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강행할 뜻을 밝히고 있는 가운데, 야당의 강한 반발로 여야 대치정국이 격화되고 있다. 유흥업소 등에서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한 의혹이 있는 문 후보자의 임명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민주당은 지난 25일 문 후보자를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정국이 오히려 더 꼬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만 바라보고 있는 위기의 남자 문형표 후보자가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후폭풍은 거셀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문형표 후보자는 한국개발원(KDI) 연구원 출신으로 중량감이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특별한 하자는 없어 보였다. 청와대가 처음 문 후보자를 지명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랬었다.
민주당 “법인카드 사적유용 문 후보 사퇴해야”
하지만 청문회 국면이 시작되자 이런 저런 문제들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요 며칠사이에는 청문회 자리에 앉았던 3명의 고위공직후보자 가운데 가장 ‘약한 고리’가 돼 야당의 거센 사퇴압박을 받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법인카드의 사적 유용이다. 민주당은 김진태-황찬현-문형표 세 후보자 모두 문제지만 특히 문 후보가 문제라며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문 후보가 사퇴하지 않으면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 투표에 응하지 않는다는 ‘연계’ 전략까지 꺼내들었다.
이어 민주당은 지난달 25일 문 후보자를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민주당은 “문 후보자는 그동안 인사청문회와 여러 언론보도를 통해 KDI(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정보센터 소장 재직 시절인 2009년 2차례나 여성 유흥 접객원 고용 행위가 적발돼 영업 정지를 받은 유흥업소에서 법인카드로 결제한 바 있다”며 “더욱이 이 업소는 미성년자를 고용하다 적발된 업소이기도 하다”고 고발 이유를 설명했다.
문 후보자의 사적·불법적인 법인카드 사용은 장관 자격 상실에 해당한다고 민주당은 주장하고 있다. 인사청문회 때 문 후보는 법인카드 사용이 사적으로 사용한 것이 밝혀지면 사퇴하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그러기에 민주당은 문 후보를 향해 “더 이상 청와대의 눈치만 볼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퇴하는 길만이 국민에게 사죄하고 국정 운영에 부담을 주지 않는 길”이라며 “더 이상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기를 경고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13일에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여야 간사는 문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마친 뒤 청문보고서 채택을 위한 협의를 시작했으나, 야당이 문 후보자의 자질과 도덕성을 문제 삼아 보고서 채택을 합의하지 못했다. 결국 문 후보자의 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 된 것이다.
야당 간사인 이목희 민주당 의원은 이날 “문 후보자는 보건복지 전반에 걸쳐 개정할 의지를 보여주지 못했으며 시장주의적 관점을 갖고 있어 복지정책을 다룰 만한 사람이 못 된다”며 “자질과 역량, 시대정신, 도덕성 문제에서 부적절하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또 민주당은 24일 문 후보자의 즉각 사퇴를 거듭 촉구했다. 박용진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에서 “법인카드 유용 문제가 드러나면 자진사퇴한다고 큰소리 쳤던 문 후보자가 미성년자 접대부 고용업소에서 법인카드를 썼으니 후안무치도 이 정도면 유구무언 수준”이라며 “사퇴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졌다”고 주장했다.
