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은 경찰 공권력, 인권은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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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압적 진압, 집회의 자유 위축…인권침해 우려 확산

 인권보호에 앞장서야 할 경찰이 오히려 인권을 침해하면서 비난이 고조되고 있다. 더구나 경찰이 수갑과 경찰봉 등 경찰장구를 사용할 때 의무적으로 작성해야 하는 내부 규정을 삭제하면서 공권력 행사는 쉬워지고 인권침해 가능성은 높아졌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또한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 기존의 ‘채증을 통한 사후 사법처리’에서 ‘즉시 현장처리’로 대응기조를 선회하면서 집회의 자유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경찰의 시위대 진압이 날로 과격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10일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서는 시위가 시작된 지 불과 15분 만에 물대포가 발사되기도 했다. 시사포커스 자료사진 / 원명국 기자
‘수갑·경찰봉’보고 간소화…사실상 적극 사용유도
“정당한 공권력 행사” vs “인권침해 가능성 커져”
경찰 “집회 불법 행동, 즉시 현장 처리” 강경 대응

최근 5년간 경찰 및 검찰 수사에서 각종 인권침해 행위를 당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한 사례가 무려 918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경찰 수사 관련 인권침해 진정건수는 △2008년 147건 △2009년 154건 △2010년 187건 △2011년 152건 △2012년 278건 등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경찰장구 사용 적극 사용

경찰에 의한 인권 침해사례가 증가하는 가운데 인권 침해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정이 22년 만에 삭제돼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경찰청은 지난 10일 수갑이나 경찰봉 등 경찰장구를 사용할 때 의무적으로 보고서를 작성토록 한 조항을 삭제했다고 밝혔다.삭제된 규정은 1991년 무분별한 경찰 장구 사용을 막기 위한 통제 장치로 도입된 것이다. 경찰 장구는 총기 등 무기류가 아닌 수갑, 경찰봉, 포승줄, 방패, 전자충격기 등 범인 검거와 범죄 진압에 사용하는 장비를 일컫는다.

시민단체들은 해당 규정 폐지가 경찰의 공권력 남용을 키울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인권연대는 “보고 규정을 둔 것은 경찰관의 자의적 장구 사용을 통제해 국민 인권을 지키려는 취지”라며 “이를 폐지하는 것은 경찰관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려고 국민 인권을 도외시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경찰청의 이번 조치는 인권단체들이 주장한 경찰관 직무집행법 강화 요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인권단체들은 무기·장비 사용 규정을 추상적으로 기술한 경찰관직무집행법 10조 등을 개정해, 사용 요건과 방법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자의적 해석 및 과잉 사용을 막아야 한다고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들은 이번 경찰 장구 규정의 삭제는 과잉진압에 따른 인권침해 소지가 커질 수밖에 없다며 관련 규정을 원상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이들은 경찰 장구 사용에 경찰의 자의적 해석에 무게를 실어준다면 과잉 사용 가능성을 높아질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조기 강경진압 지침 시달

경찰장구 사용에 대한 의무 보고서 작성 폐지와 더불어 경찰의 강경진압도 문제가 되고 있다.
서울경찰청은 지난 8일 민주노총 노동자대회 집회를 앞두고 ‘물 대포와 캡사이신(시위진압용최루액) 등 경찰 장비를 사용해 불법 상태를 즉각 해소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는 지난 5월 노동절 집회를 앞두고 ‘철저한 채증으로 엄히 사법조치 하겠다’던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6개월 만에 ‘채증을 통한 형사처벌’ 지침이 ‘물대포 등 진압장비 사용을 통한 강경진압’ 방침으로 바뀌었다.

실제 지난 10일 △삼성전자서비스 비정규직 노동자 자살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국정원 대선개입 △박근혜정부 대선공약 파기 등에 항의하며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에서 경찰은 시위가 시작하고 15분 만에 물대포를 발사했다.

