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파크’로 유명한 건설기업 현대산업개발이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재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우선 올해 3분기 실적이 큰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내내 부진한 실적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내년부터 주채무계열 대기업에 포함되어 채권단의 관리를 받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또한 경인운하사업에서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3분기 연속 ‘실적부진’…4분기도 이어질 듯
주택경기 부진, 용산 개발사업 무산 ‘결정타’
신용공여액 0.1%→0.075%, 관리대상 가능성
“당분간 적자” 관측, 4대강 부당이득 의혹도
현대산업개발하면 우선 ‘명품’ 이미지가 곧바로 떠오른다. 삼성동아이파크·용산아이파크·분당아이파크·해운대아이파크 등 부유층 거주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급 아파트로 주가를 드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현대산업개발이 이렇게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확보하게 된 이유로 1999년부터 경영 일선에 등장한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발휘하고 있는 탁월한 역량을 최우선으로 꼽는다.
한 경제평론가는 “정몽규 회장은 대한민국 아파트 건축에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거의 처음 본격적으로 도입한 인물”이라며 “이러한 정 회장의 혁신적인 경영 아이디어는 그동안 중후장대의 투박한 인상이 짙게 드리웠던 범(凡)현대가 사업 분야에 세련되고 참신한 기운을 불어넣는 데까지 성공했다. 이는 현대카드와 더불어 상당히 보기 드문 독보적인 업적으로 꼽힌다”고 호평했다.
‘올해 내내 실적부진’ 우려
그렇지만 이러한 화려한 평판과는 달리, 요즘 현대산업개발은 대내외적으로 상당한 곤경에 빠져 있다는 것이 재계의 전반적인 관측이다. 건설분야 최악의 장기 불황을 현대산업개발도 피해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3/4분기 현대산업개발은 매출은 1조856억 원, 영업 손실은 197억 원을 기록했다. 당기순이익도 적자로 돌아선 결과로 나타났다. 원래 시장에서는 현대산업개발이 200억 원 대의 영업이익을 거둘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막상 뚜껑을 연 결과 예상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기업이라면 웬만해서는 피해가고 싶은 상황인, 이른바 ‘어닝쇼크’를 업계에 준 것이다. 재계에서는 “현대산업개발의 부진은 이번 3분기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로 작용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대산업개발은 지난 1/4분기의 경우 매출은 7,852억 원 영업이익은 292억 원을 올렸다. 특히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영업이익 수치가 동기간과 비교해 50%에 육박할 만큼 내려간 결과가 나왔다는 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현대산업개발의 2/4분기 영업이익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약 20% 늘어났으나, 당기순이익은 약 9%가량 내려간 9억 원을 기록하며 시장이 가지고 있던 기대치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결국 현대산업개발은 올해 내내 부진을 면치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다.
증권가에서는 “현대산업개발의 4/4분기 실적 전망도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심지어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하게 경영실적 면에서 크게 우려되는 점이 많다”는 극히 비관적인 견해도 여러 전문가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상황이라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증권가 애널리스트는 “올해 현대산업개발의 3/4분기 실적이 시장 전망치에 크게 못 미친 것은 결정적으로 일부 사업장에서 발생한 손실이 반영된 결과”라며 “4/4분기 역시 부실을 면치 못하고 있는 사업장의 손실이 실적에도 반영되어 영업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건설업황 불황 타격
현대산업개발 측은 자사의 부진에 대해 “울산 문수로2차와 대구 월배 등 장기보유 PF(프로젝트 파이낸스) 사업장의 금융비용 발생 등으로 270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으며 이와 더불어 용산개발사업까지 무산되는 바람에 이에 따른 100억 원의 손실이 실적에 반영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건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산업개발이 지난 2012년 분양한 울산 문수로2차와 대구 월배 1블록의 원가율은 무려 106%에 달했다”고 한다. 이로 인한 금융비용의 누적된 분량과 인하된 분양가가 치명적인 악영향으로 작용하여 총 270억 원이나 되는 원가가 추가 손실로 반영된 것이다.
