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가에서는 ‘모든 정치는 김기춘으로 통한다’ 라는 말이돌고 있다. 감사원장과 검찰총장 후보자 등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요직에 PK(부산·경남)라인이 독식하면서 그 정점에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실장의 영향력이 막강해지고 PK 출신의 독주가 심화되자 일부 몇몇 측근 인사들에 의해 국정이 좌지우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다. 더구나 서청원 당선자가 새누리당에 복귀하면서 김 실장의 독주체제에 변화가 있을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與 “능력·전문성 우선” vs 野 “PK 출신 편중 인사”
김기춘 라인 독주…탕평책 무산, 측근인사 의존 심화
서청원 복귀, 수평적 당청관계 재편…삼각체제 완성
막후 실세, 왕실장, 심지어 흥선대원군에 빗댄 ‘기춘 대원군’이라는 신조어까지 따라붙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김 실장이 청와대 입성 이후 정국 운영이 김 실장의 대리정치로 흐르고 있다는 비난이 쇄도하는 데다 정부 요직에 PK세력이 약진하고 있다는 비판적 여론 탓이다.
막후 실세 ‘김기춘’
김 실장의 영향력이 본격적으로 가시화 된 때는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항명 파동부터다. 당시 진영 전 장관은 국민연금에 대한 자신의 소신이 꺾일 경우에 사퇴하겠다는 뜻을 거듭 청와대에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실장은 자신은 진영 전 장관으로부터 아무것도 전달받은 바가 없다고 해명했다. 서로의 주장이 어긋나자 일각에서는 청와대 비서실이 소통을 가로막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임과 관련해서도 김 실장이 지목됐다. 김 실장이 ‘조선일보’에 주도적으로 정보를 흘렸고, 황교안 법무부장관을 통해 채 전 총장을 감찰하게 하여 사퇴시켰다는 의혹이다.
국정원 특별수사팀장이 특수통에서 공안통으로 바뀌고,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후임으로 김진태 전 대검차장을 지명되자 이번에도 김 실장이 논란이 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진태 검찰총장 내정자는 김 실장이 법무부 장관이었던 1991년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검사로 근무한 바 있다.
더구나 김 비서실장은 과거 사석에서 “내가 아는 검사는 김진태뿐”이라고 수차례 말했다고 전해지면서 ‘김기춘 인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야권이 김 실장에 대한 공세의 수위를 높이자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나서 김 실장을 변호하려다가 도리어 야당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홍 사무총장은 29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 내정자의 ‘김기춘 라인’ 논란에 “(김 실장이)‘실질적으로 김진태라는 분을 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 김정현 부대변인은 “왜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청와대 비서실장을 대변하나”면서 “새누리당의 청와대 의존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꼬집었다.
황찬현 감사원장 내정자 역시 김 실장과 인연이 깊다. 황찬현 내정자는 마산고·서울대 법대를 나와 마산중·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김 실장과 학연이 깊다. 29일 국정감사자리에서는 황찬현 감사원장 내정자가 김 실장으로부터 내정사실을 통보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다시금 김 실장의 영향력이 확인됐다.
야당은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에 막후 실세로 통하는 김 실장과의 관계를 거론하며 사정당국의 중립성을 지킬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다.

대탕평 무산, PK 독식
김 실장이 지난 8월 청와대에 입성 후 두드러진 특징은 ‘PK 출신’의 약진이다. 박 대통령은 대선 기간 ‘대통합과 대탕평 인사’를 강조했지만 그 약속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청와대와 내각이 PK 출신으로 포진하자 견제와 균형을 잃고 일방 독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의전서열상 권력서열 1위는 대통령, 2위는 국회의장, 3위는 대법원장, 4위는 헌법재판소장, 5위는 국무총리, 6위는 중앙선관위원장, 7위는 감사원장이다. 이중 1~2위를 제외하고 3위 양승태 대법원장(부산), 4위 박한철 헌법재판소장(부산), 5위 정홍원 국무총리(경남), 7위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경남)가 PK출신이다. 여기에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경남)과 홍경식 민정수석(경남), 그리고 김진태 검찰총장 후보자까지 PK출신이 지명됐다.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을 포함해 현 정부 장·차관급 고위직 인사 90명 가운데 PK출신이 20%에 이른다. 바야흐로 PK 시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대구·경북(TK)까지 합치면 무려 32%가 영남출신이다. 더구나 인구가 영남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수도권은 전체의 27%다. 충청은 15%, 호남 12%, 강원·제주는 4%에 불과하다.
야권은 청와대와 정부요직에 PK 출신이 독식하자 청와대 인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 실장을 지목하고 연일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28일 “사정·감사 라인을 PK 출신이 독식, ‘신(新) PK 시대’가 도래했다”며 “(사정 라인에서) 견제와 균형이 없으면 인사 불균형은 더 심화될 것이고 균형잡힌 여론 수렴도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은 김 실장에 대해 “흥선대원군 이래 최대 막후실세라는 점에서 그를 ‘기춘대원군’으로 불러도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며 “기춘대원군이 사실상 자신의 직할체제, 친정체제를 구축하고 대통령의 행보는 야구장과 행사장, 해외순방으로 돌리고 있는 것도 흥선대원군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힐난했다.
지난 대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강지원 변호사도 30일 ‘PK편중’ 인사 논란에 대해 “기절초풍 할 일”이라며 맹비난했다. 강 변호사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나라에서 언제부터 PK라고 하면서 얘기됐는지 모르겠다”며 “이렇게 특정 지역 출신들이 삼부요인을 장악한 적이 역사적으로 거의 없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야권의 공세에 맞서 새누리당은 “능력과 전문성을 고려한 인사”라고 반박했다.
새누리당 김태흠 원내대변인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현안들을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는 리더십이나 업무 능력을 갖춘 능력 있고 유능한 좋은 분들을 모시려고 하다 보니까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던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여권 관계자도 “능력도 없는 사람을 출신지역 때문에 인위적으로 고위직에 임명하는 것이 대탕평 인사가 아니라 능력이 있으면 출신지역에 의해 차별받지 않고 쓰는 것이 대탕평 인사”이라고 항변했다.

측근 의존 심화, 삼각체제 구축
김 실장의 독주가 시사하는 것은 당(黨)·정(政)·청(靑)으로 대표되는 여권의 3각 구도에서 청이 당·정을 리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30일 치러진 10.30 재보궐선거에서 서청원 후보가 당선되면서 당·청 관계에서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수직적 당·청관계가 수평적 당·청관계로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의견이 그것. 서청원 당선자가 김 실장이 대등한 관계라는 점에서 이 같은 의견이 뒷받침되고 있다. 서 의원이 당·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면서 원활한 의견이 교환될 것이며 자연스럽게 김 실장의 위상도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김기춘(靑)-서청원(黨)-강창희(政)의 삼각체제가 구축되고 박 대통령의 친정체제가 완성되면서 김 실장의 독주가 심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이어지고 있다.
이에 반해 일각에서는 ‘김기춘-서청원’간의 관계로 인해 당청간 소통은 수월해지겠지만 청와대 위주의 당청관계의 변화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전망하고 있다. 청와대의 김기춘-당의 서청원-정부의 정홍원, 세 사람이 안정감 있게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 한다는 분석이다.
‘모든 정치는 김기춘으로 통한다’는 항간의 소문이 이어질 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