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 개국 공신인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새누리당 탈당 의사를 밝혀 정치권 파장이 일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 대선 공약이었던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 등 핵심 공약들을 집대성한 바 있어, 그의 탈당 예고에 여권이 크게 술렁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의 탈당 배경이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 후퇴 등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개국 공신들의 탈박 행렬이 김종인 전 위원장에서 그칠 것이냐 하는 데 있다. 앞서 진영 전 보건복지부장관의 사례도 있어, 김 전 위원장의 뒤를 따라 개국 공신들이 하나둘 씩 탈박 행렬에 가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 여권 내 비박 세력이 목소리를 키우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당선 1주년을 맞이하는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그야말로 위기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 것이다. 이제 겨우 1년을 보내고 있을 뿐인데, 벌써부터 뒤뚱거리기 시작한 모습이다.

김종인 전 위원장의 탈당 소식은 지난 4일 MBN방송 보도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방송에 따르면, 김 전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 1주년인 오는 19일에 맞춰 탈당할 예정이다. 탈당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인데, 당선 1주년에 맞춰 탈당한다니 시사점이 더욱 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박근혜정부 1년 전반에 대해 부정 평가, 또는 김 전 위원장의 박 대통령 지지 철회로 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방송은 “김종인 전 위원장은 정쟁에 휘말려 실체 없이 떠도는 경제민주화에 염증을 느꼈다는 심경을 전해왔다”고 보도했다. 김 전 위원장은 “작년에 선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당원이 됐는데, 내가 당원이 되고 안 되고가 의미도 없다”며 “나중에 그때 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방송을 통해 알려진 김 전 위원장의 이 같은 탈당 의사 소식에 정치권과 언론은 집중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김 전 위원장도 방송에서는 직접적 탈당 배경을 설명하지 않았지만, 이후 언론의 취재에 보다 분명한 입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김 전 위원장은 5일 문화일보와 통화에서 “박 대통령이 당선된 지 1년 정도 지났으면 이제 새누리당에서 나와 내 자리로 돌아가는 게 맞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직접적인 탈당 배경에 대해 “나는 정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며 “박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이후 새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본인 스스로가 헷갈려하는 것 같다”고 아쉬운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김 전 위원장은 덧붙여 “사람이란 시간이 갈수록 변할 수도 있고 박 대통령도 선거 때 생각과 집권 후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며 “결국엔 박 대통령도 시대의 흐름인 경제민주화의 길을 걸으며 제자리를 찾아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탈당 이유가 경제민주화 공약 후퇴 때문이라는 점을 사실상 명확히 밝힌 것이다.
문화일보에 따르면, 김 전 위원장의 한 지인은 “김 전 위원장이 사석에서 박 대통령의 변한 모습에 많이 낙심하며 탈당을 수차례 언급한 바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대통령 후보 시절 경제민주화와 복지 등 보다 진보적인 정책들을 수용하며 국민 통합의 정치를 펼칠 것만 같던 박 대통령이 지금은 달라졌다는 것이다.
김종인 위원장의 탈당 배경과 같은 이유는 아니지만, 앞서 박 대통령과 대선 경쟁을 펼쳤던 민주당 문재인 의원은 이런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지난 대선 때 저와 경쟁했던 박근혜 후보와 다른 분 같다”고. 물론, 문재인 의원 역시 최근 차기 대선 재도전 의사를 밝히면서 야권 내에서조차 비판대에 올라 있는 상황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김종인 전 위원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대선 후보시절과 대통령이 된 지금,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문재인 의원은 지난 대선 과정을 회고하며 “그때 박근혜 후보는 국민들의 뜻에 자신을 맞추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며 “대통령이 된 지금은 전혀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종인 전 위원장이 ‘경제민주화’ 후퇴를 문제로 지적했다면, 문 의원은 ‘공안통치’를 지적한 것이다. 이에 대해 문 의원은 “공안정치를 이끄는 무서운 대통령이 됐다. 박 대통령이 후보시절 강조했던 국민통합과 상생도 오히려 더 멀어졌다”며 “편 가르기와 정치보복이 횡행한다. 정치에서 품격이 사라졌다”고 날을 세웠다.
◆‘경제민주화’ 아듀?
여야 정치권은 김종인 전 위원장 탈당 문제를 놓고 그야말로 시끌시끌해졌다. 민주당 등 야권은 박근혜정부의 실정이 상징적으로 드러났다며 정권을 상대로 포화를 쏟아냈고, 당황한 새누리당은 떠나는 김 전 위원장의 등에 총을 쏘아댔다.
