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과 싸우는 신의 제자
편견과 싸우는 신의 제자
  • 김선주
  • 승인 2005.11.05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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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에서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만신을 주관하는 무속인 서경욱씨 만나
편견이 무서운 이유는 진실과 전혀 다른 것을 믿어버리게 하는 힘에 있다. 대중적인 편견 중 하나. 무속(巫俗)은 비과학적이고 불필요하며, 미개하고 부정적인 것이다? 과학적이라는 증거는 없지만, 요긴하게 쓰이며 나름 지적이고 긍정적인 종교의식인 ‘굿’을 폄하하기 시작한 건 근대 이후다. 원시종교에서 발전한 ‘샤머니즘(shamanism)'은 우리네의 정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민심을 달래주었다. 그러다 일제 강점기 '조선 문화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미신‘으로 매도된 무속은 아직까지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졸지에 사이비로 몰리며 멸시와 수모를 겪던 무속인들은 ’제사장‘의 지위에서 내려와 천대받아야했다. 이제는 일제시대도 아니건만 한번 뿌리내린 편견은 좀처럼 거둬지지 않고, 아직도 굿을 두려워하고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양산하고 있다. 미신이니 구습이니 하며 손사래를 치는 사람, 무당을 애써 격하시키려는 사람, 서구 종교에 비해 낙후된 원시신앙일 뿐이라 치부하는 사람 등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 하지만 인간의 오복을 기원해 주고 잡신을 물리고 만신을 받아들이는 ‘굿’은 어떤 이에게는 필요악으로, 어떤 이에게는 절대적인 종교의례로 이날까지 존속해 왔다. 사실 본 기자도 이런 세간의 오해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청향사'(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에 도착했다. ‘청향사’는 최영 장군을 ‘주작신’(주로 모시는 신)으로 모시고 내림굿을 받아 무당이 된 서경욱(49)씨가 있는 곳. 마침 서씨가 손님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터라 일행은 채광이 좋은 응접실에서 잠시 기다리게 되었다. 수련회관을 연상시키는 직사각형 건물 안의 널찍한 응접실은 아직 만나지도 못한 서씨에 대한 친근감을 불러일으켜 줬다. 민속주점이나 전통찻집에서나 볼 수 있는 솟대나 놋쇠로 만든 장식물 등이 자연스레 놓여있었는데, 가을볕을 받아서 그런지 분위기가 한결 따스해졌다. 응접실은 구석에 놓인 마이크와 여러 대의 스피커를 보지 않더라도 작은 세미나 정도는 너끈히 해 낼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한쪽 벽면의 유리 장식장이 눈에 띄었는데 굿판에서 쓰던 제기들이다. 놋쇠그릇, 옹이그릇, 질그릇, 옥그릇 등이 저마다의 빛깔과 질감을 자랑하며 오롯이 놓여 있다. 제법 쌀쌀한 가을날,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은 마당에는 인부 두 어 명이 한가로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가을볕을 받으며 따뜻한 커피를 마시니 스르르 잠이 들려한다. 아뿔싸. 편안함이 넘쳐서 하마터면 결례를 범할 뻔 했다. ‘이제 들어오라’는 서씨의 말에 퍼뜩 정신이 돌아온다. 사당에 들어서니 예상대로 사천왕상에 향냄새가 그윽하다. 헌데 실제로 만난 서씨는 놀랍도록 ‘동안’이었다. 애교 있는 미인형인 서씨는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고운 자태였다. 오른쪽 뺨에 푸른 멍 자국이 일자로 그어져있었지만, 오래 전 한 굿판에서 본 무당도 얼굴에 멍 자국이 많았던 걸 기억해 내고 섣불리 묻진 않았다. 만가지 신을 받는 몸인데 그깟 멍자국이 대수겠는가. 무당과 그렇게 가까이 붙어 앉아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기에 인터뷰 당하는 사람보다 인터뷰 하는 사람이 더 긴장해 버리는 요상스런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안되겠다 싶어 무속에 대한 얕은 지식에 기대 다짜고짜 질문을 던지기로 작정했다. 