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복지공약 후퇴는 증세트라우마?
박 대통령 복지공약 후퇴는 증세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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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축소 vs 증세’ 갈림길에 선 박근혜 정부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지급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당시 대표적인 복지공약이 후퇴한 가운데 임산부를 비롯한 여타 복지 공약들 또한 줄줄이 축소되거나 무산되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재정적 이유로 복지공약 후퇴의 배경을 강조했으나 증세의 필요성을 드러내 놓고 강력히 주장하지는 않고 있다. 여전히 박 대통령의 기본입장은 증세없는 복지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증세에 대한 소극적 태도는 증세 트라우마와 무관치 않다는 설명이다.

▲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시절에 청와대의 퍼스트레이디로, 종부세 도입 때는 야당 대표로 증세가 정치적 명운을 걸어야 할 만큼 국민적 반발이 크다는 인식을 형성하게 됐다. ⓒ청와대

황우여 “복지재원은 증세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
민주당, ‘부자감세 철회’ 로 복지 재원 확보 주장
증세 가능성은 재보선 전후한 여론이 중요 변수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당시 복지공약이 줄줄이 후퇴했다. 대표적인 복지공약인 기초연금 공약을 비롯하여 고위험 임산부 진료비 지원 예산, 영유아 부모들을 위한 공약들마저 축소되거나 무산됐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산부인과에서부터 노인정까지 거짓공약이라며 맹비난했다.

복지공약에 대한 비판여론이 확산되자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재정적 이유에 따른 불가피함을 설명하는 등 진화에 나섰다.

박 대통령이 약속했던 복지공약의 재원 규모는 135조원에 달한다. 그러나 정부는 올해 세수 부족분이 78조원, 민주당은 10조원 규모로 보고 있다.

야당은 일찌감치 부자감세 철회등을 통해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이명박정부 이전 수준으로 대기업과 고소득층의 세부담을 되돌리는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해 복지공약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

민주당은 법인세와 소득세 기준을 조정해 중산층과 서민 세부담을 늘리지 않고 5060조원의 세수 확충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논리다.

▲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복지재원은 증세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면서 부패척결과 지하경제 양성화로 세제 사각지대를 줄이고 조세 형평성을 높이고 재정을 절약해 재원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유용준 기자

새누리당 내에서도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정책의원총회에서 제한된 세수상황에서 공약 실천과 지방재정 확충 등 복잡한 산식을 풀어야 하는 어려운 숙제가 있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증세를 논의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7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집권여당으로서 공약이 지켜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복지재원은 증세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면서 부패척결과 지하경제 양성화로 세제 사각지대를 줄이고 조세 형평성을 높이고 재정을 절약해 재원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이 증세론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내년 지방선거 등 민감한 정치일정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증세없이도 복지정책을 수행할 수 있을까?

증세없는 복지 가능할까?

지난 대선 당시 전문가들은 복지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중론이었다. 이들의 의견을 요약하면 양극화로 인한 빈부 격차를 해소하고 삶의 질을 높이려면 복지 서비스를 확충해야 하는데 그 재원은 세금으로 마련할 수 밖에 없다는 것.

하지만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증세는 없다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에 반해 문재인·안철수 후보 측은 증세에 좀 더 적극적이었다. 문 후보 측은 1단계 부자 증세, 2단계 보편 증세를 내걸었다. 증세가 대선 득표에 불리하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두 후보가 증세카드를 꺼낸 것은 증세 없이는 복지 재원 확보가 불가능하다고 전망했기 때문이다.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경제공약을 담당했던 김종인 전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현 재원을 어떻게 잘 배분할 것인지 따져본 뒤 그것으로도 복지 수요가 충당되지 않으면 자연적으로 세입 쪽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김 전 위원장은 구체적으로 부가가치세율 인상을 꺼냈고, 20%를 밑도는 조세부담률을 참여정부 수준인 21%로 높여야 한다는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의견은 새누리당을 대표하지는 않았다.

