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권에 심상찮은 기류가 흐르고 있다. 더 이상 내분은 없을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던 모습이 차츰 흐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같은 내분이 최고 권력의 중심에 가깝게 다가서기 위한 헤게모니 다툼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는데 있다.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저항이다. 최근 원조친박으로 불려왔던 일부 인사들을 중심으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전면적 반기를 드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MB정부 시절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가 그랬듯, 지금 일부 친박 인사들도 대통령과 선을 긋기 시작한 모습이다. 새 정권이 출범한 지 이제 갓 8개월을 지났다고는 믿기 힘든 상황들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항명성 사퇴가 여권 내 반박근혜 기류를 만드는 핵심적 계기가 됐다고 보고 있다. 진 전 장관이 총대를 메고 탈박 신호탄을 쏘아올린 탓에 내제돼 있던 불만들이 분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된 국정운영이 친박 인사들로 하여금 탈박의 길을 걷게 하고 있다는 반론도 있다. 진영 전 장관만 하더라도 소신 있게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맡은 직무에 충실했지만, 일을 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 청와대의 책임이 먼저라는 주장이다.
물론, 여기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식의 논쟁은 중요치 않다. 원조친박을 자임해 왔던 이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서 돌아서고 있다는 ‘현상’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김기춘-홍사덕-서청원 등 신386(1930년대에 태어나 60년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80세를 바라보는 세대) 인사들을 부활시키며, 자신의 주변을 점차 가신그룹으로 채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치적 동지’의 길을 걷고자 했던 개혁적 성향의 친박 인사들로서는 허탈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는 나아가 친박 인사들로 하여금 가신이 될 것인지, 적이 될 것인지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가신으로서의 정치를 하고 싶지 않은 이들은 탈박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것이며, 박 대통령의 그늘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이들은 더욱 충실한 신하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진 전 장관처럼 탈박 인사들이 당내 철저한 비주류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새누리당은 점차 가신그룹으로 물들게 될 것이 예상된다. 그렇게 가신그룹이 장악한 새누리당은 지금보다 더 짙게 박 대통령의 홍위병 색깔을 띠게 될 것임은 물론이다.
따라서 현재 김무성 의원을 비롯한 유승민 의원, 진영 전 장관 등에 대해서는 ‘용기 있는 반란’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정권의 성공을 위해 충실히 뒷받침은 하지만, 그것이 결코 ‘주종관계’는 아님을 명확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신으로서의 삶과 동지로서의 삶
지난달 30일, 진영 전 장관은 끝내 사퇴 입장을 거두지 않았다. 그리고 이날 오후 열린 이임식 자리에서 복지부 직원들을 향해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이 복지를 잘 하셔야 우리 국민이 대통합을 하고 민족 갈등을 없애고 대화합할 수 있는 사회가 된다고 생각한다.” 복지부 직원들에게 한 말이었지만, 울림은 청와대로 향했다.
그리고 지난 4일 <중앙선데이>와 인터뷰에서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이 연계된다는 것을 이미 대선 때부터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질문에 “통합이 공약이었지 연계는 공약이 아니었다”고 반박했고, 특히 이 과정에서 진 전 장관은 “대통령 생각도 통합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내가 장관이 된 뒤 입장을 바꿨다는 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손바닥을 뒤집은 건 박근혜 대통령이지, 자신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또, 당도 입장을 뒤집었다고 밝혔다. 진 전 장관은 “당은 내 입장을 이해해줄 것으로 믿었는데 돌연 ‘연계안으로 가야한다’고 말을 뒤집더라”며 “당까지 이렇게 나오니 나로선 물러날 수밖에 없다고 결심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즉, 박근혜 대통령이 입장을 뒤집었고 그 모든 내용을 알고 있는 여당도 누구하나 잘못됐다 말하지 않고 대통령 홍위병 노릇을 했다는 뜻이다. 뉴스1에 따르면, 진 전 장관은 최근 사석에서 “친박들이 (박 대통령의) 주변을 둘러싸고 섬을 만들고 있다”며 “내가 친박과 멀어진 것도 그런 것 때문”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브레인으로 불려온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의 행보도 주목받고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진 전 장관보다 더 강력한 ‘탈박’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인 유 의원은 최근 박 대통령이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 받고 있는 외교국방문제를 중심으로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14일 열린 국방부 국정감사에서는 전시작전권 전환 재연기가 추진되고 있는 데 대해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전작권 2015년 12월 환수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기에, 야권에서는 “안보 공약마저 파기하려한다”는 비난을 퍼붓고 있는 사안이다.
특히, 유승민 의원은 이 자리에서 “어물쩍 넘어가고 국군통수권자가 뒤에 숨어 있는 모습은 별로 안 좋다”고 날 세워 비판하기도 했다. 국군통수권자는 대통령을 지칭하기에 유 의원은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뒤에 숨어 있다”며 비겁함을 꼬집은 것이다.
유 의원은 앞선 8일에도 “작년 대선공약, 올해 2월 인수위 보고서, 국정과제 보고서에서 ‘차질 없는 추진’, ‘체계적으로 추진’ 이렇게 표현을 해뒀었다”며 “왜 밀실에서 이렇게 진행이 되는지 국군통수권자나 장관이나 국가안보실장이나 이런 분들이 국민들에게 언제 적절한 시기에 해명과 설득이 필요하다”고 질타했다.
