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우외환’ 시달리는 외국계 은행
‘내우외환’ 시달리는 외국계 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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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성 악화로 지점 폐쇄·인력 감축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한국씨티은행·HSBC은행 등 외국계 은행의 최근 사정이 심상치 않다. 실적과 영업이익이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국내 은행들에 비해 낮은 편이다. 이 때문에 각 외국계 은행은 고강도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으며 향후 노사 간 갈등도 잠재적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갈수록 입지가 줄어들고 있는 외국계 은행의 고민과 대책에 대해 알아본다.

외국계 은행 지점 폐쇄, 계열사 매각 전조?
수익성 악화로 구조조정 불가피…노조 긴장
전문가 "금융당국 규제와 영업력 부재 때문"

많은 전문가가 인정하듯, 올해 금융계는 유난히 혹독한 시절을 버텨나가고 있다. 저금리 및 저성장이라는 양대 치명타로 인해 금융과 관련된 모든 업종이 수익성 면에서 치명적인 국면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암울한 현실은 당분간 개선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 더욱 우려스럽다.

▲ 하영구 한국씨티은행 은행장 ⓒ뉴시스

지점 폐쇄·구조조정 돌입

이 때문에 은행은 물론 증권·보험 관련 기업은 현재 수익률 악화 때문에 전면적인 구조조정이라는 두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중에서도 특히 최악에 가까운 처지에 맞닥뜨린 업종은 바로 외국계 은행들이다.

외국계 은행이 여러 양상으로 맞닥뜨리고 있는 위기는 현재 구체적인 실체로 드러나고 있어 관련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외국계 은행 대부분은 현재 최근 영업점 축소 등 몸집 줄이기는 물론 머지않아 대규모 구조조정 및 계열사 매각이라는 특단의 조치가 단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강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에 대해 한 경제평론가는 “외국계 은행이라면 보통 스탠다드차타드은행·한국씨티은행 ·HSBC은행 등이 거론되는데 이들 은행 모두 최근에 드러나고 있는 동향이 심상치 않다”고 설명했다.

이 평론가는 “원래 실적이나 수익이 악화되면 곧바로 전격적인 수준의 조치에 돌입하는 게 외국계 기업이 지닌 주요한 특성인데, 이들 세 은행 역시 이와 같은 예상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한국씨티은행의 경우 지난 2012년 말부터 올해 9월 말까지 총 22개의 지점을 폐쇄한 것으로 알려졌다. 폐쇄 조치를 단행하기 전인 지난해 말만 해도 지점수가 218개였지만 현재는 196개까지 줄어들었다.

또한 한국씨티은행은 내년에도 영업지점을 추가적으로 폐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금융가에서는 파다하게 소문이 퍼져있다. 한국씨티은행 측은 소매금융 사업 규모를 가급적 최대한 줄일 것으로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시에 한국씨티은행은 앞으로 최상류층을 대상으로 프라이빗뱅킹 사업에 집중한다는 계획이어서 한국씨티은행을 휩쓸고 있는 구조조정의 한풍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수준의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곳으로는 단연 HSBC은행이 꼽히고 있다. HSBC은행은 지난 7월부터 아예 소매금융 사업을 중단하고 철수하기로 최종 공식 방침을 세웠다.

▲ HSBC은행은 지난 7월부터 소매금융 사업을 중단하고 철수하기로 최종 공식 방침을 세웠다. ⓒ 뉴시스

HSBC은행은 지난 2007년만 해도 국내 최초로 지점을 방문하지 않고도 온라인을 통해 가입하는 파격적인 금융상품인 ‘다이렉트 뱅킹’을 선보여 은행권으로부터 상당한 주목을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의욕적인 행보에도 불구하고 결국 부진을 극복하지 못한 채 퇴장하는 수순을 밟게 됐다.

이와 동시에 HSBC은행은 지난 10월에는 국내에서 영업하는 지점 11군데 가운데 본점을 제외한 10개 지점을 폐쇄하기 위한 예비인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금융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또한 개인금융 부문에 근무하는 직원 203명을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통해 감축하는 수순을 밝고 있다.

