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 나가던’ 팬택, 스마트폰 시대 ‘휘청’
‘든든’ 모기업 필요성 제기…매각 현실화?
삼성, 변수 될까…현 체제유지 가능성도
국내 휴대폰 업계 3위인 팬택이 매각 작업에 착수할 예정으로 알려져 업계에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재계에서는 팬택이 매각 시장에 나올 경우 LG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이 인수를 두고 각축을 벌일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또한 중국 업체가 팬택을 인수할 가능성도 제기되면서 기술 유출에 대한 이슈도 떠오르고 있다.
현재 팬택의 매각은 아직 기정사실이 아니다. 심지어 “매각 계획이 없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로 팬택 측에서는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력 부족, 위기 봉착 팬택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서는 “팬택이 M&A 시장에 나올 것은 사실상 시간문제”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팬택은 2011년 워크아웃을 졸업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 직후 매출이 급격하게 악화됐다.
재계에서는 “팬택의 부진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팬택은 벤처기업으로 출발한 피처폰 시절 휴대폰 업계에서 강자의 위치를 유지했다. 특히 팬택의 ‘스카이(Sky)’ 브랜드는 고급스러움의 대명사였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팬택은 2000년대 중반에는 LG전자를 제치고 휴대폰 시장 2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렇지만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며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전문가들은 “세계 스마트폰 시장이 삼성전자와 애플의 양대 절대 강자의 구도로 고착되면서 팬택의 위기가 시작됐다”고 입을 모은다.
이러한 위기를 의식한 듯 팬택은 무리하게 사업 확장을 꾀하는 자충수를 두었다. 그 결과 팬택은 워크아웃이라는 일대 타격을 입었지만 기업 자체가 지닌 역량과 뚝심으로 워크아웃을 졸업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진짜 위기는 오히려 워크아웃 이후 시작됐다. 팬택은 워크아웃 졸업 직전 해인 2010년만 해도 1000억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거두었다. 워크아웃을 졸업한 2011년 상반기까지도 수익이 쏠쏠했지만 이후 스마트폰 시장 전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익률은 줄어들었다. 지난해는 영업적자가 무려 1052억 원이었으며 올해 상반기에도 562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상황은 악화일로를 거듭해 가고 있다.
팬택은 배우 이병헌의 인상적인 CF가 돋보이는 ‘베가’ 시리즈를 야심차게 내놓으며 고군분투를 거듭했지만, 최근 들어 수출 실적 악화와 브랜드 가치 하락, LG전자의 약진 등으로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그동안 부진을 면치 못하던 LG전자는 ‘옵티머스G', ‘G2’ 등의 야심작을 내놓으며 스마트폰 시장에서 꾸준히 포지션을 넓혀가고 있다. 이에 비해 팬택은 스카이 시절 고급화 전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유연하지 못한 마케팅을 고집해 위기에 봉착했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에 대해 한 경제평론가는 “2010년대 스마트폰 시장이 열리며 소비자들은 ‘프리미엄 폰’이라면 애플 아이폰이나 삼성 갤럭시 시리즈를 선호하는 경향이 자리를 잡았다”며 “이렇듯 고객의 충성도가 고착된 상황인데, 팬택은 이러한 소비자 심리를 다소 간과한 경향이 있었다”라고 설명한다.
“팬택 매각, 기정사실”
업계에서는 “비교적 자금력이 약한 편인 팬택이 제품 전략 수립 면에서 삼성이나 애플 같은 쟁쟁한 글로벌 선두업체들과 별다른 차이 없이 진행한 것은 중대한 실수"라고 지적한다.
한 경제평론가는 “실적 면에서 일시적인 위기가 닥치더라도 버틸 수 있는 자금력이 풍부한 삼성이나 LG와는 달리, 팬택은 사실상 휴대폰 단일 품목에 사활을 거는 기업이기 때문에 시황이 좋지 않으면 그만큼 고스란히 타격을 입는다”고 설명한다.

결국 팬택은 벼랑 끝에 몰리고 말았다. 지난 9월 25일 박병엽 부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전격 결정을 내렸다. 팬택은 당분간 박 부회장과 공동경영을 했던 이준우 사장이 이끌며 직원 800명이 무급휴직에 들어가는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재계에서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버틸 수 있는 자금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팬택은 든든한 모기업을 찾아야하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팬택 매각설이 당위성과 설득력을 확보하는 근거다.
