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發 장성택 실각설, 사실일까?
국정원發 장성택 실각설,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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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국방부·국정원 엇박자…고개드는 ‘음모론’

국정원이 지난 3일, 북한의 2인자로 거론되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실각설을 국회 정보위 간사에게 전달했다. 언론들은 앞다퉈 장성택의 실각을 기정사실화하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통일부와 국방부는 국정원과 달리, 한발 물러선 입장을 보였다. 확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과 미국의 전문가들도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직 섣불리 판단하기 이르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국정원의 이번 발표가 어떤 의도를 갖고 사전에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은 ‘기획성 폭로’라는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 장성택의 실각설이 한반도 정세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그가 비교적 온건파로서 군부 강경파의 견제 역할을 하는 등 남북관계와 경제개혁 전반을 진두지휘해 온 북한의 실세이기 때문이다. ⓒYTN캡처

‘장성택 실각설’, 국정원·통일부·국방부 입장 제각각
김관진 “국정원 張실각설 발표, 사전통보 못받았다”
與, ‘장성택 실각설’ 앞세워 “국정원 기능 강화해야”


이번에도 국가정보원이 전면에 나섰다. 국정원은 지난 6월 여야가 국정원 댓글 국정조사에 합의한 직후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했던 것처럼 정국을 뒤흔들 수 있는 북한의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실각설로 논란의 전면에 나선 것이다.

국정원은 그동안 북한 관련 주요 정보를 공개할 때 통일부 등 관련 부처를 앞세워왔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국정원은 3일 오후 4시 30분~40분경 급작스레 여야 정보위 간사를 찾아와 대면 브리핑을 했다.국정원은 “최근 노동당 행정부 내 장성택의 핵심 측근들에 대한 공개처형 사실이 확인됐으며, 장성택도 실각했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을 국회 정보위 민주당 간사인 정청래 의원 등에게 보고했다.

이날은 여야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정원 개혁특위를 설치하기로 사실상 의견을 모으고 대책을 논의하던 중이었다.

오후 4시40분, 관련소식은 ‘와이티엔’ 을 통해 먼저 공개됐다. 언론사들의 확인요청이 이어지자 민주당 정보위 간사인 정청래 의원은 3일 오후 5시 5분 국회 정론관에서 국정원의 정보를 전달했다. 10분 후인 5시 15분께 국정원은 전 언론사 이메일을 통해 ‘질의 응답’ 형식으로 정리된 보도자료를 일괄 배포했다.

▲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긴급간담회에서 북한의 장성택 실각과 관련, “아직 실각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며 “실각 가능성은 농후하다”라고 말했다. ⓒ유용준 기자

장성택 실각설 오락가락

국정원이 제시한 장성택 실각 근거는 장성택의 측근인 노동당 행정부 리룡하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이 공개 처형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 무슨 이유로 장성택이 실각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후 언론은 북한의 장성택의 실각을 기정사실화하고 관련보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언론은 장성택의 실각으로 남북관계에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고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국정원이 장성택 실각설을 공개한 하루 뒤인 4일, 장성택 실각설에 대한 조심스런 반응이 정부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긴급간담회에 출석한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이날 “아직 실각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며 “실각 가능성은 농후하다”라고 말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도 이날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장성택의 실각 여부에 대해 “좀 더 상황을 예의 주시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통일부와 국방부의 이 같은 태도는 국가정보원이 장성택의 실각을 기정사실화한 발표에서 한발 물러선 모양새다. 우리나라의 중대한 안보 상황이 될 수 있는 북한 2인자의 실각과 관련된 정부의 메시지가 하루사이에 오락가락 하자 비판이 이어졌다.

민주당 김정현 부대변인은 5일 “국정원 말 대로면 북한의 권력지형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정도로 중대사태가 벌어졌는데 안보관련 회의 소집 하나 없다”며 “청와대와 국방부장관은 아무 일 없다며 태연히 예정된 일정을 수행하고 있으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모를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국정원을 겨냥해 “국정원이 직접 언론과 상대하면서 정보를 흘린다는 것은 정보관리업무의 기본 매뉴얼도 지키지 않는 것”이라며 “국정원이 정치적 의혹을 살만한 원인제공을 자초한 것이며 딴 생각을 갖고 의도적으로 흘렸다는 비난을 받아도 싸다”고 꼬집었다.

더구나 긴밀한 협조를 보여야 하는 유관기관이 국정원의 발표를 미리 인지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5일 국정원의 ‘장성택 실각설’ 발표를 사전에 인지했는지에 대해 “정보기관이 사실관계는 협의했지만, 그 발표는 사전에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국내정치는 국정원이 다한다”는 비난이 적절한 순간인 것이다.

국정원에 가해지는 비판에는 공개시점과 공개내용에 대한 비판도 포함되어 있다. 북한의 장성택 실각설의 진위여부를 포함하여 정보가 확실하지 않은 시점에서 서둘러 발표한 것은 아닌가라는 의혹이다.

