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구당 보험 가입률은 96.1%에 이른다. 우리나라 모든 가구가 보험에 하나 정도는 가입한 셈이다. 하지만 소비자보호는 뒷전인 보험사의 영업행태로 인해 보험피해자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전체 금융 민원 가운데 51%가 보험 민원이었다. 더구나 지인의 권유라는 이유로 설명을 제대로 듣지 않은 채 계약을 했다가는 피해를 당할 수 있다. 동양증권과 같은 불완전 판매로 인해 경각심이 일고 있지만 이러한 관행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보험사들의 횡포를 집중 조명했다.
불완전 판매, 자필서명 있으면 피해보상 어려워
상당수 보험사, 민원 외면에 보험금 지급도 미뤄
손보사 자문의, 법원 신체감정의 겸임…공정성↓
보험사 불공정계약에 설계사 수수료 부당 뜯기
#경기도 시흥에 살고 있는 허모(46세,여)씨는 기존에 있던 보험을 새로운 보험으로 갈아타라는 권유를 받았다. 허씨는 20년 전에 종신보험에 가입했다. 보험설계사인 지인은 기존 종신보험의 보장이 약하다면서 다른 보험상품을 권한 것이다. 허씨는 깨알 같은 약관을 다 읽지 않고 설계사가 서명하라는 곳에 자필 사인을 했다. 지인의 권유라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 후 허씨는 임플란트 시술로 치주골을 이식받게 되었다. 허씨는 종신보험 가입시 치조골 이식의 경우 보험이 적용된다는 것이 생각나 보험회사로 전화를 했다. 변경된 종신보험에서는 그러한 보장이 빠져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기존 종신보험 보다 더 설계가 잘되어 있어 혜택이 크다는 설계사의 말은 일부 거짓임이 드러났다. 분노한 허씨는 회사에 항의했지만 설명을 들었다는 자필서명 때문에 보험료를 지급받지 못했다. 허씨는 “아는 사람이 권유하는 것이라 믿고 했다”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보험 ‘불완전 판매’ 주의해야
허씨와 같이 보험 설계사의 설명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자필서명을 할 경우 피해를 당할 수 있다. 허씨는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여러 차례 제기했지만 소용없었다. 금감원은 보험 관련 민원이 제기될 경우 보험사와 가입자의 의견을 같이 듣게 된다. 그때 가입자가 보험 가입 당시 설계사의 현혹이나 기망으로 가입했다는 결정적 증거가 없으면 사실상 보상받기 힘들다.
지난해 전체 보험 민원 가운데 불완전 판매가 32.2%를 차지했다. 불완전 판매는 금융회사가 소비자에게 금융거래나 투자시 필요한 정보나 상품의 특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거나 왜곡된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를 말한다.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생명보험사들의 불완전 판매비율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금융감독원이 무소속 송호창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회계연도 2012년 생보사별 불완전판매율은 KB생명 19%이 가장 높았다. 그 뒤를 이어 우리아비바생명 14.3%, 동양생명과 흥국생명 14.2%, AIA생명 13.6%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24개 생보사 중 불완전판매 비율 10%를 넘는 곳이 무려 8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완전 판매율은 특히 설계사와 고객이 만나지 않고 가입하는 홈쇼핑, 텔레마케팅과 같은 비대면 채널에서 많이 나타났다.
텔레마케팅 방식의 불완전 판매율은 흥국생명 44%이 가장 높았다. 뒤를 이어 미래에셋생명 28.8%, 동양생명과 KB생명 27.7%, 동부생명 26.5% 으로 나타났다.
송호창 의원은 “보험사의 불완전판매율이 아직도 매우 높은 수준으로 이는 보험에 대한 불신의 큰 원인 중 하나”라며 “특히 비대면채널에 의한 영업으로 인한 불완전판매율이 높은 것은 큰 문제로 감독당국은 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불완전 판매가 이렇게 높게 나타나는 데에는 우리나라 특유의 분위기도 한몫을 하고 있다. 인척이나 지인들로부터 보험을 권유받다보니 어쩔 수 없이 가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금융상품에 가입하려는 본인이 철저하게 알아보고 결정하는 것 이외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민원 외면·보험금 지연 심각
보험사들의 불완전 판매도 문제이지만 보험사들이 접수된 민원을 외면하고 보험금도 제때 지급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기식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국내 생명보험사들의 민원불수용률은 5년 평균 28.06%, 손해보험은 29.82%에 달했다. 민원 불수용률은 민원을 접수한 건 중에서 수용되지 않은 건수의 비율을 뜻한다.
