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1일부터 전기요금을 평균 5.4% 인상한 것을 두고 각계각층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해외 주요국들보다 상대적으로 요금 체계가 낮게 책정돼 있는 것은 물론, 전기 과소비를 줄이기 위해서도 요금인상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당장 시민들과 산업계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현재 겪고 있는 전력난 자체가 전력당국의 수요예측 실패와 원전 비리 등으로 촉발된 것인데, 이를 국민 부담으로 떠넘기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19일 산업통상자원부는 돌연 전기요금 인상 계획을 발표했다. 이틀 후인 21일부터 주택용은 2.7%, 산업용은 6.4% 등 평균 5.4%나 오른 가격으로 전기요금을 받겠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인상계획과 관련해 산자부는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능력 확보와 합리적인 소비를 유도하는 수요관리 중심으로 에너지 정책 방향을 전환해 에너지 가격 구조 합리화를 추진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미 지난 1월 전기요금이 평균 4% 인상됐었다는 데 있다. 10개월 사이 무려 10% 가까이 오르게 된 것으로, 공공재인 전기요금의 잦은 인상과 높은 인상률에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처럼 5%대 이상 대폭 인상된 것은 지난 98년 이후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지난 2000년 이후 산업 전기요금은 무려 14차례에 걸쳐 78.2%나 올랐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처럼 전기요금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다보니, 소비자인 국민들의 불만이 들끓고 있다. 특히 지난여름 블랙아웃을 대비, 냉방수요를 줄이기 위해 범정부 차원에서 캠페인과 전력 과소비 단속 정책을 시행할 때도 다수의 시민들은 ‘정부의 잘못을 국민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며 불만을 쏟아냈던 바 있다. 이번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번 개편안이 전력소비가 많은 산업계에 확실한 영향을 미치기에는 미흡하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정부가 밝힌 개편안에 따른 전력수요 감축효과는 80만kW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는, 최대전력수요인 7652만kW에 비하면 1% 수준에 머무는 것이다. 결국 요금만 인상되고 전기사용 절약 효과는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울러, 이번 전기요금 인상에는 또 다른 숨은 의미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바로, 방만 경영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는 한전의 부채를 줄이겠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전은 무려 55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부채를 안고 있어, 최근에서야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강도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등 부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요금인상 뒷말 무성, “국민만 고통스럽다”
이번 전기요금 인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산업계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고압전력을 사용하는 철강업계 등 제조 공장의 경우, 이번 요금 인상에 따라 월 2919만 원가량 인상되는 폭탄을 맞게 됐다. 백화점의 경우도 매월 127만 원가량을 더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산업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상폭이 작기는 하지만, 살림살이가 여전히 팍팍한 2인 이상 일반도시가구의 경우도 월 평균 1310원정도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처럼 국민 부담은 늘어나지만, 정부가 걷게 되는 연간 세수는 무려 8300억 원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때문에도 정부가 부족한 세수를 채우기 위해 ‘전략사용량 절감’이라는 꼼수를 내세워 전기요금 인상을 추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정부는 늘어난 세수를 통해 저소득층 에너지 바우처 지급, 에너지 복지 강화, 에너지 효율 투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에너지 지원에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제는 그동안에도 정부가 전기나 가스요금을 인상할 때마다 바우처 제도 도입을 공언해왔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번번이 예산 문제 등을 이유로 실행되지는 못해왔다. 이번에도 공수표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편, 이처럼 미심쩍은 구석이 많은 정부의 전기요금 인상과 관련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19일 입장을 내고 강한 불만의 목소리를 냈다. 이와 관련해 이들은 “산업용 전기요금은 2000년 이후 14차례에 걸쳐 78.2%나 인상됐다”면서 “특히 금년 초 이상한 이후 또 다시 산업용 전기요금을 6.4%나 인상한 것은 산업계에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철강, 석유화학 등 전기사용 비중이 높은 기간산업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 산업과 밀접히 연계되어 있는 자동차, 조선 등 관련 산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산업용, 주택용 등 용도별 요금체계에 대한 논란이 많으므로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용도별 원가이익회수율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를 압박했다.
정치권에서도 민주당은 이번 전기요금 인상에 대해 강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와 관련, 박수현 원내대변인은 20일 현안 브리핑에서 “우리 국민들은 본격적인 겨울 한파를 앞두고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아닌 대낮에 전기료 폭탄세례를 받았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행복의 시대를 열겠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국민고통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박 대변인은 이어, “정부의 전기요금 인상은 수요예측의 실패와 원전비리로 인한 전력난을 국민들의 책임으로 떠넘기겠다는 발상”이라며 “에너지 가격구조 개선으로 전기절약을 유도하겠다는 것은 ‘지나가던 소도 웃을 견강부회’”라고 꼬집었다. 특히, 박 대변인은 “100조원이 넘는 한국전력과 발전사의 부채를 국민에게 떠넘기겠다는 것”이라며 한전의 부채 털기 요금인상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박 대변인은 정부를 향해 “올 겨울은 그 어느 해보다 추위가 매섭다고 하는데, 진정으로 민생을 돌보겠다면 전기요금 인상부터 철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