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규탄과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을 요구한 시국선언을 발표한 이후, 한국 가톨릭을 대표하는 천주교 주교회의도 공식적으로 현 정부를 비판하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주교회의 정평위)는 지난 6일 제32회 인권주일· 제3회 사회교리 주간을 맞아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는 제목의 담화문을 통해 “신앙인은 하느님의 창조계획에 어긋나는 오늘의 상황을 더욱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고 밝혔다.
주교회의 정평회는 “올 한해 계속해서 논란이 되고 있는 국가권력의 불법적 선거개입과 이에 대한 은폐축소 시도는 인간의 존엄과 사회적 정치적 권리를 왜곡하고 훼손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며 “밀양 송전탑 건설 강행,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 강행 등 공권력의 과도하고 부당한 행동 역시 대단히 우려스러운 일이다”고 언급했다.
또 주교회의 정평회는 “국제연합(UN)의 세계인권선언이 규정하는 사회적 정치적 권리, 그리고 가톨릭교회의 보조성 원리가 뜻하는 핵심적인 내용은 바로 시민의 자유와 이를 위한 국가권력의 한계와 제한”이라며 “국가권력이 법률과 사회적 합의로 정한 한계를 넘어선다면, 권력은 그것 자체로 불법이며 시민의 기본적인 인권과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와 사회는 법률과 제도, 정책을 통해서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적절한 사회 경제적 복리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으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또한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 10위권의 경제 대국임에도 불구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심한 소득 불평등과 빈부격차를 보이고 있다”며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양극화와 광범위한 빈곤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재화가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정의롭고 인도적인 분배체계를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앞서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의 시국미사에 대해 지난달 25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지금 국내외의 혼란과 분열을 야기하는 행동들이 많다”면서 우회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바 있어 청와대와 현 정부에 비판적인 종교계와의 갈등은 더욱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