생보사 중에서는 민원불수용률이 가장 높은 곳은 에이스생명이 65.06%이다. 이어 △미래에셋생명(64.6%)△라이나생명(50.5%)△AIA생명(50.1%) 순으로 나타났다.
손보사에는 NH농협손해보험이 82.8%로 최고 불수용률을 나타냈고 그 뒤로 △DAS법률비용보험(62.5%) △MG손보(56.33%) 등으로 파악됐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보험회사들이 보험 상품을 판매할 때는 ‘고객은 왕’이라 하면서 막상 가입자가 민원을 제기하거나 보험금 지급을 요청하면 어느새 ‘고객은 봉’이 돼있다”면서 “금감원은 민원불수용률이 특별히 높거나 보험금 지급기간이 많이 지연되는 보험사들에 대해선 관리감독을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험사들이 민원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당연히 지급해야 할 보험금의 지급을 미루는 등 횡포가 심각하다.
생명보험사 중 보험금 지급이 11일 넘게 걸린 횟수가 가장 많은 곳은 교보생명이다. 삼성생명, 한화생명, AIA생명, ING생명, 신한생명이 뒤를 이었다.
손해보험사 중에서는 삼성화재가 가장 오래 걸렸다. 11일 이상 걸려 보험금을 지급한 건수는 2008년 이후 5년 동안 309만건 이상이다.
지급 결정 후 181일 이상 지난 뒤 지급한 건수는 LIG손해보험이 13만4789건으로 가장 많았다. 흥국화재와 삼성화재도 8만5379건, 7만6039건 있었다.
자동차보험의 보험금이 지급되는데 걸린 시일이 11∼90일 걸린 경우는 전체의 29%를 넘었다.
보험사와 분쟁시 공정성 침해
보험사의 민원처리율이 낮은 것도 문제이지만 법정소송으로 갈 경우 공정성을 침해받는 경우도 있어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손해보험사와 소비자간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법정소송으로 가게 된다. 그러나 법원에 의학적 소견을 묻는 신체감정의가 보험사 소속 자문의인 경우가 많아 공정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김영주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손보사로부터 자문료를 받고 진단하는 자문의이면서 법원의 신체 감정의로 중복 활동하는 의사가 128명에 달했다. 이는 금감원이 법원에 제출한 자문 명단 가운데 30%에 해당하는 수치다.
김 의원은 “법원이 보험소송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의학적 소견을 구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배제되어야 할 소송당사자인 보험사와 업무연관성이 있는 자문의에게 자문을 받아 판결을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공정성과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문제는 지난 2007년 국정감사에서도 이미 불거진 문제다. 당시 손보사 자문의가 법원의 신체감정의를 겸임해 보험소송의 공정성이 저해된다는 지적에 따라 지난 2008년부터 매년 금감원이 손보사의 자문의 명단을 제출받아 법원행정처에 전달토록 했다.
하지만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손보사들이 금감원에 자문의 명단을 제출하면서 실제 의학적 자문을 받은 전문의 6187명 중 2118명의 전문의 명단을 누락보고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전문의들이 자문한 횟수는 2만2453건, 총 자문료는 35억원에 이른다.
누락된 자문의를 감안하면 손보사 자문의와 법원 신체감정의의 중복률은 더 높을 것으로 추측된다. 소비자와 보험사간 분쟁에서 공정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대목인 것이다.
더구나 보험사들은 보험설계사들에게 불공정 계약을 강요하고 수수료를 부당하게 환수해왔던 사실도 드러났다.
보험사와 설계사간 업무위촉계약 내용을 보면 “민원해지 되는 계약에 대해서는 설계사에게 기 지급된 수수료를 100% 환수한다”고 정하고 있다. 보험 민원해지는 보험가입자가 보험회사나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해 해지한 경우를 말한다. 결국 보험설계사의 잘못이 아닌 경우에도 보험사는 설계사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이런 계약서 내용에 대해 공정위는 지난 2010년 미래에셋보험의 약관을 심사하면서 불공정 약관으로 판단한 바 있다. 당시 공정위는 보험모집인의 고의 또는 과실 없이 해지되는 계약의 경우에도 수당을 100%를 환수할 수 있도록 정한 것은 불공정 약관 조항으로 판단해 시정조치를 내렸으나 실제로는 거의 개선되지 않고 있었다.
여러 상황을 종합해보면 계약해지와 관련, 보험사들은 피해를 보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고객은 납입보험료보다 적은 환급금으로 피해를 보고 설계사는 환수를 해야 하는데 보험사는 사업료를 반납하지 않는 것이다.
돈벌이에만 급급해 민원을 외면하고 보험설계사들의 수수료를 부당하게 환수하고 있는 보험사들의 횡포에 대한 시급한 개선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