경찰 관계자는 통상 경고방송을 통해 해산을 유도하는 데 30분가량이 걸리지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불법 집회를 진압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전했다.

시민사회는 경찰이 취하는 일련의 조치들이 집회를 강경진압하면서 인권침해를 키울 것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 밀양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와 밀양 송전탑 서울대책회의가 지난달 22일 ‘밀양에서 벌어지는 경찰의 폭력적 공권력 남용’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공권력 남용, 인권침해 ‘심각’

경찰의 공권력 남용은 심각한 인권 침해로 이어지고 있다. 경남 밀양 송전탑 현장에 경찰이 과도하게 투입돼 공권력이 남용되면서 인권침해가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민주당 박남춘 의원은 “10월 1일부터 21일까지 송전탑 공사 현장에 모두 438개 중대 3만 5860명이 투입, 하루 평균 1666명에 이른다”면서 “이는 반대 주민 200~300명의 5~6배로 경찰 투입 인원이 지나치다”고 꼬집었다.

박 의원은 “반대 주민 대부분이 고령에다 소수인 점을 고려하면 현장에 투입된 경찰 인력은 과잉을 넘어 공권력 남용에 해당한다”면서 “제2의 용산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조속히 과다 인력을 철수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밀양 송전탑 시위에 공권력이 지나치게 투입되면서 인권침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밀양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는 집회 현장에서 주민과 시민단체 회원 등을 상대로 경찰의 욕설과 폭언 등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며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대책위는 “경찰의 폭언에 대해 대책위가 숱하게 지적하고 국회의원들은 국정감사에서 추궁과 지적을 했는데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아 주민들은 지금 말할 수 없는 스트레스와 압박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인권단체연석회의와 국제엠네스티 한국본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으로 구성된 밀양 송전탑 인권침해감시단이 ‘경찰이 점령한 밀양, 인권은 사라졌다’라는 내용의 인권보고서를 발간했다.

인권침해감시단이 밝힌 밀양 인권침해 사례는 △통행제한 △무리한 사법 처리와 표적수사 △채증 △폭력행사 △익명성에 가려진 공권력 △고립감을 목적으로 한 방문금지와 외부세력으로 매도 △생필품 반입금지 △부적절한 응급 진료와 신뢰할 수 있는 의료지원 통제 △신체적 자유에 대한 모욕적 침해 △주민들에게 인격적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조롱과 폭력적 대우 등이다.

인권침해감시단은 경찰에 대해 “주민들에 대한 신체적 폭력, 비인도적인 조치 및 모욕적 언행 중단과 주민들의 삶터인 마을에서의 즉각 철수할 것”을 촉구했다.

인권 침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종교계와 학계 등이 나서 제주해군기지 건설 갈등에 따른 반대 측의 인권침해 상황도 조사한다.

천주교제주교구 평화의 섬 특별위원회·진실과 정의를 위한 제주지역 교수네트워크·개척자 등 9개 단체는 12일 ‘강정인권위원회’ 출범을 공식화했다.

이들은 기존 인권실현위원회의 활동 폭을 넓혀 반대 주민과 활동가 모두를 대상으로 인권침해 사례를 규명하고 제도개선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제주에서는 해군기지 찬반 갈등이 빚어진 2007년 이후부터 지난해 말까지 주민과 활동가 649명이 체포·연행됐으며 이 가운데 473명이 기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경찰의 일련의 강경한 조치들이 청와대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증언이 나왔다. 11일 <노컷뉴스>에 따르면,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법질서 준수 원칙 아래 시위대의 불법행위를 방관하면 안 된다는 지휘가 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도로 점거 등 불법 행위가 15분을 넘기면 바로 해산하라는 지시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차관급에 불과한 이성한 경찰청장이 독단적으로 이런 결정을 할 수가 없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서유럽 순방에 나서기 전인 지난 주말에 청와대에서 시그널이 내려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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