박 대변인은 “야당의 반대를 잔소리로 치부, 임명을 강행하려 했던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또 한번 인사참사를 겪을 뻔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도 버틴다면 문 후보자는 파렴치한 사람이고 임명을 강행한다면 박 대통령은 국민과 맞서는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정호준 원내대변인도 박 대통령을 향해 “야당의 견해를 묵살하고 속전속결로 임명을 강행하겠다는 의미다. 국회 인사청문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맹비난했다. 정 대변인은 문 후보자에 대해 “장관으로서의 도덕성이나 자질에서 부적격자임이 이미 드러났다”며 “복지확대라는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인물이라는 것도 이미 다 밝혀졌다. 아무리 봐도 부적격자인 이런 후보자에게 나라의 복지 열쇠를 맡겨야 하겠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문형표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하면서 야당에 협력을 요구할 자격은 없다. 향후 어떤 일이 벌어지든 대통령이 자초한 결과라는 점을 미리 경고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형표 “유흥업소 아닌 일반 레스토랑이었다”
이에 대해 문 후보자는 “기사에서 인용한 업소는 유흥업소가 아닌 일반 레스토랑이었고, 연구진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문 후보는 “당시 유흥접객원은 없었고 문제가 될 부분은 전혀 없었다”며 “그 업소가 유흥접객원 고용 행위가 적발됐는지는 알 수 없었으며 해당 업소가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시기도 정상적인 카드사용 이후의 일”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함께 식사한 연구진 중에는 여성연구원도 포함돼 있었다”며 ‘서양음식-레스토랑’으로 업종 분류된 이 업소의 비씨카드 가맹점 등록정보를 공개했다. 그러나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같은 날 오전 국회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문 후보자의 법인카드 사적인 용도 사용으로 의심되는 유흥업소의 사진을 보이며 사퇴를 거듭 촉구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민주당 등 야당이 경미한 사안에 대해 의혹을 지나치게 부풀리고 있다고 문 후보자를 엄호하고 나섰다. 문 후보자의 장관직 수행 능력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 새누리당의 입장이다.
김태흠 원내대변인은 지난달 24일 여의도 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 언론에서 문 후보자가 (법인카드 사용이 금지된) 유흥업소에서 카드를 사용한 내역이 있다고 했는데 허위라는 얘기가 있다”면서 “해당 장소는 레스토랑이며 같이 갔던 KDI 여성 책임연구원도 있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변인은 “민주당이 사퇴를 요구하며 내세운 부분은 사실이 아닌 이러한 내용도 포함돼 부풀려져 있다”면서 “동석했던 여성 책임연구원이 내용을 밝힐 예정으로 안다”고 밝혔다.
정홍원 국무총리도 문 후보 살리기에 가세했다. 정 총리는 지난 25일 “(문 후보자)임명을 취소할 정도의 흠결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임명강행 방침을 밝혔다. 정 총리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문 후보자의 임명에 대해 “청문회 과정에서 문 후보자에 대해 야당이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어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야당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박 대통령이 야당의 반발을 무릅쓰고 문 후보자를 ‘서둘러’ 임명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복지부장관의 공백이 더는 길어져서는 안 된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전날 국무회의에서 기초연금법안이 통과하면서 기초연금에 대한 국회의 논의가 본격화되는 만큼 서둘러 장관 공백을 메워 국회 논의에 대비해야 한다는 게 박 대통령의 생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문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강행할 뜻이 알려지면서 여야 대치정국이 격화되고 정국이 오히려 더 꼬여가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 ‘연금 전문가’
지난 1998년에는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 사회복지 행정관으로 근무한 문 후보자는 2004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출범시킨 당내 연금 전문가 태스크포스에 들어가 ‘박근혜표’ 복지 및 연금 제도의 밑그림을 그리는데 참여했다. 올해 5월부터 대통령자문 국민경제자문회의 민생경제분과 민간위원, 국세청 국세행정개혁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돼 활동하는 등 행정 경험을 가지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89년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재정 연구를 해온 재정·복지 전문가로 통하는 그는 연구 분야에서 특유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재정·보건 분야에서 전문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로 공공경제학과 사회보험 등의 분야에서 연구에 매진해왔다.
구체적으로는 공적연금의 재정적 고찰 및 개선과제, 복지지출 수준의 평가와 전망, 공무원연금제도의 개선방안 등을 주제로 깊이 있는 연구 결과를 다수 발표했다.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장을 맡아 국민연금 장기 재정 추계를 바탕으로 제도 개선 방향을 지휘해온 만큼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사퇴로 논란에 휩싸인 기초연금 입법화를 마무리할 적임자로 평가되고 있다. 최근엔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연계안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혀 주목을 받았다.
문 후보자는 그동안 “우리나라의 급격한 고령화가 재정에 큰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우리나라 복지 지출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보다 낮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를 복지 선진국인 유럽 등과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국가 성숙도에 맞춰 복지 지출을 달리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을 하루빨리 개혁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KDI 관계자는 “연금 분야에 몰두한 분으로, 조용한 성격이지만 고령화 관련 종합연구 등 대형 프로젝트를 무난히 이끄는 등 추진력이 뛰어나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