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수산의 경영권 분쟁이 또다시 본격화될 조짐이 보인다. 고 왕윤국 명예회장의 아들 왕기철 대표가 신주인수권부사채(BW) 권리행사를 통해 2대주주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문제는 왕 명예회장의 두 번째 부인인 박경임 씨 측의 반격이 예고된다는 점이다. 박경임 씨 측은 왕 대표 해임에 적극적으로 나선 전적이 있다. 특히 왕 명예회장의 지분 향배에 따라 왕 대표의 경영권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한숨을 돌리기도 이르다. 왕 명예회장의 지분이 민법상 상속비율대로 나뉜다면 박경임 씨와 그의 딸 왕기미 상무에게 돌아가는 지분이 더 많아지는 탓이다. 그럴 경우 계모와 아들 간 피 튀기는 경영권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

‘BW 행사’ 왕기철 대표, 2대주주 등극…경영권 우위
고 왕윤국 명예회장 지분따라 후계판도 달라질 수도
왕기철 대표가 동원수산 경영권 분쟁 2차전에 본격 뛰어들었다. 2년여 전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 행사를 통해 보유지분을 대거 늘린 것이다. 이로 인해 왕 대표는 고 왕윤국 명예회장에 이어 2대주주가 됐다. 앞서 ‘경영권 분쟁’을 벌였던 계모-이복 여동생의 합산지분보다 훨씬 많은 수준이다.
2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동원수산은 왕기철 대표가 BW 권리행사를 통해 45만6794주(행사가액 1만508원)를 취득했다고 지난 25일 공시했다. 이로써 왕 대표의 지분은 0.5%에서 12.59%로 늘어났다. 왕 대표의 계모인 박경임 씨와 이복 여동생인 왕기미 상무의 지분은 각각 3.41%, 1.19%로 왕 대표보다 낮은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왕 대표의 지분확대를 두고 동원수산 경영권 분쟁이 재점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동원수산이 2011년 박 씨와 왕 대표 간 경영권 분쟁에 휩싸인 바 있어서다. 당시 박 씨는 왕 대표를 이사직에서 물러나게 하고, 자신의 딸인 왕 상무를 신규이사로 선임하겠다는 주주제안을 내놓았다.
박 씨는 “왕 대표의 방만한 경영으로 수년간 실적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며 표 대결을 통해 왕 대표를 퇴진시키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2010년 영업이익이 발생했지만 이는 오징어 가격 급등에 따른 것일 뿐 동원수산이 주력하는 참치 사업부문에서는 계속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게 박 씨의 주장이었다.
또 박 씨는 왕 대표와 조카 왕태현 씨가 동원수산 자회사인 유왕 지분(51% 중 42%)을 매입하면서 개인적인 이익을 취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사회 승인을 받아야하는 사안임에도 은밀하게 진행했고, 지분매각 후에도 유왕에 대해 채무보증을 했다”는 것이다. 박 씨와 왕 상무의 합산지분이 5.05%, 왕 대표의 지분이 0.50%인 상황에서 위협적인 공세였다.
양측의 다툼은 왕 명예회장의 장손자인 왕기용씨가 이사직을 포기하면서 극적 봉합됐다. 왕 대표도 문제가 됐던 유왕의 매각계약을 ‘합의해제’, 즉 동원수산에 재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주주총회에서 왕 상무는 신규이사로 선임됐고, 왕 대표는 연임에 성공하며 동원수산 경영권 분쟁도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6개월 만에 박 씨 측은 또다시 왕 대표를 압박했다. 왕 상무가 1만5500주를 사들이며 지분을 1.45%로 늘린 것이다. 박 씨도 왕 대표를 해임하겠다며 법원에 임시 주주총회 소집허가 신청소송을 제기했다. 다음 달 해당 소송을 취하하기는 했지만 이미 동원수산 경영권 분쟁 2차전의 서막을 알린 행보였다.
왕 대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동원수산은 2011년 말 120억원 규모 BW를 발행했다. 이중 80%는 왕 대표와 특수관계인인 왕수지 씨에게 양도한다고 명시돼 있었다. 왕 대표가 이번에 이를 주식으로 전환하면서 2대주주로 등극, 계모와 이복 여동생보다 경영권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 왕 대표의 승리를 속단할 수는 없다. 지난 9월 별세한 왕 명예회장의 지분(14.14%·53만29주) 상속문제가 변수이기 때문이다. 왕 명예회장은 따로 유언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민법상 상속비율(배우자 1.5, 자녀 각 1)로 왕 명예회장의 지분이 나뉘게 돼 박 씨 모녀가 왕 대표를 압박할 여지가 생긴다.
1차 분쟁 당시 왕 대표는
한편, 2011년(경영권 분쟁 1차전) 박경임 씨가 왕 대표를 상대로 제기한 두 가지 주장에 대해 동원수산은 그해 3월 11일 공시를 내고 조목조목 반박한 바 있다.
동원수산은 ‘참치 사업부문 실적부진’ 주장에 대해 “현 경영진이 당사 임원으로 취임한 2008년부터 과거 수년 간 적자를 기록하던 당기순이익을 흑자로 전환시켰고, 영업이익도 흑자를 이뤄냈다”며 “이 결과를 박경임씨가 오징어 가격 급등 때문이라고 폄하하고 있으나 매출액 1000억원, 자산 760억원인 상장사의 당기순이익과 영업이익이 지엽적이고 단순한 원인에 기인할 리 만무하다”고 밝혔다.
또 ‘유왕 매각과정에서 왕 대표의 사익편취’ 의혹에 대해서는 “긴급한 자금조달의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비상장사인 유왕을 제3자에게 매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 왕 대표 개인자금을 조달해 매수한 것이고, 이사회에서 이 문제에 관한 충분한 논의를 거친 끝에 지분매각 승인을 결의했다”고 해명했다.
이후 3월 18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왕 대표도 계모-이복 여동생과 경영권을 놓고 다툼을 벌인 데 대해 입장을 드러냈다. “가정적인 문제를 내부에서 빨리 원만하게 해결해서 사업에만 충실하도록 노력했어야 했는데 제대로 못했다. 본의 아니게 이런 문제가 야기된 것에 대해 사과드린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