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깊어 가는 ‘대선불복’ 정국
골 깊어 가는 ‘대선불복’ 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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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파워게임 양상으로 비화되나?

민주당 장하나 의원의 대통령 선거 불복 선언으로 정계가 술렁이고 있다. 청와대 및 여당의 격렬한 반발은 물론 민주당 내에서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또한 양승조 의원의 이른바 ‘박정희 전 대통령 전철을 밟지 말아야’ 발언과 이를 두고 불거져 나온 ‘문재인 배후설’ 또한 격렬한 정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대선 불복’ 이슈는 내년 상반기까지도 정국 핵심 사안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 민주당 장하나 의원과 양승조 최고위원이 잇따라 대선불복성 발언을 해 정치권 파문이 일고 있다. 두 의원은 못할 말 한 것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여권은 소속 의원 전원 명의로 제명안을 제출하는 등 분을 삯이지 못하고 있다. ⓒ뉴시스

대선 불복 논란의 불씨는 지난 12월 8일에 피어올랐다. 민주당 장하나 의원(비례대표 초선)이 ‘부정선거 수혜자 박근혜 대통령은 사퇴하라’는 제목의 개인 성명을 보도자료 형식으로 발표하면서다.

장하나-양승조 연이은 직격탄 발언
장하나 의원은 성명서에서 “부정선거의 수혜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사퇴하고 내년 6·4 지방선거와 같은 날에 대통령 보궐선거를 실시하자”고 주장했다. 그동안 부정선거 논란과 관련해 정의구현사제단 등 재야단체가 대통령 하야 등 강력한 내용을 담은 시국선언을 하는 경우는 자주 있었지만, 이처럼 현역 국회의원이 대선 불복 선언 및 박 대통령의 사퇴를 직접적으로 촉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음 날인 12월 9일 민주당 양승조 최고위원(3선)은 이날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사실을 언급하며 “박근혜 대통령도 선친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폭탄 발언을 했다.

이 자리에서 양 최고위원은 “박 전 대통령은 중앙정보부라는 무기로 공안 통치와 유신통치를 했지만 본인이 만든 무기에 의해 암살당하는 비극적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공을 날렸다.

이어 양승조 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의 교훈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는데 국가정보원을 무기로 신공안통치와 신유신통치로 박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경고를 새겨들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양승조 최고위원의 이 같은 발언 역시 정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특히 청와대에서 더욱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날 오후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대선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말하고 양승조 최고위원의 대통령 암살 가능성 발언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 발표가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정현 수석은 “지난 7월 홍익표 의원의 ‘귀태’ 발언 등 그동안 야당의 막말과 폭언이 한두 번도 아니었는데 오늘 양승조 의원이 대통령에 대해 암살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발언을 한 것은 언어 살인이며 국기문란이자 국가와 국민에 대한 모독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무서운 도전”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렇게 청와대의 강도 높은 비판에 뒤를 이어 여당인 새누리당은 ‘의원직 제명’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지난 10일 새누리당은 소속 의원 155명 전원 명의로 민주당 양승조·장하나 의원에 대한 의원직 제명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의원직 제명안을 대표 발의한 새누리당 김도읍 의원은 국회 브리핑에서 “양승조 최고위원은 엄중한 시기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암살을 선동하는 발언을 했으며, 장하나 의원이 보궐선거를 실시하자고 한 것은 헌정질서를 중단하라는 중차대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전국 규모 규탄대회 강행하는 새누리당
이처럼 양승조 최고위원과 장하나 의원의 돌출 발언에 대한 새누리당의 대응 수위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은 대선불복 실태를 알리기 위한 홍보물 제작 및 배포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더불어 전국 시·도당별로 릴레이 형식의 장외 규탄 집회도 개최하고 있어 대선불복을 둘러싼 첨예한 이슈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한편 지난 12일 오후 2시에는 충남 천안 야우리광장에서 새누리당 충남도당이 ‘민주당 대선불복 망언 규탄대회’를 열었다. 충남 천안은 양승조 위원의 지역구이기도 하다.

새누리당 및 각 시·도당이 보여주는 이 같은 전국적인 움직임에 대해 민주당은 예의 주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규탄대회의 대상이 된 양승조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새누리당 충북도당이 본인과 장하나 의원에 대한 규탄대회를 열고 의원직 사퇴를 촉구한 것에 대해 “자유당 시절 백색 테러 행위를 방불케 한다”며 “당장 정치적 폭력을 중단하라”고 강하게 항변했다.

아울러 새누리당 내에서도 점차 “상황을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는 기류가 형성되는 조짐이 보여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일으키는 주역은 바로 얼마 전 재·보궐 선거를 통해 당내에 입성한 서청원 의원이다.

지난 10일 서청원 의원은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당 지도부를 향해 “민주당 국회의원의 개인 문제와 국회 의사일정을 연계하지 말라”며 거침없는 충고 발언을 했다.