이와 관련, 민주당 배재정 대변인은 5일 현안논평을 통해 “박근혜 캠프 경제민주화 정책을 진두지휘했던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곧 탈당할 것이라는 언론보도가 있었다”며 “경제 민주화도, 국민행복도, 박근혜 대통령 시대에는 어렵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허영일 부대변인도 논평에서 “김종인 전 위원장의 새누리당 탈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 파기를 의미한다”며 “김 전 위원장이 탈당을 결심한 것은 현 정부의 경제민주화 의지가 없다는 것을 최종 확인한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허 부대변인은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파기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경제민주화 공약’의 파기는 경제정책 총노선을 휴지통에 던져버렸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며 “대국민 사기극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특히, 허 부대변인은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경제민주화’ 공약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김종인 전 위원장을 토사구팽하고, 경제민주화 공약을 파기함으로써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대통령이 아니라, ‘소수 재벌’들의 대통령이 되었다”고 힐난했다.
정의당 천호선 대표 역시 이날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양보하고 타협하면서도 경제민주화를 어떤 수준에서든지 실현하고자 했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노력, 이제는 끝난 것 같다”며 “이제 더 이상 박근혜 정권에서 경제민주화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천 대표는 이어, “지난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게 되는 매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그런 공약들”이라며 “이제 복지공약을 줄줄이 포기하더니 경제민주화마저도 완전히 포기하는 것 같다. 이렇게 본다면 박근혜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이 거의 무너져 내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든다”고 지적했다.
천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지 이제 곧 1년이 된다”면서 “다시 한 번 1년 전의 자신이 TV 앞에서 국민 앞에서 했던 공약들을 돌이켜보고 그것을 얼마나 지키고 있는지 자성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새누리 “격려는 못해줄망정…”
야권의 이 같은 박근혜정부 비판과 달리, 새누리당은 김종인 전 위원장에 대한 아쉬움 섞인 비난을 가했다. 이에 대해 김근식 새누리당 수석부대변인은 논평에서 “김종인 전 의원이 정치적 신념이나 소신, 개인적인 상황에 따라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의사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김종인 전 의원은 노태우 정부 때 청와대 경제수석을 비롯해 국회의원 등을 거치고,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경제정책 공약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분으로서 보다 신중한 처신을 강조하고 싶다”고 꼬집었다.
김 부대변인은 이어, “김종인 전 의원은 새 정부 출범이후 경제민주화 공약 후퇴를 언급하며 비판적 입장을 보여 왔고 급기야 언론을 통해 조만간 탈당할 뜻을 내비쳤다고 한다”며 “새 정부는 출범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라안팎의 긴박한 상황 속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여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할 위치에 있는 김종인 전 의원이 새 정부에 대해 격려는 못할망정 의욕을 꺾는 일만큼은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민주당도 정략적인 행태를 중지해주기 바란다. 최종 결정되지도 않은 김종인 전 의원의 개인 거취 문제를 갖고 ‘특권경제’ ‘토사구팽’ 운운하는 것은 너무 요란스럽지 않냐”고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또, “개인의 정당 소속 여하에 따라 하루아침에 한 나라의 기조가 ‘민생-서민경제’에서 ‘재벌특권경제’로 바뀐다는 발상이 대체 가당키나 한 것이냐”고 야권을 향해 따져 물으며 “오랫동안 국회를 외면해온 민주당이 당장 해야 할 일은 새해예산안과 민생법안 처리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부대변인은 덧붙여 “지금은 갈등과 분열의 정치를 자제하고 국론을 결집해 나라안팎의 어려움을 슬기롭게 헤쳐나가야 할 시점”이라며 “정치권이든 개인이든, 민생과 국민을 우선하는 현명하고 신중한 처신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고 당부했다.
◆朴 떠나 安으로 갈까?
한편, 일각에서는 김 전 위원장이 과거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멘토였던 이유에서 새누리당을 탈당한 후, 안철수 신당에 합류하지 않겠냐는 관측도 제기하고 있다. 온건중도개혁성향에 경제민주화, 새 정치에 대한 의지 등 코드가 맞아 떨어진다는 이유도 중요하다.
하지만, 김종인 전 위원장은 이에 대해 “하늘이 깨져도 그리고 안 간다”는 입장을 못 박아 밝혔다. 이에 대해 김 전 위원장은 5일 종합편성채널인 채널A와 인터뷰에서 이 같은 입장을 밝히며 “우리나라 정당엔 두 지류가 있다. 그 두 당을 넘어서는 당이 될 수가 없다”고 덧붙여 말했다. 제3의 대안정당을 추구하는 안철수 신당의 성공 가능성조차 낮게 평가한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은 덧붙여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서운한 감정에서 탈당하려는 것이냐는 관측에 “전혀 그렇지 않다”며 새누리당에 입당했던 배경에 대해서도 “(대선 때) 선거에 참여해야 하니까 당헌당규상 당원이 돼야 한다고 해서 당원이 됐던 것이다. 내가 당원으로 활동도 하고 있지도 않다”고 박근혜 대통령과의 불화설 또는 토사구팽설 등에 대해 일축했다.
안철수 의원 역시 이날 오후 한 인터넷 매체와 만난 자리에서 김종인 전 위원장 신당 합류설과 관련해 “나도 오늘 언론을 통해서 봤다”며 사전 협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음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