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한 손에는 ‘민주주의 회복’, 또 다른 손에는 ‘민생 살리기’를 들고 전국 투어의 길에 나섰다. 김 대표는 24일 오전 서울 광화문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민생살리기 출정 결의대회’를 갖고 첫 행선지인 의정부로 향했다.
민주당이 장외투쟁을 시작한 지 55일만이며, 김한길 대표가 노숙투쟁을 벌인 지 29일만에 서울광장에서 자리를 뜬 것이다.
당초, 민주당은 내부적으로 서울광장 천막당사 철수 여부를 놓고 찬성과 반대 이견이 있었다. 강경파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3자회담 등에서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더욱 강력한 장외투쟁을 주장했고, 온건파 일각에서는 출구 없는 투쟁이 돼버렸다며 민생을 위해서라도 원내로 회군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노숙투쟁까지 펼치고 있는 김 대표 입장에서 정기국회를 무시하고 전면적인 장외투쟁을 강화하기도, 그렇다고 그 어떤 명분도 없이 천막당사를 철수하기도 어려운 그야말로 딜레마 같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 고민 속에서 김한길 대표가 꺼내든 ‘원내외 투 트랙 투쟁’ 방안은 민주당이 처한 상황에서 꺼낼 수 있는 최상의 카드로 평가되고 있다. 당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김 대표 자신에게 더 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김 대표는 전국 투어에 나서면서도 서울광장에 설치된 천막당사는 철거하지 않기로 했다. 천막당사를 거점으로 두겠다는 것인데, 사실 당대표 없는 천막당사는 그야말로 빈껍데기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대표가 천막당사를 철수하지 않기로 한 것은 흥미롭다. 다분히 당내 반대파들의 공격을 차단하기 위한 방패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한길 대표가 별다른 명분 없이 천막당사를 철수한다면 당내 친노세력 등 강경 반대파의 극심한 반발에 처할 가능성이 높았다. 김한길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오르게 될 것은 물론이고, 공공연히 나도는 ‘관리형 대표’ 이미지도 더욱 확산될 수 있었다. 그렇게 대표 흔들기가 확산된다면, 내년 지방선거까지 김 대표가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따라서 천막당사는 껍데기뿐일지라도 김 대표에게 있어서는 그 자체로 상징적 의미가 클 수밖에 없었다. 즉 철수하지 않고 남겨둔 천막당사는 여권에 대항한 상징물이라기보다, 당내 반대파 견제를 막기 위한 상징물로 전환된 셈이다. 먼 길 떠나는 김 대표가 굳이 천막당사를 남겨 놓았다는 점은 그래서 묘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김한길 대표는 이번 전국투어를 통해 전국적 조직 다지기를 할 수 있다. 앞서 용꿈을 꾸던 당대표들이 전국투어를 펼치고 난 이후 대권 반열에 올라섰던 것처럼 김 대표 또한 이번 투어를 계기로 대선 주자급으로 발돋움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김 대표는 각 지역에서 원외위원장들과 만나 하루를 함께 지내며 스킨십을 강화하게 된다. 동고동락한 김 대표에 대한 정서적 호감이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 전국적 자기조직 기반이 없었던 김 대표에게 있어서 이번 전국 투어는 그야말로 최상의 기회가 될 수 있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는 이미 서울광장 노숙투쟁에 지쳐 있는 상황이었다. 야권의 대표적 중도-실용론자인 김 대표는 그동안 단식이나 삭발, 지금과 같은 노숙 등 강경투쟁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아 왔다. 그런 그가 29일간이나 찬바람 쌩쌩 불어대는 광장에 텐트를 치고 지내왔으니, 지칠 만도 할 법하다.
실제로, 김 대표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도 “겨울이 아니라 요즘도 아침저녁으로 춥다”며 노숙 생활의 고됨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 전국투어는 김 대표의 피로를 해소해줄 것으로 보인다. 지역을 투어하면서는 노숙을 하지 않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24일 비가 그치고 난 이후부터 날씨는 급격히 쌀쌀해질 것이라는 기상예보가 있다. 김 대표 입장에서는 우연처럼 더 큰 추위를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민주주의 회복과 민생 살리기를 외치며 전국 투어에 나선 김한길 대표. 출구 없던 전쟁 속에서 취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을 선택한 모습이다.
박강수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