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키워드는 ‘갑(甲)의 횡포’다. 사회적 강자가 약자에게 횡포를 부린다는 의미로 포스코, 남양유업, 국순당-배상면주가 등이 줄줄이 논란이 됐다. 특히 남양유업은 파문직후 매출이 반으로 줄어드는 등 후폭풍이 거셌다. 이번에는 아모레퍼시픽이다. ‘막말파문’이라는 점에서 제2 남양유업 사태로 비화될 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잠시 수그러들었던 ‘갑의 횡포’ 불씨도 되살아나고 있다. 앞서 갑을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던 기업들이 또다시 회자되면서 이들의 난감함도 큰 것으로 보인다. 올해 일어난 ‘갑의 횡포’ 사건들을 순서대로 정리했다.
갑을논란 발단 ‘포스코 라면상무’…이후 줄줄
‘욕설파문’ 남양유업, 논란직후 매출·주가 급락
아모레퍼시픽, ‘제2의 남양유업’? 촉각 곤두서

포스코 ‘라면상무’와 프라임베이커리 ‘빵 회장’
이전에도 하청업체에 대한 불공정거래 등 ‘갑의 횡포’로 불릴만한 사건들은 많았다. 그러나 ‘갑의 횡포’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때는 포스코 라면상무 사건부터다. 지난 4월 포스코에너지 상무였던 A씨는 미국 LA로 향하는 대한항공 비즈니스석에서 기내식으로 제공된 라면에 대해 “안 익었다” “짜다” 등 불만을 표시하다 손에 들고있던 잡지로 여승무원의 눈 주위를 때린 것으로 알려졌다.
기장은 LA에 착륙해 현지경찰에 A씨를 신고했고, 출동한 미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은 A씨에게 입국 후 수사를 받거나 한국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A씨는 귀국을 선택했다. 사건이 알려진 후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A씨를 ‘라면상무’라고 칭하며 각종 패러디물이 게재됐다. 포스코 주가도 급락하며 심상찮은 분위기가 형성됐다.
결국 A씨는 사직서를 냈고 이는 즉각 수리됐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도 이와 관련해 “포스코 이미지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됐다”며 “임직원 모두 부끄러움을 느끼고 반성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또 5월 포스코는 윤리실천 다짐대회를 여는 등 이미지 쇄신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4월 말에는 코레일관광개발에 호두과자 등을 납품하는 업체 프라임베이커리의 강수태 회장이 롯데호텔 주차관리요원의 뺨을 지갑으로 때리며 욕설을 한 사실이 알려졌다. 불매운동이 일어나는 등 여론이 악화되자 코레일관광개발은 납품중단을 결정했고, 5월 강 회장은 회사를 자진 폐업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됐었다.
이후 8월 강 회장은 “악의적인 개인정보 유출과 허위보도로 피해를 입었다”며 사건발생 장소인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또 첫 보도를 한 신문사와 기자를 명예훼손 등으로 검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욕설파문’ 남양유업부터 국순당-배상면주가까지
‘갑의 횡포’ 논란의 정점을 찍은 기업은 남양유업이었다. 지난 5월 유튜브에는 남양유업 영업직원이 대리점주에게 “핑계 대지마. 당신이 한 게 뭐 있어. 잔인하게 해줄게. (제품) 버리던가. 망해. XXX아. 대리점장으로 할 얘기냐 XXX아? 얼굴 보면 죽여버릴 것 같으니까” 등 욕설을 퍼부으며 밀어내기를 하는 정황이 담긴 음성파일이 올라왔다.
누리꾼들은 분노했다. 남양유업에서 곧바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여는 등 진화에 나섰지만 매출급감 및 주가급락이라는 부메랑을 피하지는 못했다. 논란 직후인 5월 B대형마트에서는 남양유업의 우유·커피제품 판매량이 전월보다 50% 줄었다고 추산될 정도였다. 남양유업은 대리점협의회와 2개월 만에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남양유업은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123억원을 부과받기도 했다. 협상타결 4일 뒤에는 검찰이 남양유업의 밀어내기를 인정해 김웅 대표 등 임직원 28명을 기소했다. 최근에는 법원이 밀어내기로 피해를 입은 대리점주 B씨에게 피해액 전액(2086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줄소송 가능성까지 제기된 상황이다.