우선 국정원의 공개시점과 공개 과정의 문제점을 별개로 하고 국정원이 밝힌 장성택 실각설의 진위에 대해서는 제대로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앞서 통일부와 국방부의 신중한 반응과 맥을 같이 하여 외국의 전문가들도 이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5일 국회 국방민위원회회의실에서 열린 북한동향관련 전체회의에서 국정원의 ‘장성택 실각설’ 발표를 사전에 인지했는지에 대해 “정보기관이 사실관계는 협의했지만, 그 발표는 사전에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유용준 기자

美·中, ‘장성택 실각’ 신중한 반응

미국 매체인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미국 해군분석센터(CNA) 켄 고스 국제관계국장은 4일 ‘장성택 실각설’에 대해 그 진위여부는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고스 국장은 “당장 내일이라도 북한 관영 언론에 장 부위원장이 건재하다거나 건강상의 이유로 물러났다는 보도가 나올 수도 있다”며 “북한 당국이 역정보를 흘려 북한 정권 내 권력투쟁 상황을 외부에 알리면서 불안감을 조성, 미국이나 중국의 대북 압박 수위를 낮추려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래리 닉쉬 박사도 미국 매체인 미국의 소리(VOA)에 “북한 정부의 움직임과 중국의 반응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배경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신중론을 폈다.

중국 매체들도 북한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실각설과 관련, “평양시내 분위기가 정상적이고 평온하다”며 관련 보도에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인민일보 산하 국제전문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는 4일 우리나라 언론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장 부위원장 실각설을 주요 소식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환구시보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고모인 김경희 노동당 비서의 위독설 보도 등에서 보듯 “한국언론의 북한 고위층 관련 소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무근으로 밝혀진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장성택 실각설’ 역시 아직은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환구시보는 또한 “이번 소식 역시 여러 단계를 걸친 것이어서 진위를 단정하기 어렵다”며 국정원 측이 외신 등에 사실 확인을 해주지 않고 있다는 전했다.

중국 경화시보(京華時報) 역시 이날 한국언론 보도를 인용해 장성택 실각설을 주요소식으로 보도했지만 “현재로서는 (사실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전했다.

한편, 중국 정부는 북한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실각설에 대해 “관련 내용을 알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4일 정례 브리핑에서 “관련 보도를 주시하고 있지만 알고 있는 것이 없다”고만 답했다.

그렇다면 북한의 장성택 실각설이 우리나라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정치권을 비롯한 전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일까?

장성택 실각, 남북관계 미칠 영향?

장성택의 실각설이 한반도 정세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그가 비교적 온건파로서 군부 강경파의 견제 역할을 하는 등 남북관계와 경제개혁 전반을 진두지휘해 온 북한의 실세이기 때문이다.

장성택의 실각이 사실이라면 북한의 정치 시스템 전반에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노동당 중심의 선당정치와 경제 변화를 강조하던 장성택이 실각했다면 군부가 전면에 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에 긴장의 파고를 높이는 작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국회 남북관계특별위원장인 민주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실각설이 사실이라면 군부 실세인 최룡해 총정치국장과의 권력투쟁에서 군부가 실질적으로 승리했다는 의미”라며 “만약 실각이 됐다면 김정은 체제를 군부가 장악함으로써 중국과 더 가까워지고 굉장히 강경체제로 들어서 남북관계도 더 긴장으로 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히 제한적일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김정은이 장성택을 실각시킨 것은 김정은 체제가 그만큼 공고화됐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남북관계에 별다른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 전문가들은 만약 장 부위원장이 실각이 사실이라면 김정은 지배체제가 안정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미국 터프츠대학 외교전문대학원 플레처스쿨의 이성윤 교수는 언론 매체 미국의 소리 VOA에 ‘장성택 실각설’과 관련, “김정은이 이번에 고모부를 숙청했다면, 김정은이 이미 집권을 확실히 했고,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미국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의 존 박 동북아 선임연구원도 미국 매체인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만일 장성택의 실각이 김정은 권력 공고화 과정의 완결판이라면 이는 김정은이 나이 든 후견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북한 정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현재 북한의 장성택 실각설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하지만 북한의 장성택 실각설에 확실한 영향은 다름 아닌 정치권의 국정원 개혁과 관련된 것에서 표출됐다.

국정원의 장성택 실각설이 대두되면서 새누리당은 국가안보를 내세워 국정원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속출하고 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국가안보가 위중하고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는 현 상황에서 국정원개혁특위는 국가 안위를 걱정하는 시민들의 우려에 귀 기울여야 한다”며 “혹여 정치관여를 막는다는 미명 아래 대공정보전의 수족을 끊어내 대공전선에 혼란과 약화를 가져오는 교각살우의 잘못을 저질러서는 결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경환 원내대표도 ‘장성택 실각설’을 거론한 뒤, “작금의 상황과 맞물려 국정원 개혁특위의 논의 방향에 대해 여러 우려의 목소리 나오고 있다”며 “특위 활동은 결코 국가안보에 저해가 되거나 대공수사가 축소되는 방향으로 가도록 해서는 안 될 것이고 그렇게 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국내 수사파트 폐지 불가 방침을 분명히 했다.

국정원의 이번 발표에 정치적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정치권의 국정원 개혁 논의에는 영향을 미친 것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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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3-12-07 13:10:27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