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008년, 사실상 대운하 추진을 위해 둔갑된 ‘4대강사업 추진’을 직접 공무원들에게 지시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 전 대통령은 2008년 6월 19일 “대운하를 포기하겠다”는 대국민 선언을 했고, 이후 같은 해 12월 15일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를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야권에서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사실상 대운하 추진”이라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정부 측은 대운하와 4대강 살리기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반박해 왔다.
그러나 14일 정의당 서기호 의원이 국토교통부 내부 문서를 입수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 발표를 2주 앞둔 2008년 11월 29일, “용역자료(장석효) 성과물을 마스터플랜에 반영할 것”이라고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장석효 전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한반도대운하 TF팀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이 전 대통령이 장석효 전 사장의 대운하 용역자료를 4대강 살리기 마스터플랜에 반영하라고 지시한 만큼, 사실상 대운하가 이름만 바뀌어 4대강사업으로 추진됐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 자리는 정종환 전 국토해양부 장관이 이 전 대통령에게 ‘수자원분야 현안 보고’를 하는 자리였고, 당시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과 국토부 수자원국장 등이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통령의 관련 발언은 국토부가 ‘대통령 말씀사항 정리’ 내부 문서로 보관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 자리에서 이 전 대통령은 “운하 운운하는데 위축되지 말고 당당하게 추진할 것”을 지시하기도 하며 “감사원을 동원해서 일하다 실수한 것은 책임을 묻지 않도록 하겠다”고 발언한 것으로 문서에 기록돼 있다. ‘4대강 둔갑 대운하 추진’ 사업에 감사원도 동원됐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서기호 의원에 따르면 감사원은 국토부 직원의 컴퓨터에 보관돼 있던 문서를 입수했지만, 지난 7월 감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같은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은 또, “섬진강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잘 정비되어 있으니 정비는 조용히 검토할 것”이라고 지시했으며, 이 전 대통령의 지시에 박재완 수석은 “자전거도로라도 시행하면 좋겠다”고 거들었다. 이에 대해 서 의원은 “결국 섬진강은 4대강 사업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자전거길이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서기호 의원은 “헌법상 독립기관인 감사원을 대통령이 ‘동원’한다는 발언을 했다는 것 자체가 경악할 일”이라며 “이 전 대통령은 감사원을 사조직처럼 인식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전 대통령은 ‘감사원을 동원’하겠다는 약속을 행동으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며 “2개월 후인 2009년 2월 측근인 은진수를 감사위원으로 임명하고, 4대강 감사의 주심을 맡겨 부실감사를 불러왔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2011년 1월 4대강 1차 감사결과 발표에서 ‘문제점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결론 냈으며, ‘홍수 예방과 가뭄 극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까지 덧붙여 제시한 바 있다.
이에, 서 의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감사원을 어떻게 동원했는지 이제라도 고백해야할 것”이라며 “15일 예정된 감사원에 대한 국정감사를 통해 감사원이 청와대로부터 어떤 외압을 받았는지 검증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