현재 업계에서는 “팬택은 우선 매각을 위한 자본유치 작업에 착수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있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 있는 다양한 원매자를 상대로 이른바 ‘사전의뢰(태핑)’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재계에서는 “이 때문에 팬택이 무조건 매각시장에 먼저 뛰어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우선 일단 증자를 활용해 자본을 유치시킨 다음에 상황에 따라 경영권까지도 매각하는 방식이 유력하다”고 전망하고 있다.
최근까지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주관사인 삼성증권 등은 팬택에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LG그룹·현대차그룹·SK그룹 등을 상대로 태핑 작업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팬택 매각설’이 등장한 시기도 바로 이때다.
하지만 팬택 채권단은 “태핑 작업이 반드시 매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현재 자금 상황이 좋지 않은 팬택이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외부자본 유치 여부를 가늠하는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이처럼 채권단에서 “당장 매각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서는 “결국 팬택이 인수합병 시장에 나올 것 아니냐”라고 전망한다. 상당수 재계 전문가들은 “자본을 확보해 나오든 계속 궁지에 몰린 끝에 나오든 결국 매각 대상이 될 거라는 건 거의 기정사실”이라며 “이제 업계의 관심은 어떤 기업이 팬택을 인수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설명한다.
중국 기업까지 ‘눈독’
재계에서는 팬택을 인수할 수 있는 기업으로 크게 세 곳을 거론한다. LG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이 팬택 인수 가능 기업의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으며 중국 기업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만약 LG그룹이 팬택을 인수하는 데 성공할 경우 그동안 스마트폰 제조 분야에서 절대적인 우세를 보였던 삼성전자와 양강 구도를 성립할 수 있는 위치까지 도약할 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한 경제평론가는 “물론 현재까지 상황을 보면 LG그룹이 팬택을 노릴 구체적인 근거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라고 전제하면서도 “하지만 팬택 인수로 규모면에서 삼성전자와 단번에 어깨를 나란히 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 LG로서는 뿌리치기 힘든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재계에서는 “그동안 LG그룹 문화를 보면 인수합병에 그리 익숙하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팬택이 리스크를 걸 만큼 매력적인 인수대상으로 다가올 지는 아직 미지수로 보인다”는 부정적인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한편 현대자동차그룹이 팬택 인수에 성공할 경우 스마트폰 업계에서는 삼성-애플-LG-현대라는 지금까지 보기 힘든 새로운 구도가 형성된다. 사실 팬택과 현대는 서로 전혀 낯선 관계는 아니다.
팬택 창업주 박병엽 전 부회장은 맥슨에 근무하며 모은 4천만 원으로 호출기(삐삐) 회사를 설립해 기반을 다져나가다가 현대큐리텔을 인수해 팬택앤큐리텔로 회사명을 바꾼 뒤 휴대폰 시장의 강자가 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외에 다른 업종의 진출 가능성과 새로운 성장 동력을 저울질하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 입장에서는 팬택은 상당히 구미가 당길 수 있다. 자동차와 스마트폰을 결합한 일체형 모델 개발에도 큰 흥미를 보이고 있다고도 했다. 그렇지만 “현대자동차그룹이 과연 스마트폰 제조와 어울리는 기업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보는 견해도 많다.
일각에선 “팬택이 중국 기업에 매각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얼마 전 국내 한 증권사에서 중국을 포한하는 해외 IT업체들을 대상으로 팬택이 지닌 장점을 적극적으로 제시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재계에서는 현재 팬택에 대해 지분을 투자하거나 아예 “인수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는 중국기업으로 ZTE·화웨이·OPPO·메이주 등을 꼽고 있다.
중국기업이 팬택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사실 팬택은 자금력에 문제가 있을 뿐이지 기술 측면에서 보면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풀이한다. “막강한 자금력과 인구 잠재성을 지닌 중국 입장에서 보면 팬택은 굉장히 구미가 당기는 기업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팬택이 과연 중국기업의 품으로 돌아갈지는 극히 불투명하다. 이른바 ‘기술유출’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기 때문이다. 한 경제평론가는 “최근 팬택 지분 10%를 매입하면서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는 삼성전자가 이러한 상황을 가만히 두고 볼지는 미지수”라며 “이 때문에 오히려 삼성 측에서 팬택에 대한 투자를 늘려 현재 스마트폰 시장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방향으로 나갈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 한다”고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