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대 대한민민국의 대통령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체류시절 국적을 일본으로 표기한 문서가 공개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 미국 국가기록원과 고문서보관 사이트 엔시스트리닷컴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918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징집서류에 국적이 일본으로 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뉴욕한국일보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 관련 서류에 ‘제1차 세계대전 징집 카드(U.S. World War I Draft Registration Cards)’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영문 이름’(Syngman Rhee), ‘생년’(1875년) 등과 일치하는 연방 문서 60건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필기체로 직접 작성한 이 카드에는 나이는 44세이며 음력생일(3월 26일)과 직업은 ‘한국학교 교장’(Korean School Principal), 하와이 거주 주소 등 인적사항들이 나와 있다.
또한 ‘가장 가까운 친척’은 이 심(Shim Rhee)으로 관계를 ‘누이(Sister)’로 한국 주소와 함께 작성했고 인종은 ‘아시안(Oriental)’이라고 표기했다.
일본의 강제합병으로 식민지 국민으로 전락한 시점이기는 하지만 하와이 등 미국에서 외교 중심의 독립운동을 펼친 그가 신상 정보난에 국적을 일본으로 밝힌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1차 대전 징집 자원을 파악하기 위해 작성된 징집 카드는 당시 미국에 거주하는 18~45세 사이의 남성을 대상으로 했다.
그가 국적을 일본으로 표기한 것은 식민지 백성으로 전락한 시점에서 아시아의 열강인 일본의 국민으로 신상정보를 기록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듬해 상해 임시정부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등 해외 독립운동의 중심에 있던 그가 미국의 공문서에 '일본인'이라고 밝힌 것을 두고 비난이 일고 있다.
일부에서는 그가 ‘친일성향’이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러일전쟁 막바지였던 1905년 8월4일, 이승만은 하와이의 윤병구 목사와 함께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을 면담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이승만이 고종 밀사로 파견되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당시 뉴욕헤럴드 트리뷴 등 미국 신문 보도에 따르면 이승만과 윤병구는 “우리는 황제의 대표자가 아니라 ‘일진회’라는 단체의 대표자”라면서 “황제는 한국인들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고 대한제국과 고종을 적극 부정했다. 1904년 결성된 일진회는 이듬해 11월 조선의 외교권을 일본에 넘긴 을사늑약을 적극 찬성하는 등 대중적 영향력을 가진 친일단체로 성장했다.
뉴욕헤럴드 트리뷴은 “러시아 사람들은 줄곧 적이었고, 우리는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이기고 있는 것에 기뻐한다”는 윤병구의 말과 함께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서 이들은 일본을 주인으로 선택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어쩌면 독립운동가로 위장한 친일파, 민족정신 보다는 일본과 미국을 등에 업고 초대 한국 대통령의 자리를 차지한 기회주의자일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