한 경제평론가는 “여기에 도급사업인 백석·천안·우정·울산 등의 현장에도 약 100억 원이 추가로 투입되는 상황이 일어나 현대산업개발의 손실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재계에서는 현재 현대산업개발이 거두고 있는 부진한 수익률과 연관하여 “현대산업개발의 사업구조가 무엇보다 주택 사업에만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에 대해 한 증권 관계자는 “그동안 시장에 충격파를 던진 건설기업은 거의 모두 해외에서 건설 사업을 진행하다가 난관을 맞은 경우”라며 “그런데 국내에서의 주택 비중이 높은 현대산업개발이 의외의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손실 또한 커지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업계에서는 “특히 현대산업개발의 재무구조가 양호한 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역시 장기적인 불황 앞에 결국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일각에서는 “다량의 미분양 아파트는 물론 현대산업개발이 지난 2006~2007년 사이에 비싼 금액으로 구입한 땅 또한 최근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동안 역점을 두던 용산개발사업의 전면 백지화도 현대산업개발의 만만치 않은 악재로 작용되고 있다. 한 경제평론가는 “용산사업이 무산되며 용산역에 위치한 현대아이파크몰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평론가는 “원래 현대아이파크몰은 용산개발사업이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를 감안해 2004년부터 영업을 개시했지만, 기대했던 사업이 무산으로 돌아가자 사업 정착에 커다란 어려움을 맞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평론가는 “현 건물에 입점한 이마트 같은 대형마트나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인 CGV 정도만 비교적 양호한 편이며 나머지 입점 업체는 명품 아울렛으로 업종을 변경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부진한 편”이라고 우려했다.
채권단 관리 받을 우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악의 경우 내년부터 현대산업개발이 주채무계열 대기업에 포함되어 채권단의 관리를 받게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11월 5일 금융위원회는 기업 부실 사전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안을 발표했다.
지금까지는 대기업이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린 돈이 전체 신용공여액의 0.1%를 넘는 경우 주채무계열로 선정해 주채권은행의 관리를 받도록 하고 있지만, 내년부터는 이 같은 기준을 금융기관 전체 신용공여액의 0.075%로 전격적으로 낮추었다. 이에 따라 당연히 재계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현대산업개발 또한 주채무계열 대기업 예상 명단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현대산업개발이 주채무계열 대기업으로 확정될 경우에는 2014년부터 재무구조 평가를 채권단으로부터 받게 된다.
또한 이 경우 채권단이 실시하는 재무구조 평가에서 기준 점수에 미치지 못하게 되기라도 하면 현대산업개발은 주채권은행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한 경제평론가는 “만약 해당 기업이 약정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채권은행단은 경영진 교체를 권고할 수 있다”며 “결국 주채무계열 대기업에 포함된다는 것은 그만큼 권한이 강화된 채권단의 관리를 집중적으로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기업으로써는 부담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현재 적지 않은 시련을 겪고 있는 현대산업개발 측은 “주택 부분이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경기가 나쁘다 보니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 것이 사실”이라며 “그렇지만 최근 들어 신규로 분양하는 아파트 단지에서 상당히 양호한 성적을 거두고 있으며 플랜트 분야와 해외 사업 부문 등에서도 다각화를 구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낙관적인 전망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현대산업개발 측은 “내년부터는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는 견해를 내세우고 있지만 업계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와 다소 다른 견해를 내놓는다. “현대산업개발의 적자 분위기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이다.
이에 대해 한 증권 애널리스트는 “현대산업개발이 신규 분양 사업장 매출을 통한 수익성 개선까지 이어지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며 “흑자전환은 2014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밖에도 현대산업개발에게 닥친 시련은 더 있다. 국내 대형 건설사들이 4대강 사업의 전초전으로 알려진 경인운하사업에서 국내 주요 건설기업들이 수천억 원대의 부당이득을 챙긴 정황이 드러났는데 바로 여기에 현대산업개발도 연루됐다.
현재 연루된 대형 건설사들은 입찰담합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 조사 결과에 따라 과징금 부과 등 강도 높은 처벌의 가능성도 있어 가뜩이나 매출 손실 때문에 우울한 현대산업개발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또한 지난 11월 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민주당 문병호 의원이 수자원공사로부터 제출받은 ‘경인 아라뱃길 공구별 총 도급액 대비 하도급액 비율’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은 5공구 공사를 1,618억 원에 낙찰 받아 이 가운데 840억 원을 챙겼으며 전체 금액의 50.39%인 814억 원을 실하도급으로 지급한 것으로 드러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