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섭 문화재청장 경질, 이유는 따로 있다?
변영섭 문화재청장 경질, 이유는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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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8개월 만에 숭례문 부실복원 문책성 인사 단행

변영섭 문화재청장이 지난 15일 전격 경질 됐다. 숭례문 부실 복구 등 문화재 보수사업 관리 부실 등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이다.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출신인 변 청장은 전문 미술사학자 출신으로 울산 반구대 암각화 보호 등에 남다른 열의를 보여왔지만, 문화재 관리 부실 문제가 불거지면서 결국 낙마하게 됐다. 취임 ‘8개월만에 경질’된 이유가 궁금하다.

▲ 변영섭 문화재청장이 숭례문 부실 복원 문제로 인해 취임 8개월만에 옷을 벗게 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변 전 청장이 단순히 숭례문 복원 문제 때문만으로 경질된 것은 아닐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뉴시스

지난 15일 문화재청 관계자에 따르면 청와대는 숭례문 부실 복구 책임을 물어 변영섭 문화재청장을 경질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문화재 보존과 관련해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 엄벌을 지시한 지 4일만이다. 숭례문 부실 복구 논란에 결국 문책성 인사가 단행된 것이다.

변 청장의 경질 이미 예견된 일?
 국보 1호 숭례문은 지난 5년간 복구사업을 거친 끝에 올해 5월 준공됐다. 그러나 10월 숭례문 단청이 벗겨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부실 복구’ 논란이 일었다. 문화재청은 숭례문 종합 점검단을 구성하고 대국민 사과를 했으나 결국 청와대는 변 청장을 경질하기로 결정했고, 변 청장은 이날 경질 통보를 받고 나서 곧바로 대전 문화재청을 들러 사직서를 제출한 뒤 별도의 퇴임식 없이 떠났다.

하지만 변 전 청장의 경질은 이미 예견 된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변 전 청장이 재임하는 동안 국보 1호 숭례문의 훼손과 관리 소홀 문제가 도마에 오르면서 문화재 행정 전반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달 국정감사장에서 여야 의원들의 관련 지적이 잇따랐고, 지난 11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유럽 순방에서 돌아오자마자 숭례문 부실 복구 등 문화재 보수사업에 대한 부실 논란을 철저히 조사하고 책임 소재를 엄중히 묻도록 지시하면서 변 청장의 경질은 기정사실화 됐다.

여기에 변 전 청장은 취임 직후 사연댐 수위를 낮추는 방식으로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추진하려다가 좌절했는가 하면,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의 미국 대여 전시를 반대하다가 결국은 내보내야 했다.

최근에는 국보 1호 숭례문 복구 부실 논란과 관련해 이에 적극 대처하기보다는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면서 논란을 더욱 키웠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변 전 청장은 이와 같은 일련의 논란 과정에서 문화체육관광부나 국무총리실 등 다른 정부 부처와도 대립각을 세우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였다. 이에 따라 총리실은 변 전 청장 체제로는 산적한 현안을 풀어내기는 힘들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방안 놓고 갈등 심화
사태가 이쯤에 이르자 변 전 청장을 왜 전격 경질 했느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숭례문은 이명박 대통령 취임 초인 지난 2008년 2월 10일 방화 사건으로 불타 무너져 내린 뒤 5년여의 복구 작업 끝에 올해 5월 4일 준공됐다. 하지만 준공 뒤 한 달이 채 되기도 전에 단청이 훼손된 것이 발견되는 등 부실공사 논란이 일었다.

2008년 숭례문이 불탄 뒤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물러나고 이명박 정부에서 이건무, 최광식, 김찬 청장을 거치면서 북구공사가 진행됐다. 이 때문에 올해 3월 15일 임명된 변영섭 청장에게 숭례문 부실공사 책임을 묻는 것은 뭔가 석연치 않다는 의문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변 청장이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 보존 방법을 두고 울산시의 토목 공사안을 반대하며 댐수위 조절안을 고수해온 점, 변 청장의 소신과 맞지 않는 카이네틱댐 설치의 합의 등에 따른 갈등이 이번 경질의 주요인이 아닌가 하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변 전 청장이 청장으로 발탁된 배경은 10년 동안 반구대 암각화 보존운동에 투신한 경력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박 대통령도 자맥질하는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변 전 청장 또한 취임 직후 반구대암각화(보물 제285호) 보호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반구대 해결에 총력을 쏟기 시작해 관련 TF를 꾸리는가 하면 ‘급조’라는 비판까지 들으면서 관련 특별전도 밀어붙여 성사시켰다. 지난 3월 18일 취임 당시 변 전 청장이 ‘살아 숨 쉬는 문화유산과 행복한 시대’를 강조한 것처럼 문화재에 대해 남다른 의지를 담고 있었다.

