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찬양 동영상이 우리에게 던진 질문
지난 7월 12일 민주노총 홈페이지(www.nodong.org) 열린마당에 지난 94년 사망한 북한 김일성 주석을 찬양하는 동영상이 게시돼 있어 논란을 야기했다. 열린마당은 인터넷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에 해당하는 코너. 코너의 성격상 자신의 자유로운 의견을 맘껏 성토할 수 있는 온라인 하이드 파크인 셈이다.
‘선군시대’라는 아이디를 갖고 있는 한 네티즌은 지난 7월 12일 오후 3시 19분에 민주노총 홈페이지의 열린마당에 ‘[플래시]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첨부된 파일을 실행해 다운받은 뒤 압축을 풀면 김 주석의 일대기를 담은 3분 짜리 만화 영상과 함께 김 주석을 찬양하는 합창곡이 함께 흐른다. 또한 김일성의 어린 시절부터 빨치산 활동, 정권장악 후 활동, 사망 후 북한 주민들이 애도하는 장면 등 김일성의 일대기를 보여주는 동영상이 나온 것이다.
이 밖에도 민주노총 게시판에는 지난 7월 8일에는‘구국전선 편집국’이 올린 ‘김일성 주석님 서거 9돌 특집’이라는 게시물도 발견됐다.
게시물은 곧 화제에 올랐고 게시물의 조회수는 급증했다. 물론 게시물 리플에는 반대의견이 만만치 않았다.‘민주노총은 공산활동의 전위대인가’,‘(글을) 올린 건 간첩이라 해도 운영자는 왜 안 지우나’ 등 비난하는 의견이 빗발쳤으나 민주노총 관계자는 “자유게시판에는 익명으로 글을 얼마든지 올릴 수 있기 때문에‘선군시대’아이디를 갖고 있는 사람의 신원을 파악할 수 없다”면서 “자유게시판을 토론과 비판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광고 도배성 글을 제외하고는 삭제하지 않은 것이 운영원칙”이라 설명하며“당국에서 법적인 절차에 따라 삭제하라고 한다면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7월 16일 민주노총은 비난의견을 수렴, 자유게시판 열린마당을 잠정폐쇄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이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경찰청 보안부는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 받아‘선군시대’란 아이디의 게시자를 추적할 방침이며 이 게시자가 다른 인터넷 사이트에도 동영상을 올린 사실도 밝혀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 민주노총은 7월 24일 잠정폐쇄했던 열린마당을 동영상을 그대로 둔 채 운영을 재개키로 해 ‘사이버 색깔논쟁’이 재연되었다.
민주노총, 문화연대, 민변 등 총 55개 단체로 구성된 ‘인터넷국 가검열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24일 기자회견을 열어 “출범초기 인터넷의 자유로운 토론에 귀기울이겠다는 노무현 정부가 인터넷 검열에 나서는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북한 관련 자료를 구할 수 있고, 지난 5월 11일 여야의원 114명이 인터넷을 통한 대북 접촉 자유화를 골자로 한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에서 정보통신윤리위가 북한관련 게시물의 삭제를 요구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인터넷 공안탄압’”이라며 정보통신윤리위의 폐지를 요구했다. 특히 민주노총 관계자는“김일성과 관련된 동영상이 올려진 민주노총 인터넷 게시판을 이날 오후 다시 열겠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민주노총은 북한 관련 동영상을 삭제하지 않은 채로 지난 15일 내부논의를 위해서 잠정적으로 폐쇄했던 '열린마당'의 운영을 재개했다.
이에 대해 보수단체인‘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조중근 사무처장은“남북이 여전히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상황에서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찬양을 허용하면 인터넷을 활용한 북한의 대남 심리전에 말려들게 된다”며 “민노총은 운영자로서 책임 있게 홈페이지를 관리해야 하며 정부도 북한문제 관련 인터넷 가이드라 인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북한은 아직도 실질적인 전쟁 상대인데도 불구하고 일부에서 인터넷을 해방구로 생각하며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이용, 정치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며 “현 정부의 개혁성향을 시험하는 수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라고 말했다. 결국 지난 7월 27일 찬반양론과 다양한 의견대립 끝에‘친북’논란을 일으켰던 김일성 찬양 동영상은 민주노총 홈페이지 게시판에 게시된 지 15일만에 삭제됐다.
이 사건을 지켜본 이들은 사건의 본 성질을 망각하고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김일성 부자 찬양 동영상’을 둘러싼 대립이 표현의 자유 논란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것. 일반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북한 지도자 찬양’에 대한 대책과 아직도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있는 이들의 존재의미는 사라지고 느닷없이 언론자유 논란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혼란스러운 우리 사회의 대북인식은 더 꼬일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의 7월 24일‘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존중한다’는 게시판 운영의 이유야 어떻든 북한 지도자를 찬양하는 동영상을 불특정 다수 국민이 계속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이적행위’를 한 셈이다. 물론 인터넷상의 언론자유도 보장되어야 하나 그런 자유의 이전 우리 사회가 유지하고 있는‘선’을 지켜야 한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달라고 요구하기 전에 우리 사회가 문제의 동영상을 용납할 수 있는지 여부부터 따져봐야 한다.
물론 남북한의 평화공존이 절실한 상황에서 맹목적이고 근거 없는 반북(反北)행위는 경계해야 하지만 이유 없는 친북 또한 곤란하다. 시대착오적인 권력세습을 하면서도 주민을 굶주리게 하는 북한 지도자들에 대한‘찬양’은 사상의 자유에 앞서 기본적인 인권에 관한 생각이 있는지 묻고 싶게 한다.
남북은 여전히 불안한 분단 상태에 있다.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단지‘휴전’일 뿐.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사상표현의 자유’가 아닌‘사상표현의 이유’가 아닐까.
글/ 남정민 기자 njm8309@sisa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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