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갔지만, 여야 원내 대결은 아직 끝나지 않은 모습이다. 검찰총장·감사원장·보건복지부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 외에도 대정부질문과 법안심사, 예산심사 등 남은 일정들이 태산 같기 때문이다. 특히, 여야는 인사청문회를 주도권을 쟁탈하기 위한 기싸움의 한마당으로 여기고 칼을 갈고 있다. 민생은 뒷전으로 두고 극한 대립을 불사하고 있는 정국을 짚어본다.
국정감사는 이제 사실상 마무리 되었지만, 위험수위를 넘나들던 여야 간 대립과 정쟁은 여전히 멈출 줄 모르고 활활 타오르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삭제 의혹 수사 및 국정원 선거개입 논란 등 극한대립을 야기 시켰던 주요 요소가 아직까지 해결 단계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사청문회 두고 끓어오른 여야 기싸움
다수의 정치평론가들은 “이 같은 정부여당과 야권 사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팽팽한 대결은 적어도 내년 초까지는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비록 국정감사는 끝났지만 오히려 앞으로 여야 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갈 개연성도 다분하다”며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이도 적지 않다.
다수의 정계 관계자는 국정감사 이후 여야가 극한 대결을 펼칠 계기로 작용하는 요인으로 ▲검찰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삭제 의혹 최종 수사 결과 발표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 재판 과정 및 판결 ▲내년도 법안·예산안 심사 ▲검찰총장·감사원장·보건복지부장관 인사청문회 ▲KT·포스코 등의 기업 대표 후임 인선 과정 등을 꼽는다.
이렇게 줄줄이 쌓인 이슈 가운데에서도 당장 이번 주부터 첨예하게 진행될 것으로 누구나 예상하는 사안은 바로 검찰총장·감사원장·보건복지부장관 후보자의 자질을 검증할 인사청문회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인사청문회는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가 11월 11일~12일 사이에,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 후보자가 11월 12일, 김진태 검찰총장 후보자는 11월 13일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확정됐다.
이들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아직 본격적으로 열리기 전부터 증인 채택 문제를 놓고 여야 사이에 첨예한 갈등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일단 김진태 검찰총장 후보자 경우는 증인 채택 사안을 놓고 여야 간 특별한 공방 없이 마무리 된 상태다.
지난 11월 7일 검찰청을 소관하는 상임위원회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여야 간사는 협의를 통해 김진태 후보자의 청문회는 증인을 채택하지 않고 김 후보자 본인과의 질의응답에 집중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그렇지만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의 경우는 증인 채택 여부를 두고 여야 간 기싸움이 팽팽하다. 일단 황 후보자 인사청문회 증인은 양건 전 감사원장·김영호 감사원 사무총장·최명진 서울중앙지법 사무관 등 세 명으로 사실상 확정된 상황이다.
또한 참고인으로는 박철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유의선 이화여대 교수, 노영보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이상원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장, 이상돈 중앙대 교수, 윤태범 행정감시센터장 등 총 여섯 명이 채택됐다.
그러나 애초에 야당은 황찬현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홍경식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증인으로 출석시키려 추진했지만 여당과의 팽팽한 대립 끝에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김진태, ‘인사청문회 문제 종합선물세트’?
민주당은 황찬현 후보자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PK(부산·경남) 인맥 덕분에 감사원장으로 추천됐다는 세간의 의혹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고 검증하기 위해 김 비서실장 증인 채택을 추진했다.
그런데 새누리당 측 입장에서는 인사권자인 김기춘 실장과 홍경식 수석이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할 경우 앞으로 계속 이어질 인사청문회 일정에서도 인사권을 가진 관료들이 때마다 청문회장으로 불려나올 수 있는 선례가 굳어질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불편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에서는 한때 ‘맞불 작전’을 고려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새누리당에서는 ‘야당 쪽이 김기춘 비서실장과의 관계를 부각시키면 우리는 노무현 정부 당시 임명된 오정희 전 감사원 사무총장을 증인으로 출석시키도록 하자’는 계획을 추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는 “참여정부 때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의원까지 황 후보자 인사청문회의 증인으로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는 ‘극단론’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렇게 여야 간 일어난 고도의 전략 싸움은 결국 쌍방 타협으로 일단락 됐지만, 황찬현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순조롭게 진행될 거라고 예상하는 이는 극히 드문 상황이다. 바로 양건 전 감사원장이 인사청문회 증인으로 서기 때문이다.