그러기에 댐건설로 인하여 물에 잠기게 된 반구대암각화를 보호하기 위해 그동안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런 그를 두고 문화유산계 안팎에서는 ‘반구대 청장’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변 전 청장의 의지와는 달리 이 과정에 적지 않은 혼선이 빚어졌다. 예산과 인력, 그리고 관련 기관과의 협력 체계 등 조건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가운데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문화재청과 변 전 청장으로서는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반구대 정책의 가닥이 잡혔다.

변 전 청장은 암각화가 자맥질하는 원인인 사연댐의 수위를 낮추어 보존하자고 했지만, 울산시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혀 결국은 문화재청으로서는 굴욕에 가까운 ‘카이네틱 댐’이라는 임시 차수벽 형태의 보존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석굴암 균열과 부실 논란이 경질 결정타?

▲ 변영섭 전 청장은 숭례문 부실 복원 논란을 비롯한 각종 문화재 관리 등과 관련된 문제제기에 소극적으로 대처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에 더해 정부 관련 부처들과도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뉴시스
여기에 변 전 청장은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 해외 대여 문제로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잦은 해외반출 등을 이유로 반출을 반대했지만 결국 문화부가 나서 내보내야만 했다. 이러는 와중에 숭례문 복구 부실 논란은 그의 경질을 부른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숭례문은 지난 5월4일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성공적인 복구 완공을 알렸다.

하지만 이내 단청이 훼손된 것으로 드러나고, 최근에는 여러 가지 추가 부실 논란이 제기되면서 변 전 청장에 대한 책임이 고개를 들었다. 사실 숭례문 복구 부실 논란에 대해선 전임 이명박 정부에서 복구 공정 대부분을 추진한 까닭에 변 전 청장이 맡은 일은 복구 완공을 알리는 일뿐이었다. 따라서 변 전 청장이 책임질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숭례문을 중심으로 한 각종 문화재 관리 부실 논란이 연이어 제기됐음에도 문화재청에서는 이러한 논란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의구심을 자아냈다.

통상 어느 정부 부처나 민간기관에서도 그들과 관련한 각종 외부 논란이 제기되면 그것을 인정하고 수습책을 내놓거나, 틀린 내용에는 아니라고 적극 대응하고 나선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문화재청은 이런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컨대 숭례문 기와가 동파할 가능성이 있다는 외부 주장에도 문화재청은 가타부타 대응을 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 제기된 석굴암 균열 발생과 부실 논란은 변 전 청장이 물러날 수밖에 없는 결정타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균열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석굴암의 안전성이 심대하게 위협을 받는다고 했지만, 실제 현지조사 결과는 많이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재청 역사 반세기 만의 첫 여성 청장

털털한 성격이지만 집중력이 대단한 것으로 알려진 변 전 청장은 이화여대 사학과 박사 출신으로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문화재관리국 시절을 포함해 문화재청 역사 반세기 만에 한국 문화재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에 올랐다.

변 전 청장은 서울여대 강사를 거쳐 1991년 고려대 교수로 임용되면서 20년 이상 강단에 섰다. 이후 1993년 한국미술사학교육연구회장과 국내 미술사학회 최대 학술단체로 꼽히는 한국미술사학회장을 지냈다. 그는 강세황이 대표하는 조선후기 사대부 문인화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 그의 학술논문이나 저서는 대부분 이와 관련되며, 실제 수업시간에도 학생들에게 “문인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쳐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변 전 청장은 충북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 서울시 문화재위원회 위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등도 역임했다. 그의 문화재 이력에서 독특한 대목은 ‘자맥질하는 국보’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의 맹렬한 보호주의자라는 점이다. 특히 암각화 주변에 생태제방을 설치함으로써 암각화를 보호하자는 울산시 방침을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운동을 펼치면서 울산시와 갈등을 빚으며 울산 반구대 암각화 보존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등 문화재 보호와 관련해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이처럼 변 전 청장은 문화재 분야의 전문가로서 문화재관리국 시절을 포함해 문화재청 역사 반세기 만의 첫 여성 청장이 돼 주목을 받았으나, 숭례문 부실 복구 논란으로 중도 하차하게 됐다. 이번 경질로 변 전 청장은 역대 문화재청장 7명 중, 재임 7개월 만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영전한 최광식 장관에 이어 두 번째로 짧은 재임기간을 기록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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