여기다 주가도 85만2000원(15일 기준)으로 예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남양유업이 여전히 욕설파문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배상면주가도 5월 이주희 도매점주가 본사로부터 밀어내기 등 압박에 시달렸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으면서 논란이 됐다. 배상면주가는 이주희 도매점주 자살 이후 대리점협의회와 상생합의문을 작성했지만, 합의내용을 불이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지난 9월 배상면주가에 과징금 900만원과 시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아울러 배상면주가의 형제기업 국순당도 밀어내기를 한 혐의로 공정위로부터 지난 5월 과징금 1억원과 시정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의결이후 약관을 개악했다는 논란에 휩싸였고, 지난 1일 대리점협의회로부터 검찰고소 및 2차 공정위 신고를 당했다. 배중호(국순당)-배영호(배상면주가) 대표는 15일 국회 정무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 나란히 증인으로 출석해 입장을 밝혔다.
아모레퍼시픽 “10년 동안 뭐한 거야” 막말논란
사뭇 잠잠해졌던 ‘갑의 횡포’ 불씨를 되살린 곳은 아모레퍼시픽이다. 민주당 이학영 의원실은 지난 13일 아모레퍼시픽 영업직원이 대리점주들에게 폭언 및 대리점 운영포기를 강요하는 내용이 담긴 음성파일을 공개했다.
50분짜리 음성파일에는 “사장님이 철밥통이요? 능력이 안 되고 성장하지 못하면 나가야지” “나이 마흔 넘어서 이 XX야 응? (다른 대리점에) 뒤지면 되나 안 되나” “그런 말 하지 말고, 사장님 그만두자. 아 XX 더러워서” 등 욕설과 ‘대리점 쪼개기(강탈)’ 과정이 담겨있었다.
이 영업직원은 ‘버티면 어떻게 되느냐’는 대리점주 물음에 “협조 안 해주시면 물건은 안 나가고 인근에 영업장을 또 내는 거죠”라고 답하기도 했다. 피해 대리점주들은 대리점을 수년에 걸쳐 키워놓으면 본사가 빼앗아갔다고 주장했다.
남양유업 욕설파문이 잠재워진지 얼마되지 않아 아모레퍼시픽에서도 유사사례가 일어나자 누리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아모레퍼시픽이 음성파일이 공개된 뒤 즉각 사과문을 냈지만 비난여론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민주당 이언주 원내대변인도 “진정성이라고는 없는 공허한 사과문”이라고 질타했다.

15일에는 손영철 아모레퍼시픽 사장이 국회 정무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욕설파문과 관련, “제가 잘못 가르쳐서 직원이 적절하지 못한 언행을 한 것에 대해 당사자와 국민들에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면서도 대리점 강탈의혹에 대해서는 “오인이 있다”고 부인했다.
아모레퍼시픽 욕설파문은 음성파일 공개, 비난여론 형성의 과정을 밟았다는 점에서 남양유업 사태와 닮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때문에 아모레퍼시픽도 주가급락 및 매출급감을 겪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 아모레퍼시픽 주가(15일 87만5000원)는 파문직후 폭락세를 보였다. 4분기 실적부진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이미 아모레퍼시픽 3분기 실적이 부진할 것으로 전망된 가운데, ‘갑의 횡포’ 논란으로 불매운동까지 전개되면 매출이 급감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들 외에도 올해 수자원공사 대리가 “보고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용역업체 이사의 얼굴에 보고서를 던진 사건, 블랙야크 강태선 회장이 항공사 용역직원을 신문지로 때린 사건 등이 발생하며 ‘갑의 횡포’라는 비난을 받았었다. 현재도 롯데, KT 등이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로부터 가맹대리점에 대한 횡포를 행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 갑을논란은 상당기간 이슈화될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