유승민 의원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전작권 재연기 문제에서만 나오지 않았다. 국방예산이 축소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노무현 정부 때보다도 못하다”고 쓴 소리를 내뱉었으며, 최윤희 합참의장 인사청문회 자리에서는 박 대통령의 또 다른 대선공약인 DMZ세계평화공원과 관련해 “아직은 굉장히 황당한 단계에 있다”며 공약의 실효성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브레인이었던 유 의원이 완전히 탈박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김무성 의원의 경우는 진 전 장관이나 유승민 의원처럼 드러내놓고 대통령과 맞짱을 뜨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이미 청와대에서 서청원 카드를 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의도여부와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탈박의 길을 걷게 됐다. 최근 김무성 의원이 차기 당권 도전 의사나 차기 대권 도전 의사를 감추지 않고 밝히는 것도 이 같은 정국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래권력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이기에 당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입김은 계속 강력할 수밖에 없고, 이 같은 상황에서는 김 의원으로서도 미래를 모색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거기에 서청원 전 대표까지 원내로 복귀하고 나면 더욱 더 복잡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특히 이미 서청원 카드를 통해 자신을 견제하고 있는 청와대의 의중을 파악한 이상, 김무성 의원으로서도 더 이상 차기 플랜을 주머니 속에서만 만지작거리고 있을 수 없게 됐다. 일찌감치 ‘미래권력’에 대한 의지를 드러냄으로써, 당의 세력 균형이 청와대로 더 이상 쏠리는 현상을 막아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즉, 차기 대선에 출마하더라도 ‘박근혜 재가’를 받고 나서는 일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바로 ‘무대’로 불리는 김무성 스타일이다.
◆박근혜式 줄 세우기? 분란의 씨앗을 심다
아직까지는 소수 몇몇 인사들을 중심으로 반기를 들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여당 내 반박근혜 선언이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당이 가신들로 가득 차게 되면 결국엔 불가피하게 그들 사이에서도 이른바 ‘측근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쟁에서 밀린 이들이 돌아설 가능성이다.
또, 역대 정권에서도 유사 사례들이 수없이 많이 나타났듯 이 과정에서 ‘민생 뒷전’이나 ‘이전투구’, ‘자기분열’ 등은 필연이다. 문제를 찾아내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배가 침몰하고 있기 마련이었다.
야권에서는 너도나도 반박근혜 깃발을 들고 난파선에서 뛰어 내리는 상황이 언제가 될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 일부 언론들은 그 시점이 빠르면 내년 지방선거를 전후해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물론, 지방선거에서 신통찮은 성적을 거뒀을 때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방선거에 앞서서도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 지방선거 공천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 점수에 따라 줄 세우기로 이뤄질 경우다.
실제로, 여권 주변에서도 이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들린다. 벌써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측근 챙기기에 여념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10.30 경기 화성갑 보궐선거 서청원 후보 공천에 전혀 개입한 바 없다며 손 사레를 치고 있지만, 이미 서청원 공천은 朴心에 따른 것이었다는 얘기가 파다하게 퍼져 있다.
공공기관장 인사 문제도 그렇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직후 당선인 신분일 당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MB정부의 낙하산 인사 관행과 관련해 “최근 공기업-공공기관 등에 전문성 없는 인사들을 낙하산으로 선임해서 보낸다는 얘기가 많이 들리고 있다”며 “이는 국민께도 큰 부담이 되는 것이고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적 목소리를 낸 바 있다.
하지만, 취임한 지 이제 반년을 갓 넘겼을 뿐인데 박 대통령은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 확 달라졌다. 줄줄이 보은인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더해, 이미 보은인사로 해석되는 일부 인사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용산참사 책임자인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을 아무런 지식도 없는 한국공항공사 사장에 임명하고, 이규택 전 친박연대 공동대표를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에 임명했다. 이뿐이 아니다. 최연혜 한국철도공사 사장, 박영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원장, 박보환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등도 모두 친박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핵심은 홍사덕 전 의원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 중에서도 최측근으로 불리는 홍 전 의원은 2007년과 2012년 두 번의 대선에서 모두 박근혜 캠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었다.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정치권을 떠났던 그는 최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새 대표상임의장으로 임명됐다.
민화협 측이나 청와대는 정치적인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야권과 언론에서는 홍 전 의원이 민화협 의장을 맡게 된 것을 사실상 보은인사로 보고 있다. 아울러, 김기춘-서청원 등 올드보이 귀환조치의 일환에서 홍사덕 전 의원도 포함됐다는 관측이 많다.
이처럼 서청원 공천부터 공공기관장 인사까지 박근혜 대통령이 측근 챙기기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여권 주변에서 내년 지방선거 공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법도 한 일이다. 벌써부터 드러내놓고 측근 챙기기를 하고 있는데, 지방선거에서는 얼마나 더 심하게 줄 세우기를 하겠냐는 우려다.
새누리당 유기준 최고위원은 보은인사, 측근인사 논란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정부 주요 인사는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이해하고 대선 때 힘을 합쳐 집권을 위해 함께 노력한 분으로 임명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으로, 지금까지 낙하산 인사-보은인사-코드인사에 대해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 쏟아냈던 비판들을 무색케 했다.
지금 당장은 최고 권력을 향해 착착 줄을 서고 있지만, 대통령의 일방통행과 그런 국정운영을 앞뒤 없이 비호하는 여당의 모습이 지속된다면 그 줄의 정렬도 오래가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