박 대통령은 정치적 사안에 대해 거론하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에도 불구하고 유독 문제 만큼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박 대통령 증세트라우마 있어

박 대통령은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 등으로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촛불집회가 열리는 등 국민적 저항이 장기간 표출됐을 때에도 이에 대해 함구했다. 하지만 지난 88일에 정부가 내놓은 세법개정안에 대한 국민적 반발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당시 세법개정안에 반대여론이 들끓자 812일 박 대통령은 직접나서 원점 재검토를 지시한다. 즉각적인 회군결정이였다. 이후 원래 세수 4300억원이 늘도록 설계되었던 세제개편안은 수정 이후 도리어 100억원이 줄어드는 것으로 편성됐다.

이렇듯 박 대통령은 세금에 관한 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 대통령이 증세에 관한 일관된 태도는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어 보인다.

박 대통령이 퍼스트 레이디로 있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세수확보를 위해 6년여 준비기간을 거친 뒤 신중하게 197771일부터 기존의 물품세 등 8가지 간접세를 부가가치세로 통합, 적용하는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후폭풍은 거셌다. 사상 처음으로 공화당이 야당에게 득표율을 역전당한 것. 물론 유신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고 하지만 이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이유로 거론됐다. 이후 박 대통령은 79년의 부마항쟁과 10.26으로 이어지는 정권의 종식을 경험한다.

박 대통령의 증세에 대한 정치적 두려움은 야당대표시절에도 경험하게 된다. 참여정부의 종합부동산세 도입이 그 예다.

노무현 정부도 부동산 투기 억제를 위해 2005년 종합부동산세 신설을 강행했다가 다음해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박 대통령은 박정희 시절에 청와대의 퍼스트레이디로, 종부세 도입 때는 야당 대표로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 박 대통령의 증세 트라우마는 이렇게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증세가 정치적 명운을 걸어야 할 만큼 국민적 반발이 크다고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증세는 박 대통령에게 뜨거운 감자.

민주당의 한 의원은 정치인이라면 증세는 곧 자살이라고 다들 생각하지만, 박 대통령은 특히 심하다라고 말했다.

김광림 새누리당 의원도 세수확보가 필요하지만, 증세는 정권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며 정치인들의 증세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 민주당은 ‘부자감세 철회’ 등을 통해 복지재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이명박정부 이전 수준으로 대기업과 고소득층의 세부담을 되돌리는 방식으로 재원을 마련해 복지공약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시스

증세는 정치적 명운 걸어야

증세에 따라 정치적 운명이 엇갈린 사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찾을 수 있다.

일본에서는 역대 정권이 소비세율을 높이려 할 때마다 선거에서 패배했다.

1997년 하시모토 류타로 당시 총리는 소비세율을 3%에서 5%로 올렸다가 이후 실시된 참의원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다.

높은 지지율을 보였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도 2001~2006년 재임 기간 동안 세제 개편에 실패하고 소비세 인상을 차기 정부로 넘겼다. 결국 2012년 집권당인 민주당이 소비세를 인상을 주도했으나 총선에서 패배하는 아픔을 맛보아야만 했다.

호주도 2010년 자원세 도입 발표 이후 집권당인 노동당은 총선에서 단독 과반에 실패했다. 캐나다에서는 1991년 연방소비세 도입 직전 169명이던 집권 보수당 의석이 총선을 거치며 단 2석으로 줄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은 증세에만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니다. 감세에 대해서도 반발이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후 감세 정책을 추진하다가 비난을 받아야 했다. 법인세와 소득세율을 낮추고, 종부세를 개편하려 한 것.

이에 대해 야당인 민주당은 ‘1% 특권층과 강부자(강남 땅부자)를 위한 정당이라고 맹공격하고 나섰다. ‘부자 감세=서민 증세라는 논리를 편 것. 이러한 논리에 한나라당은  20114·27 ·보궐선거에서 패배했다.

박 대통령은 복지공약 후퇴에 따른 비판여론이 거세지자 대선공약 포기가 아니다라며 자신의 재임기간동안 자신이 공약한 복지공약을 반드시 실천하겠다며 복지공약 유보 입장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대선 당시 약속한 복지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증세에 대한 거부감을 이겨낼 것인지 아니면 재정적 이유 등으로 복지 공약을 포기해야 할지 선택을 해야 할 기점에 놓인 듯 하다.

결국 증세에 대한 가능성은 10·30 재보선을 전후한 여론이 어떻게 형성되느냐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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