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태 검찰총장이 취임함에 따라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개인정보 유출사건을 어떻게 처리할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이 채 전 총장의 ‘혼외자녀’ 의혹과 관련, 개인정보가 무단 조회·유출되는 과정에 청와대 행정관이 연루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채 전 총장을 둘러싼 의혹이 전면에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핵심은 고위공직자에게 혼외아들이 있었다는 것으로 희석될 수 없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국가기관이 불법사찰이나 공작이 있었다면, 이는 국정원의 선거개입 의혹만큼이나 엄중하게 다스려야 할 불법행위라는 것이다. 따라서 김진태 신임 검찰총장의 채동욱 사건을 처리가 향후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을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진태 “정치적 중립 어떠한 시비도 불식시키겠다”
검찰, 채동욱 개인정보 유출에 靑 개입 정황 포착
청와대 행정관 “채군 정보 확인해줘 고맙다” 문자
지난 2일 김진태 검찰총장은 취임식을 갖고 ‘정치적 중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총장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어떠한 시비도 불식시키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다져달라”며 “저 자신부터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다”고 일갈한 것이다.
과연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김진태 검찰총장은 채 전 총장 개인정보 무단 조회·유출사건에 청와대가 개입됐다는 의혹을 투명하게 규명해야 하는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현재 검찰은 지난 2일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행정관이 서울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장 조모씨에게 채 전 총장의 혼외자로 지목된 채모군의 가족관계등록부 조회를 부탁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하지만 채 총장과 업무관련성이 없는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행정관도 또 다른 누군가의 부탁이나 지시 등에 따랐을 것이라는 의혹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채동욱 총장 사건의 재구성
국가정보원의 지난 대선개입 수사를 진두지휘하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지난 9월 조선일보가 혼외아들 의혹 보도로 중도하차하게 된다.
조선일보가 혼외아들 의혹을 제기하면서 근거로 내세운 임모 여인의 가족관계등록부와 임 여인의 아들 채모 군의 학적부, 출국날짜 등은 언론사가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개인정보다. 이에 따라 정치권을 비롯한 각계에서는 배후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해 왔다.
이에 지난 9월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시민단체들이 곽상도 청와대 전 민정수석과 조선일보 기자 2명을 개인정보 유출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검찰수사가 시작됐다.
검찰은 대법원 전산망 로그기록을 통해 지난 6월 서초구청에서 채모군의 가족관계부를 조회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이후 김 모 서초구청 가족관계등록팀장을 소환해 조이제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장이 당시 채군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가져와 가족관계등록부 조회를 지시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그렇다면 문제의 인물로 지목된 서초구청 조이제 행정지원국장은 누구일까? 조 국장은 서울시 공무원 출신이다. 조 국장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과 서울시 행정1부시장 시절 함께 근무하며 친분을 쌓았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조 국장은 지난 2009년 2월 원세훈 전 원장이 국정원장으로 취임한 뒤 그해 3월 국정원에 파견돼 6개월간 근무한 경력이 있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국정원의 청탁 의혹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조 국장은 지난달 27일 검찰 진술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다른 권력기관의 요청에 따른 것이 아니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후 조 국장은 “국정원 직원인지 여부는 알 수 없다”고 말을 바꿨다.
그러던 중, 검찰은 지난 2일 서울 서초구청 조이제 행정지원국장에게 채 전 총장의 혼외자로 지목된 채모 군의 가족관계등록부 조회를 부탁한 인물이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소속 조모 행정관이라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청와대 시설과 예산을 관리하는 조 행정관이 직무와 관련도 없는 채군의 가족관계를 알려고 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드러나는 청와대 개입 정황
검찰에 따르면, 청와대 조 행정관은 지난 6월11일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서초구청 조 국장에게 채 군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본적을 알려주면서 해당 정보가 정확한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조 행정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문고리 권력 3인방’ 중 한 명인 이재만 총무비서관 밑에서 일하고 있다. 이재만 비서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1998년 4월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로 들어올 때부터 15년 동안 비서로 곁을 지키고 있다.
청와대 조 행정관은 청와대 시설 관리 등의 업무를 맡고 있어 채군의 개인정보를 파악할 개인적인 이유가 없어 보인다. 청와대 조 행정관 역시 누군가의 지시나 부탁을 받고, 서초구청의 조 국장에게 채군의 개인정보 조회를 부탁했을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 조 행정관은 이와 관련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서초구청 조 국장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검찰 조사에서 6월 11일 모두 4차례 조 행정관과 문자를 주고받은 내역이 나온다. 6월 13일에도 조 행정관과 문자를 주고받았다”며 “(청와대 조 행정관이 채군의) 주민등록번호·이름·본적을 보내줬고 옳은 정보인지 확인해 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서초구청 조 국장은 또 “서로 문자를 주고받은 기록과 그 기간에 가족관계등록부를 조회한 흔적이 있는데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서초구청 조 국장의 진술은 청와대 조 행정관의 개인정보 불법 유출에 개입한 적이 없다는 주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한겨레’는 보도했다.
아울러 주목해야 할 사실은 조 국장이 임 여인의 가족관계등록부를 열람한 날짜다. 청와대 조 행정관이 서울 서초구청 조 국장에게 채군의 가족관계등록부 조회를 부탁한 날짜는 지난 6월11일. 이 날은 채 전 총장이 원세훈(62) 전 국가정보원장 등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날이다.
더구나 이 날짜가 의미하는 것은 청와대가 지난 9월 채 전 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이 언론에 보도된 뒤에야 관련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고 주장과 배치된다는 사실이다.
지난 6월은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가 한창 진행 중에 있었던 때다. 따라서 누가 무슨 의도로 채 총장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지시했느냐가 그 사건의 핵심 의혹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불법이 동원된 사실과 압력이 있었다면 이 또한 명확히 파혜쳐야 한다.
검찰이 청와대 조 행정관의 배후에 대해 어디까지 수사망을 펼칠 수 있을지가 향후 정치 독립성을 가늠할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