평소 무속, 무당, 그리고 굿에 대해 궁금하게 생각했던 점을 묻는다. 다음은 서씨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 Q: 보통 무당이 되는 경로는 세습무와 강신무가 있다는데 어느 쪽이신가요? ▪ A: 전 강신무에요. 그러니까 날 때부터 타고난게 아니라 후천적으로 이렇게 된 거죠. 애기때부터 이유도 없이 맨날 아프곤 했데요. ▪ Q: 얼마 전 논란을 일으켰던 드라마 '왕꽃 선녀님'의 주인공 같이요? ▪ A: 그렇죠. 어릴 때부터 시름시름 원인모를 병에 시달리다 갑자기 신내림을 받았어요. ▪ Q: 처음에 신내림이 왔을 때 무서웠을 텐데 어떻게 이 길을 가기로 결심한건가요? ▪ A: 너무 무서웠어요. 무서워서 피하고 싶었죠. 하지만 내가 신내림을 거부하니까 딸아이한테 무병이 옮는 걸 보고 (그런 경우를 ‘벌전’이라고 한단다) 결정했어요. 내 딸이 고열에 시달리며 헛소리를 하는 데 가슴 아프지 않을 엄마가 어디 있나요? ▪ Q: 마음고생이 심하셨겠네요. 그럼 처음 신내림을 받은 게 언젠 쯤 인가요? ▪ A: 아마 서른두 살 때 일거에요. 인천 계양사 굿당에서 처음으로 내림굿을 했는데 지금도 그 때를 잊기 힘들어요. ▪ Q: 그 때 기분이 어떻던가요? ▪ A: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 할 일체감을 느껴요. 마치 하늘을 안은 듯한 기분이고. 무당은 신의 제자에요. 세상에 거리낄 게 없죠. ▪ Q: 세간에 무속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많은데..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 A: 맞아요. 오해가 많죠. 우리 토속신앙인데... 그런 오해는 정말 잘못된 거예요. 사실 무속이란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구전된 거라 문서화된 게 많지 않지만, 이게 한민족 얼의 기본 뿌리인 건 확실해요. 가끔 신부님, 목사님, 스님이랑 동등한 위치에서 강연하기도 해요. 이런 식으로 서서히 사회적 편견들을 없앨 겁니다. ▪ Q: 무속에서 말하는 ‘만신’이란 뭘 뜻하는 건가요? ▪ A: 우리 백성들은 머리가 깨끗하고 모두 신의 자손들입니다. 우리가 단군, 즉 산신의 자손들이잖아요. 산신은 우리의 뿌리죠. 저는 최영 장군을 주작신으로 모시고 산신, 용신, 천신을 다 맞아들이지만, 그분들이 강림하지 않으면 다 소용 없어요. ▪ Q: 왜 하필 주작신이 최영 장군인가요? ▪ A: 최영 장군은 민초들의 고통을 알아주는 분이었죠. 무관 출신인데 글 솜씨까지 좋아 문무를 겸비한 인재였어요. 그 분은 궁핍한 민초들을 불쌍히 여겨 백성들에게 ‘고기 잡는 법’을 알려줬어요. 강직하고 곧고, 기가 센 분이라 목을 세 번 내리쳤는데도 잘리지 않고 결국 목이 다시 붙었죠.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명언을 남긴 민중의 수호신이며 만신의 주작이기도 해요. 최영 장군이 무당들의 아버지요 어머니인 셈이죠. 참, 이순신, 남이, 임경억, 서산대사, 달마대사 등 최영 장군 말고도 장군 신들은 많아요. 여신도 있고요. 이들은 모두 기개가 높고 위풍당당하게 한 시대를 호령했던 인물들로 한스럽게 죽었다는 공통점이 있죠. ▪ Q: 주작신이 중요한 이유는? ▪ A: 무속도 타종교와 마찬가지로 교리는 한 교리에서 나오지만 무속인이 모시는 신령님들은 비슷비슷해요. 문제는 어떤 신을 주작신으로 모시느냐죠. ▪ Q: 참, 하필 왜 돼지를 제물로 쓰나요? ▪ A: 꼭 돼지만 쓰는 건 아니에요. 보통 잡귀를 물리는 의미에서 돼지나 닭을 쓰지만 큰 굿에서는 소를 잡아요. ▪ Q: 큰 굿은 얼마나 자주 하나요? ▪ A: 원래 연 2회였는데 올해부터는 연 1회로 줄였어요. 워낙에 큰 굿이다 보니 한번만 하고 대신 제대로 공들여서 하자는 주의거든요. ▪ Q; 큰 굿도 큰 굿이지만 개인굿도 꽤 많을 듯 한데요. ▪ A: 한 달에 개인굿은 열다섯 번 정도 해요. 물 흐르듯 설명하는데 역시 무당, 말 흐름이 리드미컬하다. 이번에는 가족관계에 대해 묻는다. 1남 1녀를 둔 어머니이기도 한 서씨는 이제 대학교 3학년인 아들과 대학 졸업 후 고시 공부 중인 딸아이를 생각하면 가슴 한 구석이 휑하다고. “지금은 아이들이 내 일을 이해해 주고 가끔 도와주기도 하지만, 처음에는 내가 애들을 피했어요. 괜히 피해 줄까봐. 아이들이 아직 어릴 때니까... 그러니까 18년 전만 해도 무당에 대한 편견은 말도 못 했어요. 신내림을 받고 남편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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