한 정치평론가는 “청문회에서 양건 전 감사원장이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전후 사정이 다시 한 번 집중적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와 더불어 특히 4대강 사업을 두고 여당과 야당의 책임 공방이 국정감사 때 못지않은 난타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평론가는 “여기에 황찬현 후보자와 김기춘 비서실장 사이의 친분 관계 등이 추궁되는 과정에서 청와대 인사 정책에 대한 야당의 공격이 집중될 개연성도 높다”며 “다만 재산이나 병역 등 황 후보자 개인 신상과 관련된 쟁점은 아직까지는 치명적인 사항이 드러난 바가 없어 이 부분은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개인 신상’과 관련해 난항이 예상되는 인물은 바로 김진태 검찰총장 후보자다. 재산 내역 및 형성과정은 물론 부동산 문제·자녀 병역문제·전관예우 등 그동안 인사청문회의 단골 레퍼토리로 오르내렸던 여러 불미스러운 쟁점이 김진태 후보자 한 사람에게 전부 몰려있는 형국이다.
특히 김진태 후보자는 불미스러운 의혹으로 물러났지만, 나름대로 소신 있게 검찰을 이끌어 야권의 호평을 받았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후임으로 물망에 올랐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인사 검증이 예고되어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 한 시사평론가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사퇴는 혼외자식 논란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기는 했지만 국정원 선거 개입 수사 진행을 둘러싼 청와대·황교안 법무부장관과의 갈등이 근본 배경으로 작용한 것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다”고 분석했다.
이 평론가는 “이 때문에 야권을 중심으로 김진태 후보자로부터 ‘결격 사유’를 최대한 폭로할 난타전이 확실시된다. 마침 김 후보자 또한 ‘논란거리’를 꽤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여야 간 공방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문형표 후보자, 장관 내정되자 ‘소신’ 바꿨나
또한 “11월 12일로 예정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도 그 과정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정계 일각의 견해도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문형표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사안은 바로 기초연금 등 복지정책에 대한 문 후보자의 견해다. 문 후보자는 지난 3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연계하는 사안과 관련하여 “국민연금 가입자는 사실 보험료를 낸 것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고 있는데 기초연금 20만 원을 전부 수령하겠다는 것은 욕심을 부리는 것 아니냐”며 “국민연금 가입을 못한 분들과 혜택 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문형표 후보자는 지난 2011년 복지부의 용역과제였던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 역할방안 보고서'에서는 이 같은 발언과는 정반대로 “국민연금 가입 유인을 낮추고 국민연금 제도의 내실화를 저해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앞으로 인사청문회에서 주요 쟁점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계 일각에서는 “문 후보자가 2011년도에 했던 문 후보자의 주장은 청와대와 갈등을 빚어 물러난 진영 전 장관이 견지했던 소신과 사실상 크게 다른 점이 없다”며 “결국 문 후보자가 소신을 바꿔 정부의 기초연금안과 뜻을 같이하는 입장을 취해 청와대의 눈에 든 요인으로 작용한 것 아니냐”고 꼬집는다.
이에 민주당 등 야당 측은 “이처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의 소신이 뒤바뀐 이유가 과연 무엇인지 이번 인사청문회를 통해 낱낱이 검증하겠다”며 잔뜩 칼을 갈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아울러 문형표 후보자는 다른 내정자와는 달리 ‘기본 소양’ 문제까지 도마에 오르고 있다. 문 후보자는 지난 5년 동안 기부금은 낸 적이 없으며 적십자 회비의 경우 납부를 미뤄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문 후보자는 적십자회비(15만원)도 2005년부터 2012년까지 8년간이나 미루다 최근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내정된 뒤에야 비로소 납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문 후보자는 종합소득세·증여세·종합부동산세도 2~3년 동안 체납했던 것으로 드러나 인사청문회에서 쟁점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치열한 공방이 예상되는 인사청문회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역시 박근혜 정부 초기의 인사를 둘러싼 자질론 논란이 다시 되살아나는 듯한 상황”이라며 “지난 1년 동안 선거 개입 문제와 인사 난맥상을 놓고 여야 간 소모전이 계속되어 왔는데, 이번 양상은 인사청문회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가 일각에서는 “여야 간 생산적인 공방은 민주주의 체제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것이 도가 지나쳐 각 당의 이해를 우선시 하는 정쟁으로 장기간 비화되면 이와 반비례 해 민생이 피폐해질 위험이 높다. 이런 차원에서 현재 청와대는 물론 여야가 보여주는 대립 구도는 상당히 우려스럽다”는 의견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