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예술 진흥발전에 헌신하는 춤꾼
30년 넘게 외길 인생을 걸어 온 한국 전통무용의 기수 이정민 명무. 보통 한국무용이라고 하면 버선발로 종종거리는 여성스러운 춤을 연상하기 쉬우나, 이씨의 춤은 다르다. 이씨는 반야심경이 적힌 천을 흩뿌리며 살풀이를 추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다. 여성스러운 동시에 호쾌하고 기개가 높은 이 춤의 제목은 '반야심경 살풀이춤'.
호국불교 종정 큰스님이 친필로 써 준 불가의 대경전 ‘반야심경’을 들고 나라 안정과 평화 통일을 기원하는 기원무를 악사들의 연주와 명창들의 구음에 조화를 이루어 성심으로 펼친다. 역대 무용가 중 최초로 부처님의 경전인 반야심경을 들고 춤을 추는 이씨는 사실 늦은 나이에 무용계에 입문했다. 서른 살 때 우연히 들른 무용학원에서 원생들의 춤사위에 반해 춤을 배우기 시작한 것.
그는 민속악극회 남사당과 송파산대놀이 보존회를 수료했고, 문화재 제1호 김천흥 선생과 문화재 제 5호 조상현 선생으로부터 춘향가를 사사 받고, 정철호 선생에게 고수북 사사, 문화재 69호인 이동안 선생에게 바라무 사사 등 여러 권위자들로부터 두루 교육받은 무용계의 엘리트. 훌륭한 스승들에게 사사받은 그이지만, 우봉 이매방 선생과의 만남은 인생의 좌표를 돌려놓은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매방 선생은 호남예술의 거장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과 제27호 승무의 예능보유자인 한국 무용계의 거목. 그의 문하에 있으면서 완성한 춤이 이씨의 트레이드마크인 '반야심경 살풀이춤'이다. 어릴 때부터 춤이 좋아 동네에 있는 TV를 보면서 따라 추곤 했다는 이씨. “이매방 선생님 밑에 3년 동안 있었어요. 한번은 파고다 공원(지금의 ‘탑골공원’)에서 유관순 열사전을 하는데, 내가 추임새를 넣으며 소리를 하니 박송희 선생님이 보시고 인연이 닿게 되었죠.”
전통예술에 대한 젊은 층의 이해도가 낮은 것 같다고 운을 떼자 한마디 하는 이씨. “요즘은 옛날과 달리 공연 때 많이 와요. 전통예술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고 할 수 있죠. 청년들에게 우리의 원형을 잃지 말 것을 당부하고 싶어요.” 한국 춤의 맥이 무엇이냐 물으니 이씨의 대답, “한국 춤의 맥은 손짓이에요. 손의 높낮이와 섬세한 표현력으로 춤의 당락이 좌우된다고 할 수 있죠. 고운 태가 나도록 꾸준히 자기연마를 해야 해요. 전통무용은 단기간에 완성할 수 있는게 아니거든요. 세월이 쌓여야 표가 나요.”
그의 공연을 보러 오는 지인들에 대해 물으니 국악 평론가 ‘강신구’씨를 꼽는다. 또 5m나 하는 천부경 81자를 손수 써 준 화가 ‘동포 이상훈’씨에 대한 감사의 말도 잊지 않았다. “보렴승무를 하면서 양쪽에서 제자들이 춤을 추고 나는 가운데서 바라춤을 춰요. ‘해같이 번쩍이고 달같이 밝혀주고’라고 기원하면서.. 주로 불교행사를 많이 했는데, 조계사 대웅전에서 반야심경 살풀이춤을 췄어요. 그 때 범진 스님이 범패를 하고 소리는 이희완씨가 했죠. 삼각산 도선사에도 갔어요. 공연하러 안 다녀 본 데가 없을 정도에요.”
현재 ‘이정민 문화원’을 운영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이씨, “전통무용은 서른 넘어 시작해도 절대 늦지 않아요. 특히 여자의 경우, 나이가 들고 인생을 알수록 원숙한 깊이감이 생기기 때문에 유리하다고 할 수 있죠. 언제 시작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시작한 후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전통무용의 세계에 흠뻑 빠진 이정민 명무의 추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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