상을 발로 차고, 구정물을 끼얹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과 선을 그어야 한다고 수도 없이 말했다”면서 “연대를 하더라도 정책에 그쳐야 하고 이념과 노선이 다른 그들과는 절대 통합하면 안 된다고 계속 주장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그들을 원내에 불러들인 민주당의 무능과 무원칙이 답답하고 부끄럽다”며 “오늘의 사태에는 제 발로 서지 못하고 연대와 단일화에만 목맨 민주당에도 책임이 있다”고 강도 높게 내부 비판했다.

민주당 내부의 친노 거리두기 움직임은 김영환 의원을 통해서만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한길 지도부가 영등포당사를 떠나 여의도 당사 시대를 개막하며 당 PI를 비롯한 상징색 모두를 바꾼 것을 두고도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우선 영등포당사는 열린우리당 시절이던 2004년 처음 입주했었고, 당사 앞마당은 노사모 등 그야말로 친노 지지층의 토론광장과 같은 역할을 했었다. 영등포당사는 친노에게 있어서 보금자리와 같은 곳이었던 셈이다. 그런 당사를 떠나 민주당은 여의도로 이사를 왔다. 대산빌딩,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선 캠프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당의 상징색깔도 민주당 60년 역사상 처음으로 파란색을 채택했다. 민주당 전통의 노란색과 녹색을 버리고 보수의 상징색인 파란색으로 변화를 준 것이다. 중도보수층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는 하나,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상징색깔이었던 노란색을 버렸다는 점에서 뒷말이 무성하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시절 붉은색으로 상징색을 바꾼 전략을 카피한 것이라고 비판하며 당시 새누리당의 입장과 민주당의 지금 입장은 다르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 대통령과 확실한 선긋기를 하며 차별화 전략을 짜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지금의 민주당은 당의 정신적 지주인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차별화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전략적 미스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김한길 지도부가 친노와의 차별화를 선언한 것으로 풀이한다면 결코 전략 미스로 볼 것만도 아니다.

당 안팎에서 친노를 흔들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에서는 민주당의 상징색 교체를 두고 이런 말이 나왔다. 홍문종 사무총장은 “민주당이 여의도 새 당사에서 입주식을 하면서 파란색으로 된 새로운 PI를 공개했다. 노란색을 사랑한 친노와의 결별을 의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의미심장한 해석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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