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은 지난 1월부터 판결문과 증거목록 등의 열람·등사가 가능해진 데 따른 조치이자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취지로 확정된 형사 판결문을 공개하고 2015년부터는 민사 확정 판결문도 공개키로 했으나 어려운 한자어와 일본식 표현이 넘쳐 취지가 무색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 어려운 한자어에 일본식 어투…난해한 문장 많아
실제 판결문을 보면 금원과 주취, 교부, 불상의, 상당(相當)하다, 편취하다 등 일상생활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한자어가 많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순서대로 보자면 돈과 술 취하다, 내어 줌. 알 수 없는, 알맞다, 속여 빼앗다 로 순화해야 한다.
불필요한 일본식 번역 어투도 개선해야 할 대상으로, 예를 들어 ‘형법 ~이 정한 소정 또는 제반 양형의 요소를 참작하여…’라는 문장 가운데 소정·제반은 ‘여러(가지)’라는 우리말로 바뀌어야 옳다.
단골로 눈에 띄는 '∼함에 있어', '∼에 의하여', '∼에 있어서'도 일본식 어투인 만큼 '∼하면서', '∼에 따라', '∼에서'로 표현해야 간결하다.
'사유가 된다고 할 것이다', '효력이 있다고 할 것이다' 등은 일본어 '노데아루(のである)'(∼할 것이다)에서 유래한 번역투 표현이다.
한두 가지 용어와 어투뿐만 아니라 문장 자체가 길고 의미가 모호한 것도 있으며, 앞뒤 사정을 모르고서는 문장 자체를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형사소송 판결문에서는 "피의자의 행위는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사회 관념상 허용될 수 있는 상당성 있는 행위라고 볼 수 없다"라는 문장이 단골이다.
◆ 관행 혹은 권위주의의 판결문
판결문을 쉽게 쓰자는 법원 내 움직임은 때마다 등장했지만 공감대가 부족하고 권고 사항일 뿐 사실상 강제성이 없었기에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때문에 법관들의 권위주의가 변화를 막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법률의 주요 개념이 일본에서 정립된 학술 용어가 그대로 들어와 한자어와 일본식 어투가 많은 것이다. 판사들은 도제식 교육을 받기 때문에 대물림되는 경향이 있어 오랫동안 관행적으로 사용했던 탓인지 쉽게 버리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며 "법원 내부에서도 개인이나 모임 차원에서 순화운동을 펼치는 등 개선 노력을 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로 이끌만한 동력은 부족한 상황이다"고 전했다.
아울러 "일부에선 짧고 쉽게 쓰는 것보다 지금처럼 다소 어렵고 길게 쓰는 것이 권위 있다고 보는 판사도 있다"고 언급했다.
서울남부지법 한 판사는 "판결문은 당사자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 만큼 일반 국민들도 이해할만한 수준으로 쉽게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