서청원 의원은 “최근 일부 야당의원들의 발언은 그분들의 인격을 의심할 차원을 넘는 발언이라 참으로 실망했다”면서도 “이에 대해 당에서 대책을 적절하게 세웠다는 생각은 들지만 상황이 어떻든 이런 엄중한 시기에 우리 지도부도 한 개인의 자질 문제로 치부하자”고 당부했다.

이어 서 의원은 “여야 4자 회담을 통해 모처럼 얻어낸 정국 정상화 기류가 훼손되지 않도록 개인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로 또 국회는 국회대로 원내대표가 다소 어렵더라도 정상화를 이루어 나가서 예산 및 나머지 법안이 원만하게 처리되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계에서는 “이 같은 대선 불복 정국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아직 많다. 이에 대해 한 시사평론가는 “당청에서는 이 대선 불복 정국을 지난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까지 연루시켜 상황을 확대시킬 조짐까지 보이고 있어 향후 정국에 중요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현재 여야는 ‘양승조·장하나 발언 배후’에 대한 갑론을박 양상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기도 하다. 지난 11일 새누리당 지도부는 양승조·장하나 의원 발언의 배후로 민주당 문재인 의원을 구체적으로 지목한 다음 이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동안 문재인 의원은 저서나 발언을 통해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 보면 지난 대선은 불공정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 수혜자”라는 취지의 대선을 불복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바람에 “민주당 내에서 대선 불복 관련 발언이 튀어나오는 결과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 새누리당은 민주당 의원들의 대선불복 발언의 배후로 문재인 의원을 지목하며 문 의원에게 명확한 입장을 밝힐 것을 촉구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이에 맞불을 놓아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의 배후설을 제기하고 있다. ⓒ뉴시스

‘배후설’로 비화된 여야 간 난타전
이러한 새누리당의 발언에 대해 민주당은 격한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은 ‘문재인 배후설’에 맞서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꼽히는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에 대한 공격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박수현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새누리당이 양승조·장하나 의원의 발언에 대해 시도당 차원의 전국적인 규탄대회를 열고, 12일에는 양 의원 지역구인 천안에서 대규모 규탄대회를 열었다”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의 배후에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있다고 판단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현재까지의 정국 흐름을 보면 새누리당은 양승조·장하나 의원의 발언을 대선 불복성으로 규정하고 총력 대응에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장외 규탄 집회나 홍보물 배포를 통해 “야당이 민주주의 정신에 어긋나는 불복으로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다”는 대응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새누리당이 대선불복으로 공격 수위를 높여나가는 움직임을 차단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말살하려는 반민주적 작태”로 규정하고 나선 것이다.

아울러 민주당은 여권의 대선불복 공세 와중에 주춤해진 상태에 놓인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및 이와 관련된 국정원개혁특위와 특검 도입 쟁점을 지속적으로 부각시켜야 하는 과제에 몰두하고 있다.

이와 같은 ‘대선 불복 정국’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장하나 의원의 성명서나 양승조 최고위원의 발언은 국회의원의 발언 수위로서는 상당이 센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를 당청이 거의 ‘설화’ 수준으로 크게 확대해 공격 도구로 삼고 있는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 평론가는 “특히 양승조 최고위원의 발언의 진의는 ‘박근혜 대통령은 선친인 고 박정희 대통령 말년의 비극적인 삶으로부터 교훈을 얻고 과오를 답습하지 말라’는 취지였다”라며 “하지만 청와대나 새누리당은 수사학적 뉘앙스를 교묘하게 비튼 채 부각시켜 ‘박근혜 대통령도 결국 암살당한다는 뜻이냐’라는 일종의 ‘왜곡 효과’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지적했다.

다른 시사평론가는 “아무래도 여당은 대선 불복 프레임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대선 개입 이슈를 희석화 시키려는 전략을 진행하는 측면이 강하다”며 “이런 작전에 야당은 쉽게 휘말리지 말아야 하는데 장하나 의원의 성명이나 양승조 최고위원의 발언은 그 내용에 담긴 과격성 때문에 자칫 야당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여지를 주고만, 역풍의 빌미를 제공한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 평론가는 “현재 국민 대다수 여론을 보면 이들 두 의원의 발언 내용이 도를 다소 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를 빌미로 여당이 의원직 제명까지 추진하고 규탄대회를 강행하는 것 또한 지나치다고 여긴다”라는 견해를 보였다.

또한 이 평론가는 “아울러 국방부 조사본부가 이번 주에 대선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사이버사령부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 대선 불복 이슈를 둘러싼 정국은 해를 넘겨서도 쉽게 가라앉지 않고 계속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지난 12일 새누리당은 장하나 민주당 의원에 대한 징계안 내용을 수정해 제출한 사실이 알려져 체면을 구기게 됐다. 이날 최경환 원내대표는 “앞서 제출된 징계안 내용 가운데 사실과 일부 다른 부분이 있어 이에 문제되는 부분을 바로 잡아 새로운 징계안을 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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