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간 현대엘리베이터는 말 그대로 다사다난한 나날을 보냈다. 잇달아 유상증자를 실시했고 2대주주인 쉰들러로부터 소송도 당했다. 어려움은 지난달 방점을 찍었다. 경제개혁연대로부터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등이 고발당하고 유상증자가 또다시 결정된데다 쉰들러와의 대립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매입을 재개하며 심상찮은 움직임까지 보였다. 더 큰 문제는 그때마다 현대상선 파생상품 계약이 지적된다는 점이다. 현대엘리베이터도 현대상선 실적부진 여파로 재무악화를 겪고 있는 가운데 외부와의 갈등까지 깊어지면서 우려가 쏟아진다.

‘쉰들러 리스크’ 유상증자 결정에 또 으르렁
현대상선 파생상품 계약으로 재무부담 가중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달 27일 2175억원 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한다고 공시했다. 운영자금 조달이 목적으로 실권주는 일반공모로 전환되는 방식이었다. 신규로 발행되는 주식은 600만주이며 예정 발행가는 3만6250원(액면가액 5000원·확정일 내년 2월3일)이다. 지난해 12월(826억원), 올해 6월(969억원)에 이어 1년 새 3번째 실시되는 유상증자였다. 업계에서는 현대엘리베이터가 내년 초 만기가 돌아오는 파생상품 계약손실을 해결하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봤다.
쉰들러도 이날 곧바로 보도자료를 내고 “또다시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유상증자 철회를 촉구했다.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상선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무리한 파생상품 계약으로 이미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며 “더 이상 2% 미만의 의결권을 가진 현정은 회장의 사익만을 위해 현대엘리베이터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고 이번 유상증자 결정과 관련 파생상품 계약을 지적했다.
이에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 2일 “쉰들러가 왜곡된 시선과 흠집내기를 통해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방해하고 있다”며 “최근 회사채 시장 경색으로 많은 회사들이 회사채를 차환 발행하지 못해 현금상환을 하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도) 올해 1800억원을 상환했고, 내년 1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가 도래하기 때문에 선제적인 자금확보를 위해 유상증자를 계획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현대엘리베이터는 쉰들러가 ‘승강기사업부 인수’를 위해 주주권을 악용하고 있다며 “2004년부터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그룹이 대규모 자금수요가 있을 때마다 자금지원을 빌미로 승강기사업부를 넘겨줄 것을 요구했다”고 폭로했다. 또 “쉰들러는 자신들이 문제를 제기한 상황이 일어날 때마다 기업가치 하락을 우려한다면서 오히려 지분을 늘렸다”며 “약 1년 만에 회사지분을 장내매수하기 시작한 이유에 대해서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쉰들러는 지난달 20일 5000주(1주당 5만1354원)를 매입한 바 있다.
업계에서 쉰들러의 이번 도발(?)을 심상치 않게 여기는 것도 이 ‘지분매입 재개’ 때문이다. 사실 이들은 2011년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를 상대로 ‘현대상선 파생상품 계약내용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회계장부열람등사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 후로 사사건건 부딪혀왔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가 유상증자를 추진하자 지난 3월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4월 신주발행유지청구 소송도 진행했다. 법원에서 현대엘리베이터의 손을 들어줘 유상증자는 진행됐지만 늦춰진 기간동안 주가가 하락해 발행규모는 계획보다 150억원 가량 줄어들었다.
지분매입 재개 등 정황을 감안할 때 이번 증자에서도 쉰들러가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은 높을 것으로 점쳐진다. 이에 따라 ‘쉰들러 리스크’가 악재로 작용해 현대엘리베이터 주가가 하락할 경우 자금조달 규모가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더군다나 현대엘리베이터 주가는 올해 계속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올초 13만1500원을 찍었다가 12월 5일 종가기준 4만8250원까지 떨어졌다. 주가하락에 따른 자금조달 규모 축소에 대한 우려가 더더욱 커지는 대목이다.
아울러 현대엘리베이터는 경제개혁연대로부터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경제개혁연대는 “현대엘리베이터는 현정은 회장의 경영권 유지 및 방어를 위해 엄청난 손실 부담에도 지속적으로 파생상품 계약을 체결·유지하고 있다”며 지난달 20일 현정은 회장 등 현대엘리베이터 경영진 7명을 신용공여 금지규정 위반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들도 현대상선 파생상품 계약을 문제로 지적한 것이다.
실제 현대엘리베이터는 올해 1~9월 7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음에도 파생상품 평가손실 영향을 받아 당기순손실이 1683억원에 달했다. 신용등급도 떨어졌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달 18일 현대엘리베이터 신용등급을 A(부정적)에서 A-(부정적)로 변경하며 “현대상선의 실적부진, 재무부담에 따라 그룹전반의 재무변동성이 커지면서 현대상선의 최대주주인 현대엘리베이터 신용도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
파생상품 계약이 뭐길래
그렇다면 끊임없이 지적되는 현대상선 파생상품 계약은 뭘까. 앞서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상선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현대상선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금융회사와 ‘우호세력이 돼주는 조건으로 연 6.15~7.15% 수익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파생상품 계약을 체결했었다. 만기 때 현대상선 주가가 금융회사의 주식 매입가보다 낮으면 현대엘리베이터가 차액을 보존해주겠다는 옵션도 붙였다. 즉 현대상선 주가가 하락할 경우 현대엘리베이터가 손실을 보전해주는 구조다.
문제는 현대상선 주가부진으로 현대엘리베이터 파생상품 평가손실이 막대하다는 점이다. 실제 올 상반기 현대엘리베이터의 파생상품 평가손실은 2161억원에 달한다. 현대상선 주가(종가기준)도 6월 28일 1만4102원에서 12월 5일 1만200원으로 떨어져 내년 만기 현대엘리베이터의 손실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여기다 향후 현대상선에 대한 현대엘리베이터의 추가지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대상선은 내년 회사채 4200억원, 기업어음(CP) 4000억원 등 총 8200억원 만기를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