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를 맞는 한국사회의 노인은 행복하지 않다. 삶은 길어지고 일자리는 줄면서 노인들의 경제적 궁핍이 심화되고 있는 탓이다. 급기야 생계형 범죄로 내몰리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노인들도 급증했다. 고령화의 그늘로 여기기에 심각한 수준이다. 사회적 복지 대책이 낙후한 것도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45%에 이르는 노인 빈곤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기초연금을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수준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고령화 · 생활고로 노인범죄 4년새 31% 증가
노인 빈곤률, 노인 자살률 OECD 회원국 중 1위
유엔인구기금 발표, 노인복지지수 91개국 중 67위
#지난해 6월, 인천의 주택가에서 60대 부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노부부의 수입은 1인당 7만5000원씩 월 15만원인 노령연금이 전부였다. 시신 옆에는 삶의 회한과 생활고를 토로한 내용의 유서와 통장, 시신기증서약서, 현금 50만원이 놓여 있었다. 그 현금은 장례비용이었다. 노부부의 재산은 월세를 내지 못해 줄어든 보증금 300만원과 통장 잔액 3000원이 전부였다.
#경북 상주에 혼자 살고 있는 이모(52세)씨는 최근 어머니(76세)의 죽음과 대면해야 했다. 이모씨의 어머니는 자식에게 병원비에 대한 부담을 줄 수 없어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간암 판정을 받은 지 3달이 채 지나지 않았던 때다.
노인 빈곤률 45%…생계형 범죄↑
지난해 말 기준 국내 65세 이상 노인은 약 600만명에 이른다. 2000년 노인 인구 340만명보다 배 이상 증가했다. 이들 중 45.1%는 소득이 중위소득의 3분의1에도 미치지 못하는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노인층의 빈곤률이 높아지면서 경제적 이유 등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특히 자식에게 부담 되기 싫다며 자살을 하는 노인들이 증가하면서 또 다른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민주당 이목희 의원이 보건복지부·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자살을 하는 노인들이 하루 평균 11명 가량인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 중 노인 자살률 역시 1위인 것이다.
노인 자살만이 늘어난 것이 아니다. 노인들의 생계형 범죄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 10월 경기 부천소사경찰서는 현금자동화코너에서 입금 중이던 50대 여성을 둔기로 때리고 현금 50만 원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로 A(65)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A 씨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9일 세종시 조치원읍 건설현장에서 김모(63)씨가 80만원 상당의 철물 자재를 훔치는 등 4차례에 걸쳐 600만원어치의 자재를 훔쳐 팔았다가 경찰에게 덜미를 잡혔다. 김씨는 생계난을 이기지 못하고 이러한 범죄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사건은 현재 대한민국 노인이 처해있는 실상을 증거한다. 노인들의 생계형 범죄는 일일이 열거하기에 역부족이다. 특히 노인들은 경제적 어려움이 닥칠 경우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15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민주당 유대운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범죄자는 지난 2008년 5만4411명에서 지난해 7만1721명으로 4년 새 31.8%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노인 범죄의 증가 원인으로는 노인층의 사회 활동이 확대되고 있는 반면 경제적, 사회구조적인 여건이 뒷받침되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유 의원은 “노인범죄 해결을 위해서는 기초연금 등 노인 대상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한 국가적 대책 수립과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제도 불신 증폭
사회안전망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복지는 저급한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유엔인구기금이 발표한 노인복지지수가 91개국 중 67위다. 남아프리카공화국(65위), 우크라이나(66위)보다 낮은 기록이다. 특히 연금과 빈곤률 등을 반영한 노인소득지수는 90위로 세계 최하위를 기록했다.
높은 노인 빈곤률과 낮은 사회복지 환경으로 작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모든 노인들에게 20만원을 지급한다’고 공약했다. 개표결과 박근혜 후보는 장년층과 노년층에서 몰표를 받았다. 하지만 이후 정부의 기초연금안은 국민연금과 연계하면서 대폭 후퇴했다. 지난 9월 소득 하위 70% 노인만을 대상으로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길수록 급여액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차등 지급하는 기초연금 도입계획을 발표한 것.

기초연금 정부안이 국민연금과 연계시킨다는 발표가 이어지자 국민연금 탈퇴자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민주당 최동익 의원은 16일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임의가입자 탈퇴 사유별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이 같이 드러났다.
현재 국민연금은 의무가입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소득이 있는 18세 이상 60세 미만의 국민연금 의무가입 대상자는 탈퇴가 어렵다. 하지만 임의가입자는 소득이 없는 전업주부나 학생 등으로 이들은 예외적으로 국민연금 가입과 탈퇴가 자유롭다.
최 의원은 “정부가 기초연금 도입을 핑계 삼아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고 국민연금제도의 뿌리까지 흔들고 있다”며 “국민연금을 연계하는 기초연금안을 철회하고 현세대와 후세대, 고소득층과 빈곤층 모두에게 공평한 기초연금제도 도입을 위한 대안 마련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기초 보장제도가 흔들리면서 노인들의 삶은 더욱 더 질곡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보편적 기초연금’ 지급이 이뤄져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참여연대 등 21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민연금 바로세우기 국민행동은 14일 기자회견을 갖고, 보편적 기초연금 도입을 촉구했다.
이들은 ‘선별적 기초연금’ 지급으로는 노인빈곤을 해결할 수 없다며,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을 지킬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국민행동은 “박근혜 정부의 기초연금안은 국민연금과 가입기간을 연계해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기초노령연금의 도입 취지에 어긋날 뿐 아니라 노인 간의 형평성도 침해한다”며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만을 부추기고 공적 연금제도에 대한 신뢰를 앗아가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국민행동은 정부에 대해 “세대갈등에서 사회갈등까지 조장할 기초연금안을 철회하고 보편적인 기초연금을 도입하라”고 강력히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