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철도민영화 논란과 관련해 “현재와 같은 방식의 철도 민영화는 반대”라는 입장을 밝혔던 바 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국민적 의견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민영화를 추진하려 했고, 이 때문에 각계의 강력한 저항에 처했었다. 이를 지켜봐온 박근혜 후보로서는 대선을 앞두고 철도민영화에 찬성한다고 할 리 만무한 일이었다. 그래서 ‘국민적 공감대 없는 철도민영화 반대’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것이다.

기간산업 포기하는 국가, 결국 경제식민지 부른다
철도민영화 반대한다던 박근혜, 개나 줘버린 공약
4대강, 절대 대운하 아니라던 MB와 똑같은 ‘꼼수’
지난 10일, 코레일은 임시 이사회를 열어 수서발 KTX 자회사를 설립하기로 최종 의결했다. 야당과 코레일 노조, 시민사회단체들은 결국 KTX민영화의 수순을 밟게 된 결정이라며 맹렬히 반발했다. 하지만, 이날 최연혜 코레일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이로써 수서발 KTX 법인은 그동안의 민영화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코레일의 계열사로 출범하게 됐다”며 민영화 관측을 일축했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자회사와 경쟁하겠다는 코레일
지난 6일, 민주당 우원식 최고위원은 지도부 회의에서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 문제에 대해 “철도분할민영화의 서막이며, 명백한 대선공약 파기”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우 최고위원은 “여론을 의식해서 자회사에 대한 코레일의 지분을 늘리고 민간자본 투자를 차단하겠다고 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이라며 “이런 내용을 담은 정관은 이사회를 통해 바꿔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민영화를 통한 판도라의 상자가 언제든 열릴 준비가 돼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 최고위원은 코레일 측에서 내세우는 ‘경쟁력 강화’ 논리에 대해서도 “엉터리”라며 “코레일이 자신들이 출자한 자회사와 경쟁을 한다는 것인데, 이는 엄마와 아들이 나란히 가게를 차려놓고 같은 물건을 파는 꼴”이라고 반박했다.
코레일 측의 주장처럼 독과점 체제보다 시장경제 체제에 따른 경쟁이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데 유효한 방법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코레일이 지금 과도한 부채를 안고 있는 탓에 부담을 분담할 수도 있고, 경쟁을 통해 관련 산업의 발전은 물론 서비스 비용 인하 가능성도 기대해볼 여지가 생긴다.
문제는 이 같은 긍정적 효과들은 민영화의 초기 단계에서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우리보다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이 우수한 해외 자본이 코레일의 경쟁상대로 자리 잡게 된다면, 결국 기간산업인 철도산업은 머지않아 해외 자본에 잠식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현재 외국계 대형 SSM들이 골목상권을 사지로 내몰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경쟁력에서 밀리게 되면 자연히 국내 철도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해외 자본이 우리의 철도산업을 장악하게 될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이후, 시장을 장악한 기업이 곧 자금회수에 나서는 것은 냉혹한 시장경제의 원리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민영화 반대론자들이 목청을 높이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정부나 코레일 측은 자회사를 설립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영화와는 다르다는 설명이지만, 반대론자들은 더 이상 속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특히, 지난달 4일 박근혜 대통령은 프랑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프랑스 자본이 우리 철도산업에 유입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줘 논란이 일기도 했다. 사실상 철도민영화 수순인 WTO 정부조달협정을 국회 비준도 없이 쥐도 새도 모르게 일사천리로 처리해버린 것. 그리고 지금 수서발 KTX 자회사를 설립한다니, 민영화 플랜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이에 대한 성명에서 “수서발 KTX 별도 운영회사 설립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했던 KTX민간사업자 선정이 민영화 논란으로 국민적 반대에 부딪히자 우회적으로 민영화를 추진하기 위해 만든 꼼수에 불과하다”고 맹성토했다.
특히, 이들은 “철도민영화 추진은 4대강사업과 판박이”라며 “국토부는 4대강사업이 절대 대운하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대운하 위장사업으로 밝혀졌다. 마찬가지로 수서발 KTX 운영회사 설립도 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나중에 보면 민영화임이 드러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영화반대 노조에 휘몰아친 피바람
그런 가운데, 코레일은 ‘철도민영화 반대’ 파업에 참가한 직원들에 대해 무차별적인 직위해제를 강행하고 있어 이 또한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9일 파업 첫날에는 무려 4356명을 직위해제했고, 10일에는 1585명, 11일 807명, 12일 860명을 직위해제했다. 12일까지 파업 참여로 직위해제 조치를 당한 조합원은 노조 전임간부를 포함해 모두 7608명이나 됐다. 그야말로 무차별 직위해제, 칼부림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곳곳에서 철도민영화 반대 주장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12일 외스타인 아슬락센 국제운수노동조합(ITF) 철도분과 의장은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철도노조의 민영화 반대 투쟁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아슬락센 의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철도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고소 및 고발-징계를 철회하고, 철도노조와 대화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기자회견에 함께한 칼슨 링우드 영국 철도노조(RMT) 중앙집행위원은 “영국의 경우 철도 민영화가 요금 인상 등 부작용을 가져왔다”고 지적했고, 웨인 벗슨 뉴질랜드 철도노조(RMTU) 사무총장도 “뉴질랜드는 민영화했던 철도를 재국유화했다”면서 “정부는 철도를 매각할 때 받은 돈보다 2배 이상을 들여 다시 국유화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전국건설노조를 비롯한 수많은 단체들이 속속 철도민영화 반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철도노조의 파업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으며 “민영화는 대다수 국민들에게 요금폭탄과 안전하지 않은 서비스 제공을 안길 것”이라며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한편, 이처럼 정부의 ‘꼼수’를 지적하며 반대 여론이 들끓고 있는 상황에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2일 기자들과 만나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은 민영화를 위한 것이 아니다”며 “박근혜정부는 철도산업 민영화 의지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서 장관은 “노조에서 파업에 들어가며 앞으로 민영화 가능성에 대한 시발점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지만, 가능성이 없고 일어나지도 않은 사항을 파업의 대상으로 삼기에는 어렵다”고 거듭 해명했다. 하지만, 서 장관의 이 같은 입장은 반대론자들을 전혀 설득시키지 못하고 있다. ‘민영화 의지가 없었지만, 민영화가 불가피했다’는 변명이 될 공산이 큰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