노사분규 ‘일촉즉발’ 가능성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역시 구조조정의 추세를 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전국 영업지점 350여 곳 가운데 약 30% 선인 100여개의 지점을 축소하기로 결정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측은 수익성 측면에서 부진을 쉽사리 면치 못하고 있는 SC저축은행과 SC캐피탈에 대해서도 전격 매각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향후 추이에 금융계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이렇게 외국계 은행들이 서로 약속이라도 한듯 일제히 구조조정 조치에 돌입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수익성 및 실적 악화 때문이다. 특히 올 3/4분기 외국계 은행의 실적은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경우 올 3/4분기에 무려 222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손실 규모가 이렇게 커지게 된 데에는 정기 세무조사에 따른 추징금 590억 원이 한꺼번에 반영됐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지난 2010년만 해도 3,438억 원의 순이익을 올렸지만 2011년에는 2,719억 원, 2012년에는 고작 241억 원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이익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은 올 3/4분기에 무려 222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 사진 : 시사포커스 DB

금융계에서는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은 그나마 올 상반기 1,292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해 작년보다는 다소 개선된 실적을 보이기는 했지만 수익성이 여전히 낮은 수준인 것은 분명하다”며 “이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는 불가피하게 구조조정에 돌입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씨티은행이 지난 3/4분기에 올린 당기순이익은 279억 원이다. 이와 같은 실적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대비하면 53.3%, 올해 2/4분기에 대비하면 53.4%나 줄어든 수치다. 실적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HSBC은행의 경우 지난 3/4분기의 당기순이익은 670억 원에 불과했다. 한국씨티은행의 경우보다는 나은 실적이지만 지난 2012년 3/4분기에 올린 당기순이익과 비교하면 56%나 줄어든 수치다.

문제는 이처럼 외국계 은행들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 방침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노사갈등이 비화될 우려가 높다는 점이다. 특히 올해 초 한 차례 노사 간 갈등을 첨예하게 겪은 바 있는 한국씨티은행이 그냥 보아 넘기기 힘든 전운이 감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추이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현재 한국씨티은행 노조는 회사 측의 구조조정 방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노조 측은 차기 노조위원장 선거가 마무리되는 대로 행동 조치를 마련하고 이에 따라 행동에 옮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씨티은행 노조 측은 “지난 9월부터 임금 및 복지 등 사안으로 사측과 협의에 들어간 상황”이라며 “협의 과정에서 합의점에 이르지 못할 경우 파업에 돌입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밝히고 싶다”라고 말했다.

“영업력 강화가 해결 방안”

일각에서는 “외국계 은행에 대한 금융당국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규제가 결과적으로 이들 은행의 수익성 악화를 초래해 구조조정으로 이어진 측면도 있는 게 사실”이라는 견해를 내놓기도 한다.

▲ 외국계 은행들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 방침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노사갈등이 비화될 우려가 높다 ⓒ뉴시스

다수의 외국계 은행 관계자는 “현재 한국에서는 진입 규제는 물론 신규 사업 추진을 어렵게 하는 불합리한 관행이 확실히 존재한다”며 “이 때문에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사업 부문을 줄이거나 최소화 하고 전망 있는 핵심 사업에 역량을 모으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고 강변했다.

이 같은 견해는 이들 외국계 은행 본사가 있는 해외 쪽에서 더욱 팽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영국 유수의 경제 전문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국에서 한국씨티은행을 비롯한 외국계 은행들이 고전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게재되기도 했다. 이 기사는 “대출 수요의 부진과 당국 규제 때문에 한국씨티은행 측이 사업 감축에 착수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향후 노조가 이에 반발해 파업에 돌입할 가능성도 예상되고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현재 우리나라에 진출한 외국계 은행이 국내 금융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업력이 약하고 적극성이 부족한 편이라 결국 수익성 악화라는 결과를 초래한 면도 없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이에 대해 한 금융 관계자는 “국내 리딩 뱅크의 경우 가히 처절하다 싶을 정도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객 확보를 위한 영업에 매진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반면 ‘글로벌 마인드’가 팽배한 외국계 은행은 아무래도 이와 같은 필사적인 ‘헝그리 정신’이 부족한 것 아니겠냐”고 비판했다.

한 경제평론가는 “HSBC은행은 예외로 하더라도 한국씨티은행은 물론 스탠다드차타드은행까지 ‘외국계 회사 마인드’에 익숙해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대단히 의외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이 평론가는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전신은 바로 제일은행이며 한국씨티은행의 전신은 한미은행이다. 비록 경영진이 바뀌고 구조가 완전히 바뀌었다고는 해도 ‘토종 은행’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이들 은행이, 국내 기업 영업 정서를 외면하고 돈 될 만한 사업에 역량을 모으는 것은 분명히 짚고 넘어갈 문제”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아무리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외국계 은행들의 실적은 여전히 우량한 편”이라며 “기업 및 최상류층에만 집중하는 관행을 개선하여 다양한 금융상품 도입과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일반 서민층도 공략하는 영업력을 확충하는 게 시급해 보인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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